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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작품
 학생들의 작품
ⓒ 김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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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부평도서관 열우물 한글배움터 현장을 찾았다. 학생들의 나이는 60대에서 80대까지였다. 수업을 받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가끔은 수업과 관계없는 질문을 해 웃기도 하지만, 분위기는 한결 화목해 보인다. 학생들은 자기가 배운 한글을 한 글자씩 정성껏 썼다.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고 있다.    

부평 도서관에 작은 시화전이 열렸다. 비록 협소한 장소지만 그 어느 시화전보다도 더 예쁘게 보인다. 유명한 시인의 작품은 없다. 하지만 한참 동안 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지는 기분이다. 어렵게 배운 한글을 적어 내려간 문장 속, 소녀 같은 마음도 있고 가족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도 있어 더욱 감동을 준다.  

학생들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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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몰라 마음속 깊이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이 있다. 이들은 한글을 알면서 실타래처럼 마음속에 간직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욕심도 많다. 자신감이 생겨서 이제는 시인도 되고 싶고 책도 내고 싶다는 어르신들이다.

한글을 깨우친 후 자신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학생 중 한 명인 김명자(67) 할머니의 인터뷰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한글을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어 생활의 활력소를 다시 찾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래는 김명자씨와의 일문일답 요지이다.

한글을 몰라 은행도 못 가던 시절... 이제는 안녕

- 어떻게 한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까? 그 나이면 창피하다고 할 텐데….
"친구 소개로 배우게 되었어요. 저는 한글을 알게 되어 새로운 인생의 활력소를 찾게 됐습니다."  

- 한글을 배운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2년 되었어요. 아직은 받침이 어려워요. 그래도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이런 기회를 주신 부평도서관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만일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바보로 살았을 겁니다. 지금까지 은행도 두려워서 못 갔으니까요. 이제는 은행도 갈 수 있고 정말 좋아요."

- 그동안 한글을 몰라서 고생했던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말로 다할 수 없지요. 김해에서 어렸을 때 가족을 따라 인천에 왔지만 학교에 다니지 못했어요. 배우고 싶어도 형제가 많아서 공부를 할 수 없었어요. 4남매였어요. 처음 공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한글을 모르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겨우 친구들과 어울려 엉겁결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자 저를 책임자로 임명했어요. 책임자가 되면 매일 작업일지를 써야 하는데 한글을 모르면 안 되잖아요. 저는 그런 중책을 맡기면 그만 두겠다고 했죠. 배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됐어요."

- 그 외에 또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우리 아저씨(남편)는 처음에 기능직 국가공무원이었어요. 그때는 봉급이 적었잖아요. 어쩔 수 없이 고cnt가루를 만드는 집을 차려서 운영하다가 십정동에 떡집을 차렸어요. 떡 주문이 들어오면 한글을 몰라 적을 수 없으니까 손님 몰래 돌아서서 나 혼자만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기록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주소나 주문량을 통채로 외웠어요. 장사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아파트에 배달갔다가 주소가 틀려 다시 내려와 다른 집으로 찾아가는 일을 반복했어요. 그러자니 머리가 얼마나 아팠겠어요."

- 힘드셔서 혼이 많이 나셨겠습니다.
"아저씨가 월남에 파병된 장병이었는데 부상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때는 상이용사는 장가가기 힘들다는 이야기 때문에 부상이 있던 것을 숨긴 것 같았어요. 나중에 간암으로 돌아가셨을 때야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한글도 모르는 제가 혼자서 떡집도 운영하고, 아이들 남매를 공부시키자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어요. 지금은 며느리도 보고 아들은 유명 회사에 다니고 있고 딸도 출가하여 어려움이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한글을 몰라 고생한 것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어요."

인천 부평도서관 내 열우물 한글 배움터에서 60~80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가르치는 분은 박진숙 선생님이다.
 인천 부평도서관 내 열우물 한글 배움터에서 60~80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가르치는 분은 박진숙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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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악착같이 배우기로 결심했군요.
"네, 일을 하면서도 은행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까요. 글을 모르니 돈을 은행에 넣고 찾는 것이 두려웠어요. 그런데 얼마 전 처음으로 은행에서 돈도 넣고 찾기도 했어요. 이런 기쁨은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분은 모를 겁니다. 정말 도서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요."

- 앞으로 시인이 되고 싶지는 않으세요?
"그것도 해보고 싶죠. 시도 쓰고 일기도 써보고 싶어요. 그래서 얼마 전 일기장도 하나 샀어요. 여전히 한글은 받침이 어려워요.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뭐든지 해보고 싶어요, 며느리도 가끔 오면 잘 알려줘요. 어떤 사람은 창피하다고 말하지만 배우는 게 뭐가 창피해요. 저는 아직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글을 모르면 얼마나 불편한지 겪어 봤거든요."

-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싶은데 잘 모르겠어요."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저희들에게 한글을 깨우쳐주신 도서관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선생님(박진숙)에게도 감사를 드려요. 아들, 며느리, 손자 딸 모두 배울 수 있도록 뒤에서 힘써 준 것도 감사드립니다."

작품 앞에서, 김명자(67) 학생
 작품 앞에서, 김명자(67)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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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화전 , #ㅅ짐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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