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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화와 안정적 급여체계 등을 요구하며 서울 한남동 구본무 회장 자택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인  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비정규직 지부 조합원들. 3일 오전에는 같은 장소에서 조합원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 구본무 회장 자택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인 LG유플러스비정규직 노동자들 정규직화와 안정적 급여체계 등을 요구하며 서울 한남동 구본무 회장 자택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인 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비정규직 지부 조합원들. 3일 오전에는 같은 장소에서 조합원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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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조합원은 수도료와 전기요금도 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파업 중인 남편을 대신해 생계에 뛰어든 가족들을 보면 저는 마음이 너무 무겁습니다. 권리를 찾아보자고, 한 집안의 가장을 이 차가운 바닥으로 이끈 게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경상현 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이 '생계'라는 단어를 언급하자 일순간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3일 오전, 약 5미터 높이의 담장이 우뚝 솟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서울 한남동 자택 앞에 모인 조합원 250여 명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들 중 몇몇은 고통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LG유플러스 서비스센터 설치수리기사인 이들은 다단계하도급으로 인한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 뒤 11월에는 전면 파업을 벌였다. 노숙 농성 134일째 되는 지난 2일에는 구 회장 자택 앞에도 농성장을 만들었다.

"파업 길어지자... 아이 교육보다 돈 걱정 앞서 눈물"

3일 오전 서울 한남동 구본무 회장 자택 앞에서 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비정규직 지부 조합원의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 기자회견 중인 가족과 조합원들 3일 오전 서울 한남동 구본무 회장 자택 앞에서 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비정규직 지부 조합원의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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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 자택 앞에서 농성을 벌인 지 이틀째인 이날, 조합원의 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신랑이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한두 달은 열심히 하라고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경제적인 어려움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온 큰 아이가 나만 한글을 모른다며 속상해하는 모습을 봤을 때, 어떻게 가르칠까 생각하기보다 돈이 먼저 떠올라 눈물이 났습니다."

홍승범(39) 조합원의 아내 한선미(38)씨는 눈물을 삼키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덤덤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지만, 준비해온 편지의 첫머리를 읽는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했다. 특히 '큰아이' 이야기를 꺼낼 때는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의 남편도 고개를 숙였다.

한씨는 그래도 남편과 조합원들의 싸움을 계속 응원하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한씨는 "노숙 농성장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가장의 책임을 등한시한다는 가족의 냉대 속에서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라면서 "이들이 요구하는 건 큰돈이 아닌,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혼 3년 차 젊은 부부도 동료들 앞에 서서 생활고를 토로했다. 김용성(35) 조합원은 "지난해 10월 둘째를 낳았는데 정말로 돈이 하나도 없어서 아이의 분유와 기저귀를 사는 게 큰 걱정거리"라면서 "다 큰 성인이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있어 부끄럽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길 때까지 싸우겠다"라고 밝혔다.

곁에 선 아내 유효금(31)씨도 "가족이 이런 곳에 나오는 게 쉽지 않다"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유씨는 "남편은 LG라는 타이틀을 걸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라며 "그저 안정적으로 일하게 해달라는 단순한 요구를 모른 척한다,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늘 설에는 웃으며 보낼 수 있도록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조합원들의 삶 나락으로 떨어져... 더 이상 방관하지 말라" 

3일 오전 서울 한남동 구본무 회장 자택 앞에서 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비정규직 지부 조합원의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 기자회견 중인 가족과 조합원들 3일 오전 서울 한남동 구본무 회장 자택 앞에서 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비정규직 지부 조합원의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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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탁 희망연대노동조합 공동위원장은 "노동조합이 투쟁 과정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가족을 불러 그들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말하게 하는 것"이라며 어렵게 참석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그는 "파업 기간 조합원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의 가족까지 기자회견에 나서게 됐다"라면서 "구본무 회장과 엘지그룹은 더 이상 사태를 방관하지 말고 직접 나서라"고 거듭 촉구했다.

이날 가족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가족이 집과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구본무 회장이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주말까지 고객 민원에 시달리며 일해도 회사는 별의별 이유를 들며 월급을 깎았고,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4대 보험과 퇴직금마저 월급에서 뺏어갔다"라면서 "조합원들은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가족과 주말을 보내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대기업일수록 법을 잘 지키고 일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잘 챙겨줘야 한다"라면서 "진짜 사장인 구본무 회장이 나와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전 조합원의 가족이 나서서 LG그룹의 행태를 알리고 싸우겠다"라고 강조했다.


태그:#엘지유플러스, #파업, #구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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