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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병아리 '샐리'를 묻어준 것이 폐기물 불법 매립일 줄이야....
▲ 문제의 장면 죽은 병아리 '샐리'를 묻어준 것이 폐기물 불법 매립일 줄이야....
ⓒ 이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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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계란이 병아리로... 진짜 되네요' 기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마이뉴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쓴 기사의 내용 중에 부화된 병아리 중 한 마리가 죽어서 아파트 옆 화단에 묻어주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이 폐기물관리법상 위법한 행위여서 민원이 제기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폐기물관리법에서는 집에서 기르던 동물이 죽으면 생활폐기물로 분류하기 때문에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리게 돼 있다는 겁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인지라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직접 생명을 불어넣어서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다른 병아리들보다 아끼고 사랑하며 기르던 '샐리'의 죽음 앞에서 저는 아홉 살 형민이가 겪어내야 했던 슬픔만 보였습니다. 태어나서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떠난 작은 몸뚱아리 하나 묻어주는 것까지 법의 잣대로 심판받아야 하나 저항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확인 차 관련 법 조항을 찾아봤습니다.

폐기물 관리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폐기물"이란 쓰레기, 연소재(燃燒滓), 오니(汚泥), 폐유(廢油), 폐산(廢酸), 폐알칼리 및 동물의 사체(死體) 등으로서 사람의 생활이나 사업활동에 필요하지 아니하게 된 물질을 말한다.

아무리 죽은 동물이라지만... 쓰레기 취급이라니

외로울까봐 형민이가 아이클레이로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
▲ 샐리의 생전 모습 외로울까봐 형민이가 아이클레이로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
ⓒ 이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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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폐기물'이라 해야 한다.
▲ 샐리의 사체 이제는 '폐기물'이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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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관리법'이라는 현행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아무리 작은 동물의 사체라 하더라도 땅에 묻으면 위법 행위인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위법 행위였음을 모르고 '샐리'를 묻고, 이 내용을 기사에 썼던 것 역시 제 불찰이니 다른 누구를 탓할 계제가 못 됩니다. 결국 저는 따지고 보면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른 셈이었습니다. 죽은 '샐리'를 화단에 묻어줌으로써 폐기물을 매립한 것이 하나요, 그 사실을 기사에 실어 '자랑'함으로써 수 많은 독자들에게 불법을 권한 것이 또 하나입니다.

먼저, 첫 번째 잘못에 대해 처벌은 달게 받겠다는 마음으로, 민원을 이첩받은 관할구청 환경과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문의를 했습니다. 모르고 한 일이고, 처음인데다 매립한 폐기물이 적은 양이라 과태료 없이 '원상복구'만 하면 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원상복구'라는 것은 묻은 병아리 사체를 파내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일반쓰레기 수거함에 넣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샐리'를 쓰레기 취급하는 것 같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 게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동물병원에 문의해봤더니 동물병원에 맡기면 허가받은 업체가 사체를 수거해 소각해준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용은 2만 원부터 해서 1kg이 초과할 때마다 1만 원씩 추가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화장'이 아니라 '소각'입니다. 게다가 동물병원에서 나오는 각종 의료폐기물과 함께 소각하는 것이어서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놓으면 수거업체에서 가져가서 소각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반려동물 장례업체에 맡겨 화장하는 방법도 알아봤습니다. 죽은 동물의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을 하여 뼈를 분쇄한 다음,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수목장 또는 풍장을 한다는데, 사람의 장례 절차와 참 비슷합니다. 비용은 적게는 20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반려동물을 가족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비용을 아깝지 않게 지불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구청 환경과 직원분께서 샐리 묻은 곳을 파고 있다.
▲ 원상복구 구청 환경과 직원분께서 샐리 묻은 곳을 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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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에 싸인 채 부패되어가는 '폐기물'
 손수건에 싸인 채 부패되어가는 '폐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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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구청 환경과에서 환경 순찰을 하러 가는 길에 저희 집에 들르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경비실에서 삽을 빌리고 쓰레기 종량제 봉투까지 준비하고 아파트 앞으로 나가서 조금 기다리니 순찰차가 왔습니다.

병아리를 묻은 화단으로 공무원들을 안내했지만, 묻은 곳을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삽으로 쿡쿡 찔러보다가 묻을 때 찍은 사진 속의 나무 모양을 보고 나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 삽질이 시원찮았는지 한 환경과 직원분이 삽을 가져가다니 몇 삽만으로 샐리의 사체를 찾아냈습니다.

샐리는 묻힐 때 사용됐던 하얀 손수건에 그대로 싸인 채 다시 땅위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쓰레기봉투에 담겨질 운명이 됐습니다. 현행법이 그래서 어쩔 수는 없다지만, 함께 살던 동물이 죽으면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는 것은 국민정서에 그닥 맞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환경과 직원이 파낸 샐리는 '폐기물'이라는 이름으로 쓰레기 봉투에 담겼고, 수거됐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우완 시민기자의 블로거 <도서관 옆 목공방>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마트 병아리, #병아리 부화, #폐기물 불법 매립, #애완동물 사체 처리, #도서관 옆 목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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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변두리 작은 읍내에서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마을공동체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지방의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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