메뉴 건너뛰기

close

"펜은 칼보다 강하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나체로 누드 영화를 찍는 모습을 묘사한 만평 때문에 프랑스의 주간 풍자 신문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는 지난 1월 7일 테러를 당했다. 결국 이 테러로 편집장을 포함해 기자 8명을 잃었다. 이 사건 이후 '내가 샤를리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거리 시위가 격화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등장한 경구 중 하나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다. 1839년 영국작가 에드워드 리턴이 쓴 <아르망 리슐리외>라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글귀다. '테러의 칼과 언론의 펜 중 어느 것이 더 강한가' 하는 논쟁이 제기됐다. 여기서 엉뚱한 질문 하나, 해부학 선생은 칼과 펜 중, 어느 것이 더 강하다고 말할까?

해부학에서도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해부는 칼을 가지고 한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해부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만화 그리는 해부학 선생' 정민석 교수는 책 <해부하다 생긴 일>에서 펜이 더 강하다고 주장한다. 해부학의 다른 면을 보게 만드는 말이다.

해부학은 칼만 쓰면 안 된다는 뜻이다. 뭐, 꼭 해부학만이겠는가. 정치도 칼만 쓰면 안 된다. 대인 관계도 칼만 쓰면 안 된다.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다 되지 않는다. 해부학 시험은 칼을 쓰는 실습 시험보다 펜을 쓰는 필기 시험 비중이 더 높다. 이를 불평하는 학생들에게,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힘주어 말한다고 한다.

"해부학 선생은 칼로 해부하는 시간보다 펜으로 공부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칼은 강한 것이지만, 펜이 칼보다 강합니다."- <해부하다 생긴 일> 121~122쪽

해부학, 그 말만으로도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가 나 같을 것이다. 그런데 그 끔찍하고 무서운 해부학을 이리도 재미있고 맛깔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정민석 교수 특유의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 반영된 듯하다. "전문가는 자기 분야의 농담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소신의 반영이다.

정 교수는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로, 2000년부터 해부학과 관련된 만화, <해랑이와 말랑이>를 그려 누리집을 통해 공짜로 공개하고 있다. <해부하다 생긴 일>은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한겨레>에 연재된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에 실린 글에다 만화를 삽입하고 몇 편의 글을 더해 책으로 펴낸 것이다.

저자는 이미 만화로 자신의 분야를 널리 알리는 데 전문가 수준이다. 그의 만화는 모두 공짜로 공개됐다. 물론 영어로도 번역되어 있다. 만화를 '잘 그렸다, 못 그렸다'를 떠나, 해부학을 만화로 그릴 생각을 한 발상 자체가 발랄하다. 역시 해부학 선생 정민석 교수에게 해부 칼보다 위대한 것은 펜이었다. 그의 '펜심' 때문에 나 같은 문외한도 해부학을 접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위트 넘치는 해부학 농담, 재미있다

<해부하다 생긴 일>(정민석 지음/ 김영사 펴냄 / 2015. 1 / 1만4000원)
 <해부하다 생긴 일>(정민석 지음/ 김영사 펴냄 / 2015. 1 / 1만4000원)
ⓒ 김영사

관련사진보기

책을 읽으며 인체의 신비를 아는 건 필수, 행간에 숨은 말놀이와 글자들 속에 밴 유머를 읽는 건 덤이다. 그런데 내게는 해부학 지식보다 글 솜씨가 주는 유머가 더 좋다. '농담도 다룰 줄 아는 전문가' 저자의 몇 마디를 소개한다.

의사는 환자를 따듯하게도 봐야 하지만, 차갑게 볼 필요도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의사는 환자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눈으로 차갑게 봐야 제대로 본다는 뜻이다. '환자가 얼마나 아플까?'보다 '환자가 어째서 아플까?'를 생각해야 정확한 진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차가운 눈으로만 보니 시체를 만지는 해부학 교수가 된 건가, 하는 생각도 스친다.

우리는 원효대사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셨다가 후에 해골인 걸 알고 구역질을 했다는 일화를 알고 있다. 알고 나니 구역질을 유발한 사건이 바로 대사 활동이란다. 원효대사라 하지 말고 신진대사라 이름 지었으면 좋을 뻔했다는 저자의 너스레는 정말 유쾌하다. 스웨덴 사람들은 건배할 때 '스콜(머리뼈)'이라고 하는데, 이는 머리뼈를 그의 조상 바이킹들이 술잔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효대사보다 원조는 스웨덴 사람들인 것이다.

목뼈를 굽히는 인사와 허리뼈를 굽히는 인사가 있다. 회사에서 승진을 맡은 부서가 인사부인데, 허리뼈를 굽혀 인사하는지, 목뼈를 굽혀 인사하는지 살피기 때문에 인사부란다. 허리뼈를 굽혀 인사해야 승진에 유리하다고. 해부학의 '목뼈와 허리뼈에 이런 높은 뜻이?'하고 갸우뚱하게 만든다.

해부학 실습실에서는 양치질을 안 해도 되고, 방귀를 맘대로 뀌어도 괜찮다고 한다. 더군다나 요즘 문제가 된 '술 마신 후 수술'도 괜찮다고 한다. 왜? 실습실 냄새가 고약해서 고맙게도 술 냄새, 방귀 냄새, 입에서 나는 악취 모두 덮어준다나.

'너는 대뇌가 해맑아서 좋겠다'... 칭찬일까? 욕일까?

<해부하다 생긴일>의 저자 정민석 교수가 자신의 모습을 만화화한 모습이다. (anatomy.co.kr 갈무리)
 <해부하다 생긴일>의 저자 정민석 교수가 자신의 모습을 만화화한 모습이다. (anatomy.co.kr 갈무리)
ⓒ 정민석

관련사진보기

해부학 선생은 머리가 나쁘다(실은 의대생은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게을러 공부를 안 한다)고 말할 때 대뇌를 들먹인다. 첫째로 하는 말이 "대뇌가 해맑아서 좋겠다"인데, 이 말은 회색이어야 하는 대뇌 겉질이 없다는 뜻으로,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일컫는 욕이다.

둘째는, "너는 대뇌에 주름살이 없어서 좋겠다"인데, 머리를 그만큼 안 써서 주름살이 없다는 말이다. 당연히 욕이다. 셋째는,  "너는 쓰지 않는 새 대뇌를 갖고 있어 좋겠다"인데, 이것 역시 뇌를 쓰지 않아 나쁘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너는 머리카락이 힘세서 좋겠다"인데, 돌머리를 뚫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힘세다는 뜻이다. 물론 이 표현은 머리 나쁜 것과는 상관없는 표현이다. 해부학이 이처럼 재미있는 것이라면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과 누리집에 동시에 실린 공짜 만화의 '허파' 부분이다. (누리집 anatomy.co.kr 갈무리)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과 누리집에 동시에 실린 공짜 만화의 '허파' 부분이다. (누리집 anatomy.co.kr 갈무리)
ⓒ 정민석

관련사진보기


해부학 실습실에는 항상 좌파와 우파가 있다고 한다. 실습실 학생들은 전적으로 우파를 좋아한다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조를 배정할 때 시신의 왼쪽을 해부할 조와 오른쪽을 해부할 조를 나눈다. 오른쪽(우파)을 해부하는 게 더 유리하다. 그 이유는 해부학 선생이 칠판에 오른쪽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란다. 제비뽑기로 우파와 좌파를 결정하는데 우파가 되면, "야호! 나는 오른쪽을 해부한다!"며 쾌재를 친다고.

해부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가장 끔찍한 꿈이 뭘까? 시신 옆에 누워있는 꿈? 시신이 되어 해부되는 꿈? 물론 일반인에게는 모두 끔찍한 꿈이다. 그러나 해부학도에게는 아니다. 낙제해서 다시 해부학을 공부하는 꿈, 그렇다. 이게 가장 소름 끼치는 꿈이란다.

참 재미있게 읽은 첫 해부학 책이다. 일반인에게는 소름 끼치는 해부학일 수 있는데 이리 맛깔나게 인체의 신비를 만화로 그리고 글로 써준 해부학 선생, 정민석 교수. 그에게 역시 펜은 칼보다 강했다.

덧붙이는 글 | <해부하다 생긴 일>(장민석 지음/ 김영사 펴냄 / 2015. 1 / 1만4000원)



해부하다 생긴 일 - 만화 그리는 해부학 교수의 별나고 재미있는 해부학 이야기

정민석 지음, 김영사(2015)


태그:#해부하다 생긴 일, #정민석, #해부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