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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역시나 였다. 2일 새해를 시작하며 재벌 총수들이 꺼낸 단어는 '위기'였다. 임직원들에겐 '도전'을 당부했다. 거의 매년 빠지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4대그룹 한 고위 임원은 "글로벌 경영환경에서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임원은 "올해는 작년보다 체감으로 느끼는 위기감이 더 큰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이날 주요그룹 총수 신년사에선 과거보다 구체적인 목표를 내걸고, '기필코', '과감하게', '반드시' 라는 단어를 써가며 위기를 타개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런 '위기감'을 반영하는 걸까. 그동안 형식적으로라도(?) 언급됐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찾기 어려웠다. 지난해 말 조현아 사건으로 가뜩이나 반재벌 정서가 팽배한 요즘이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한 임원은 "기업이 살아남아야 사회적 책임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반재벌 정서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정몽구, 원고에 없는 한전부지 건물 층수 공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2일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열린 시무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2일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열린 시무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 현대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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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그룹 사옥 강당.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준비된 원고를 보지 않고 신년사를 이어갔다. 특히 지난해 서울 강남 한전부지 인수를 언급하면서, "앞으로 한전 부지에 105층짜리 건물을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통해 그룹 이미지를 높이고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105층 현대차그룹 사옥 건립' 발언은 당초 신년사 원고에는 없는 부분이었다. 이날 언론에 공개된 원고에는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게 될 통합 신사옥은 대한민국 경제와 문화를 대표하는 복합 비즈니스 센터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돼 있었다.

현대차도 그동안 한전부지에 초고층 건물을 지을 것이라고만 해왔을 뿐 구체적인 층수는 밝히지 않았는데 정 회장이 이날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105층짜리 건물이 들어설 경우, 현재 건설중인 123층짜리 제2롯데월드와 함께 서울 강남에만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이 2개나 들어서게 된다.

정 회장은 또 이날 현대차그룹의 올해 자동차 생산과 판매 목표도 820만 대로 내놓았다.  그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과 자동차 업체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을 강조하면서 "글로벌 생산, 판매체계의 효율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그룹의 미래 경쟁력은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 개발능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면서 "연구개발 투자를 크게 확대하고, 우수인력 채용과 산학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최근 독일의 자동차회사인 베엠베(BMW)의 수석엔지니어를 영입해, 고성능 자동차 개발에 나선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총수 부재속의 삼성과 SK, 사뭇 다른 '위기감'

삼성은 올해 이 회장이 병상에 있기 때문에 그룹 차원의 시무식은 하지 않았다.
 삼성은 올해 이 회장이 병상에 있기 때문에 그룹 차원의 시무식은 하지 않았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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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올해 시무식은 여느 때와 사뭇 달랐다. 삼성은 매년 신라호텔에서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주요계열사 사장과 임원 등이 참석하는 시무식을 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이 회장이 병상에 있기 때문에 그룹차원의 시무식은 하지 않았다.

대신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신년사를 내놓았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자체 시무식에서 "올 한해도 새롭게 도전해야 하고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미래 경쟁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태원 회장이 부재중인 에스케이(SK)그룹의 위기감은 더욱 컸다. 게다가 그룹 주력사업인 에너지와 화학분야 등이 세계 유가하락 등과 겹치면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SK 하이닉스만이 반도체 호황에 따른 수익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에너지와 화학 등에서 급격한 외부환경 변화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최 회장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미래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게 늦어질까 우려된다"면서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혁신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전성 논란의 제2롯데월드, 사과 대신 뒤늦게 안전강조?

 구본무 LG 회장
엘지(LG)그룹의 구본무 회장도 위기를 강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구 회장도 "올해 사업환경은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후발기업들의 거센 추격과 일본, 중국 등의 상황을 감안하면 수년 내에 큰 어려움이 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말보다 행동을 강조하면서 "기필코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각오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전성 논란을 빚는 제2 롯데월드의 신격호 롯데 회장은 "지난해는 우리 그룹에 쉽지 않은 한 해였다"면서 "불미스러운 일로 국민과 고객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렸다"고 말했다. 각종 안전사고 등에 대한 사과의 표현은 없었다. 대신 "롯데월드타워는 안전관리를 완벽히 하고 시공 과정에서도 일체의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삼성과 대형 빅딜을 성사한 김승연 한화 회장은 상대적으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이날 임직원 신년 인사회에서 "예전부터 그룹 성장을 위한 하이브리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면서 "인재 전쟁으로까지 일컫는 시대에 새로운 가족이 될 8000여 임직원들은 천군만마와도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가족들이 그룹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협력하며 '함께 멀리'의 정신으로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고 덧붙였다.

이밖에 허창수 지에스(GS)그룹 회장은 "불필요한 일은 과감하게 줄이자"면서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고객과 현장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재벌, #정몽구, #이건희, #최태원, #구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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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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