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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월 10일자 3면. 청와대에서 발생한 문건유출 등을 따지는 자리에서 항명이 발생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 보수언론도 '기강붕괴' 비판 <동아일보> 1월 10일자 3면. 청와대에서 발생한 문건유출 등을 따지는 자리에서 항명이 발생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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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 또 다시 대형 악재가 터졌다.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정치 공세' 운운하며 국회의 출석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이는 여야 합의를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이며, 나아가 '세게' 출석을 지시했다는 김기춘 실장의 비서실 장악력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김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은 2주 전에 여야가 일정 부분 합의한 것이었다. 야당에서는 그의 출석을 자신했다. 운영위원회가 개최되는 지난 9일 오전, 여당에서는 "민정수석에 대한 질문자수를 야당 5명, 여당 1명으로 제한하자"는 요청을 했다. 이날 오후에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런데 그는 초유의 '항명사태'를 일으키며 홀연히 청와대를 떠났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자세의 문제"라며 대놓고 김 수석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다. 국회 역시 여야 합의사안에 대한 무시라며 청와대발 초유의 항명사태에 대책을 촉구했다.

사정과 감찰 등을 통해 고위공직자의 기강을 바로잡는 민정수석의 항명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일까. 김 수석은 10일자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내가 비서실장에 항명해 사퇴한 게 아니다"면서 "나는 박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 사퇴했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30년 이상 '상명하복' 규율이 엄격한 검찰 조직에서 근무한 김 수석의 발언이 묘하다. '항명'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자신은 박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직속상관의 업무지시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이유가 '박 대통령 때문'이라는 해명이 된다. 이 발언의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일까. 직속상관의 업무지시는 다름 아닌 국회에서의 '증언'이었다.

그는 왜 이재만처럼 '기억 안 난다' 하지 못했나

9일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한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답변 태도를 지적하는 <조선일보> 1월 10일자 4면. 이 비서관은 정윤회 관련 질문에 "아니다, 기억 안난다"고 답했다.
▲ 김영한은 왜 '기억 안 난다'고 못 했나 9일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한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답변 태도를 지적하는 <조선일보> 1월 10일자 4면. 이 비서관은 정윤회 관련 질문에 "아니다, 기억 안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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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을 보면 김 수석의 항명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9일 운영위원회 주제는 '청와대 문건'이었다. 그 문건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 유출된 것이다. 관련된 청와대 감찰 역시 민정수석실에서 진행했다. '2차 유포'로 조사받은 최아무개 경위는 유서에서 한아무개 경위에 대한 회유와 협박의 배후를 민정수석실이라고 주장했다.

상식적으로 그의 국회 출석은 불가피했다. 아무리 물러터진 국회라 해도 그를 증언대에 세워서 '정윤회 문건'에 대한 몇 가지 사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친박'으로 분류되는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조차 "그의 출석이 필요했다"며 여야 합의배경을 설명하지 않았는가.

그가 운영위원회에 출석했다 하더라도 답변이 꼭 정확할 필요는 없었다. 9일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답변 방식을 참고할 수는 없었을까. 이날 이 비서관은 정윤회씨와의 관계 등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 "아니다", "기억 안 난다"고 답했다. 이 비서관은 의원들의 집요한 추궁이 이어지면 "내부 문제라 말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9일 발생한 김영한 민정수석의 항명을 다룬 <한겨레> 사설. 청와대를 '콩가루'로 표현하며 조롱하고 있다.
▲ 언론의 조롱... 콩가루 청와대 9일 발생한 김영한 민정수석의 항명을 다룬 <한겨레> 사설. 청와대를 '콩가루'로 표현하며 조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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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김 수석의 항명은 더더욱 해석이 어렵다. 그는 문건이 유출된 이후에 보임했다. 문건 유출과 관련해서는 '전임자'를 들먹이며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진행된 청와대 감찰을 묻는다면 "청와대 감찰을 공개한 전례가 없다"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표 친박인 이완구·김재원 등이 포진한 운영위원회이기 때문에 적당한 지원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아무개 경위 유서에 기술돼 있는 '한아무개 경위 회유, 협박 배후' 건도 JTBC 등의 보도가 있긴 했지만 적당히 부인하면서 넘길 수도 있었다. 한아무개 경위가 전격 등장해 증언하지 않는 이상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야당 입장에서도 수많은 의혹에 의미 있는 답변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회에 출석했더라면 힘든 하루가 되긴 했겠지만 그는 더 힘든 길을 선택했다. 초유의 항명 파동을 일으키면서 불출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혹이 커진다. 김기춘에게 공개적인 수모를 주면서, 신년 기자회견을 앞둔 대통령에게 큰 부담을 주면서까지 그가 말하고자 한, 지키려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문재인 격분케 한 김영한의 한 마디

김영한 민정수석의 항명 파문을 보도한 <한겨레> 1월 10일자 5면. 김 실장을 비롯한 인적쇄신 요구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 황당한 '내분'... 위기의 김기춘 김영한 민정수석의 항명 파문을 보도한 <한겨레> 1월 10일자 5면. 김 실장을 비롯한 인적쇄신 요구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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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자신의 불출석이 논란이 되자 김영한 수석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자신의 불출석 사유를 밝혔다. 그는 자신에 대한 출석 요구를 '정치 공세'로 규정했다. 지난 25년간 민정수석의 국회 불출석은 '관례'였다고 주장했다.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그는 끝내 불출석했다.

그러나 역대 민정수석 가운데 세 명이 5번에 걸쳐 국회에 나왔다. 2000년 신광옥 당시 민정수석과 2003년과 2004년 문재인, 2006년과 2007년 전해철 당시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한 바 있다. 특히 문재인 의원의 경우는 3차례 국정감사장에 나왔고 이 중 두 번은 일반 증인 자격이었다.

김영한 수석이 '관례' 운운하며 불출석하자 문재인 의원이 9일 저녁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문 의원은 김 수석 항명과 관련해 "대통령의 사과와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지금 청와대에는 위아래도 없고, 공선사후(公先私後)의 기본개념도 없다"며 "'콩가루 집안'이란 말이 있지만, 국가운영의 심장부가 어떻게 이처럼 비극의 만화경일 수 있는가"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문 의원의 주장은 초유의 항명 사태에 기반하기 때문에 여당에서도 '정치공세'라고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 의원이 유력한 야당의 차기 대표임을 고려할 때 야당의 공론으로 주장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또 다른 당권 주자인 박지원 의원은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박 의원은 같은 날 SNS를 통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청와대 항명사건입니다"며 "김기춘 비서실장 등 비서실 총사퇴를 촉구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역시 요구했다.

세월호·정윤회에도 살아남은 김기춘, 김영한에 잡히나

김기춘 실장이 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서 '정윤회 문건' 관련 청와대 감찰에서 '3인방'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공개했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1월 10일자 4면
▲ 문고리 3인방 조사도 안했다 김기춘 실장이 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서 '정윤회 문건' 관련 청와대 감찰에서 '3인방'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공개했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1월 10일자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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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파문 속에서 어느 순간 '기춘대원군'이란 표현이 사라졌다. 김기춘 실장이 과연 청와대 비서실을 장악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9일 운영위원회 출석한 김 실장은 지난 12월 청와대 자체 감찰 당시 '문고리 권력 3인방'도 조사했느냐는 질문에 "내용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고 답했다. 비서실장인 그의 권한은 3인에 대해서는 예외였던 것이다.

여기에 김영한 '항명' 파문이 터져 나왔다. 김영한의 항명은 공개적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청와대 내부 기강이 어느 정도인지를 국민들이 명백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그의 직속상관은 김기춘 실장이다. 그 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존재한다. 당장 언론과 야당에서는 김 실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2014년, 김 실장은 초인적 생존력을 보여줬다. 낙마한 안대희, 문창극 두 총리 후보자 인선의 책임자였지만 생존했다. 세월호 참사 속에서도, 심지어 '7시간 행적'에 대한 빌미를 제공했지만 생존했다. 비선 실세 국정 농단과 문건 유출 파문 속에서도 생존했다. 그런데 숨고르기를 하기도 전에 김영한 항명 파문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김 실장은 생존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듯 싶다. 당장 새누리당 내 '친박 Vs. 친이' 대립구도에서 김 실장이 존재하는 한 친박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도이기 때문이다. 언론도 등을 돌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대표가 선출될 때까지 김 실장이 버틴다면 새 야당 대표의 첫 요구는 그의 사퇴가 될 것이다.

지난 2일 청와대 비서실 시무식에서 김기춘 실장은 때 아닌 '충(忠)'을 강조했다. 그의 충은 '기강'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런데 그 발언을 한 일 주일 후에 김영한 항명 파문이 터져 나왔다. 충 카드를 이미 사용했기 때문에 기강을 바로잡을 어떠한 카드도 그에게는 남아 있지 않다.

일 주일 전 그가 강조했던 충(忠)은 '민정수석실'을 대상으로 했던 것일까. 항명 파문이 터진 시점이 묘하다.


태그:#김영한, #항명, #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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