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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이 2015년 1월 1일부터 2000원 오른다. 담배 가격 인상 외에 흡연자들을 슬프게 하는 일은 많다. 커피숍 등에서 운영 중인 밀폐된 흡연석 제도도 없어지고, 흡연실만 운영이 가능하다. 전자담배도 일반 담배와 똑같이 취급돼 금연구역에서 전자담배를 피워도 단속 대상이 된다. 간단하게 말해 담뱃값은 오르고 흡연자들이 담배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든다. 덩달아 흡연자들의 입지도 점점 좁아지고 있는 요즘 흡연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가 열린다고 관심을 끈다.

흡연의 道 포스터
▲ 못 끊는 것이 아니라 안 끊는 것이다! 흡연의 道 포스터
ⓒ 흡연의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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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여 '흡연의 道(도)'. '담뱃값 인상과 흡연에 대한 사회적 멸시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고 품격 있는 흡연을 꿈꾸는 젠틀 스모커들의 유쾌한 송년 파티'를 표방하고 있는 이 행사 포스터에는 '못 끊는 것이 아니라 안 끊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홍대(합정) 카페와 술집 지도도 안내되어 있다. 아마도 '흡연의 도'는 담뱃값 인상 과정에서 유일하게 흡연자들을 위한 행사인 듯하다. 대체 이런 행사는 누가 준비하는 것일까.

'흡연의 도'를 준비하고 있는 두 사람을 지난 18일 만났다. 과거의 흡연자 양원호씨와 잠재적 흡연자 오지은씨. 어떻게 이 행사를 열게 되었냐는 질문에 오지은씨는 "주변에 해비(heavy) 스모커들이 너무 많네요"라며 "사람들이 모여서 담배에 대한 성찰을 하다가, 금연하지 못하면 패자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흡연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해 보자며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담배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안방에서, 버스에서 담배 피우던 그때 그 시절

이들은 "금연하지 못하면 패자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흡연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 흡연의 도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양원호, 오지은 씨 이들은 "금연하지 못하면 패자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흡연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 강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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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학에 들어간 양원호씨는 자신이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세대들은 부모가 안방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며 자랐어요. 고속버스에 재떨이가 있었고, 흡연이 가능했죠. 지하철 야외 승강장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었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담배 피우는 것을 부모님께 걸렸던 것도 지하철 승강장에서였죠. 지하철 문이 열리는데 열차 안에 친척이 계셨던 거죠. 저는 보지 못했는데 그 분이 저희 부모님에게 알리셨더랬죠."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부터 고속버스를 타고 다녔던 나도 기억나는 장면들이 아니던가. 지금의 고속버스를 생각하면 재떨이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랬다.

"사회적 인식이 수년 사이에 바뀌었어요. 흡연자의 행복추구권보다 비흡연자의 혐연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누구나 받아들이고 있죠. 큰 건물에서, 버스정류장에서, 공공시설에서 흡연이 불가능해졌고, 다들 그것이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정부의 금연 캠페인이 정점을 찍은 것은 2002년 봄부터였다. 폐암으로 투병 중인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보건복지부의 금연 광고에 출연하면서 "담배 맛있습니까? 그 독약입니다. 하루에 두 갑이나 폈습니다. 일년 전에만 끊었어도…"라고 말하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이 광고가 나오고 나서도 건물 안에서도 흡연이 가능했다. 내가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2004년에도 공공기관 기자실에서 흡연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으니까. 그러나 2005년부터는 이런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10년 만에 대한민국은 수많은 곳들을 금역구역으로 지정하고, 담뱃값을 인상하고, 보건소 금연클리닉을 확대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사회적 비용을 지급하는 만큼 흡연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19세 이상 성인(남녀포함) 흡연율은 2001년 30.2%이었으나 2012년 25.8%으로 4.4%밖에 줄지 않았다(보건복지부 금연 길라잡이 참고).

제대로 된 흡연실은 없는데 금연교육만

오지은씨가 일일이 발품을 팔아서 만든 지도라고 한다.
▲ 흡연의 도에서 제작한 홍대(합정) 흡연지도 오지은씨가 일일이 발품을 팔아서 만든 지도라고 한다.
ⓒ 흡연의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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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씨는 '흡연의 도' 행사를 준비하면서 홍대(합정) 카페와 술집 지도를 만들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아 조사했다. 어차피 다음달이 되면 쓸모없는 지도가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일일이 가게에 들어가서 흡연이 가능한지 물었어요. 그리고 조사가 끝난 후, 인터넷 상에 지도를 배포하려고 하는데 해도 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됐다고 말했던 곳도 지도에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하는 곳들이 있더군요. 딱히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흡연하는 것이 큰 잘못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요."

오씨는 지도를 만들면서 "합법적으로 담배를 팔지만, 담배를 피울 공간을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해 보였다"고 말했다. 대형건물의 흡연을 금지하고 보행자 흡연을 금지한다면 대체 흡연자들은 어디서 담배를 피우라는 것일까? 오씨는 "이런 식으로 계속 금연구역이 늘어나다 보면 흡연자들이 결국 차도에서 담배를 피우게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흡연실 설치를 해두고,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라고 하지만 흡연자들은 그 공간 안으로 쉬이 들어가지 않는다. 왜인지 물어보면 그 안에서 나는 '찌들은 담배 냄새'와 '가득한 담배 쓰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환기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고 쾌적하지 않은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인천공항에 있는 흡연실에 가 봐요. 환기시설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흡연실에서 담배를 펴도 냄새가 안나요. 공항 흡연실처럼만 관리해도 흡연실 안에서 다 피우지 않겠어요?"

정부의 내년도 금연사업 예산은 1475억 원이라고 한다. 담뱃값 2000원 인상에 따른 내년도 건강증진기금 내 금연사업 예산이 올해 112억 원에서 1362억 원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 대상 흡연예방사업, 맞춤형 금연지원서비스, 장기흡연자 단기금연캠프, 저소득층 금연치료 지원 등에 금연 관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양원호씨는 "흡연자들에게 거둬들인 세금을 흡연 시설을 위해서는 쓰지 않는다"며 흡연자 전용 음식점이나 카페를 꿈꿀 수 조차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흡연자들이 맘 먹고 6개월만 끊으면...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쯤 이 둘에게 재미있는 주장을 들을 수 있었다. '흡연자들이 대동단결해서 6개월만 담배를 끊으면 정부가 알아서 담뱃값을 내릴 것'이라는 말이었다.

"'흡연의 도' 행사를 준비하면서 든 생각인데요. 흡연자들이 이런 상황에 극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금연' 뿐인 것 같아요. 하루 한 갑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2015년에 내는 세금은 121만 원이라고 해요. 4500만 원 연봉소득자가 내는 세금과 동일한 액수죠. 그래서 흡연자들이 6개월만 담배를 끊으면 정부는 세금을 위해서라도 담배값 할인 행사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흡연자들이 대접받고 싶으면 6개월만 금연하자는 캠페인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인터뷰가 끝날 때 즈음 오지은씨가 "페이스북 광고가 거절되었다"라는 말을 꺼냈다. '회원님의 광고가 담배, 전자 담배, 관련 액세서리 광고를 금지한다는 페이스북 광고 가이드라인을 위반하여 승인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매년 '흡연의 도' 행사를 열겠다는 이들의 포부도 내년에는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15년부터 금연구역이 확대되면서 유흥주점, 단란주점 외에는 흡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흡연의 道(도)' 파티는 12월 27일 오후 9시, 서울 합정동에 있는 채널1969에서 열린다. 인디밴드 18gram과 다이얼라잇이 출연한다. 담배 구름 만들기 등 스모커 챌린지 행사와 DJ 호도리의 디제잉 타임도 있을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 흡연의 道 페이스북 : http://www.facebook.com/gentlesmokers



태그:#담배, #금연, #흡연, #흡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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