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성소수자 단체, 인권단체 등이 서울시민인권헌장의 제정 취소에 반대하기 위해 점거 농성을 벌이며 대립한 것에 대해 이들 단체들의 대표와 면담하면서 "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인해 서울시민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사과를 표명한다"고 유감을 표했습니다. 박 시장은 또한 이후 시정에 있어 모든 차별을 없애겠다며 공언했습니다.

 

정치인에게 모든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정치인도 자신만의 정치적 구상이 있을 것이고, 또한 그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실로 어려운 것이고, 순간의 처신에 따라 정치인으로서의 명운이 한순간에 달라지기 때문에 언행에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 정치인이 '진보 성향' 혹은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를 세간으로부터 받아왔다 할지라도, 그의 정치적 행보가 모두 한 방향으로 향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한 정치인의 정치적 결정은 무조건적인 이념 논리 이전에 '건전한 상식'에 준해 결정해야만 고른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정치적 기반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행동하는 것이 건전한 정치 행위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칭 '좌클릭' 혹은 '우클릭'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최근 행보는 '좌클릭'일까요, '우클릭'일까요? 우선, 시장은 어느 특정한 한쪽을 위해 발언한 후,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분노한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는 어느 쪽의 지지도 받기 힘든 행동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어느 쪽의 클릭도 아닌, 쉽게 말해 'Ctrl+Alt+Del'(컴퓨터 오류 발생시 강제 종료 등을 위해 누르는 단축키)를 누른 행보입니다.

 

그는 이른바 '극단적' 화법인 '호오(好惡)'의 논리로 발언("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했고, 이후 논란이 일자 구체적이고 명확한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내 잘못이오'라는 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모든 논란을 매듭짓고자 했습니다. 이는 명령어가 서로 충돌해 시스템 오류가 일어난 컴퓨터에 강제종료를 하기 위해 'Ctrl+Alt+Del'키를 누른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혐오, 다문화사회 혐오, 소수자 혐오를 정치 프로파간다적 논리로 접근해 그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차별과 증오를 양분으로 먹고 사는 극우 누리꾼들은 이제 거대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애국보수'로 표방하며 위와 같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반대로 이런 누리꾼들에 대해 비판하고 일갈하는 것 또한 요즈음 인터넷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위의 댓글 사진을 보면, 극우 누리꾼의 댓글과 사진 속의 댓글의 느낌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극우 네티즌들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그 잣대로 상대방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개보다 못하다', '관점의 차이다'라며 상대방을 부정하는 댓글들에서도 저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런 혼란스러운 사회적 갈등을 '조정'이 아닌 '조장'하는 것이 '당신 곁에 지금 누가 있습니까?'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박원순 시장의 진심이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의 선명한 이미지는 '소통과 진심'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새겨진 것이고, 그 밝고 선명한 색채 때문에 야권과 시민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것임을 시장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또한, '차별받지 않게 해달라'는 인권 헌장은 '성소수자가 주제넘게 나선다'는 뜻이 아님을 더욱 잘 아실테지요.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정말 뼈아픈 것은, 대놓고 욕하는 사람들보다 처지를 이해하지만 그래도 다수의 편견을 따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이 나중을 위해 성소수자는 버리고 가야할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 자체를 위협하는 악수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커밍아웃' 후 받는 수많은 사회적 불이익, 게이 퍼레이드에서 이른바 게이 반대론자들의 방해와 난동으로 받는 핍박, 극단적 기독교 단체의 선동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발언하는 것 자체가 '역린'을 건드리는 것처럼 터부시된 현재의 분위기 속에서, 인권 헌장에 '성소수자' 단어  하나 넣는 것 하나 조차 이렇게 힘들다면, 그들은 과연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인권'은 논박의 대상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거래'를 할 대상도 아닙니다. 편견의 논리를 인정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서, 내년 1월 다시 면담을 약속하셨듯이 그 때는 '인권 변호사 경력을 가진 서울시장'으로서의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시길 희망합니다. 시장께서 눌러야 할 버튼은 'Ctrl+Alt+Del'키도 아니고, 좌클릭, 우클릭 버튼도 아닌 당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말이 될 'F1'키입니다.

 

태그:#박원순, #인권헌장, #인권변호사, #성소수자, #동성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정하게, 바르게 쓰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