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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의 경우 정규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그냥 가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친구관계를 유지하려면 학교에서 추가로 방과 후 수업을 하거나 돌봄교실 신청을 하든가, 아님 동네 학원에 수강신청을 하는 것이 낫다. 초등학교 1학년마저 저녁 시간이 되어야 비로소 뛰어 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사교육이 없으면 그들에게 친구를 만들 시간마저 많지 않다.
▲ 왼쪽<방과 후 수업으로 '축구'하는 아이들>, 오른쪽 <돌봄교실 수업> 초등학교의 경우 정규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그냥 가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친구관계를 유지하려면 학교에서 추가로 방과 후 수업을 하거나 돌봄교실 신청을 하든가, 아님 동네 학원에 수강신청을 하는 것이 낫다. 초등학교 1학년마저 저녁 시간이 되어야 비로소 뛰어 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사교육이 없으면 그들에게 친구를 만들 시간마저 많지 않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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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남구의 한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S씨(40, 여)는 1학년 학기 초에 당황스런 경험을 했다. 아이가 다녀야 할 초등학교엔 무상급식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사 오기 전 경기도에서는 거의 모든 초등학교가 무상급식이며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일부 제외하고는 무상으로 급식이 되고 있었기에, 급식비를 내야 한다는 말에 당황했던 것이다.

뭐 그렇다고 5만 원밖에 되지 않는 급식비가 큰 부담이 될까 싶었는데, 학기가 시작되며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다. 급식비는 5만 원 정도지만 '돌봄교실'과 '방과후수업' 교육비와 간식비를 계산하니 금세 20만 원을 초과해버렸다.

"저도 처음에는 급식비 5만 원만 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수업 준비물과 '돌봄교실' 간식비라든지 '방과후교실' 교육비 등을 내고 나니 한 달에 20~30만 원 가까이가 정기적으로 지출되더라고요, 게다가 태권도나 미술학원, 또는 학원에서 보충수업이라도 하려면 다시 20만 원 가까이 돈이 더 드는데 너무 부담됩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급식비만의 문제는 아니다

S씨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를 정규수업만 하고 집에 있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요즘 아이들의 또래 집단은 학교 정규수업 후 이뤄지는 추가 수업과 수학이나 영어를 배우는 학원에서 주로 형성된다. 간단히 정리하면 학교 정규수업만 받고 오는 아이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가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마치고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젠 부모의 품을 조금씩 벗어나며 스스로 친구도 만들어야 하고 그러한 교우 관계에서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이는 맞벌이 부부뿐만 아니라 외벌이 부부에게도 같은 고민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그녀는 바로 근처 울주군으로 이사를 갈까 생각도 하고 있다고 한다.

"울산의 초등학교 무상급식은 울주군 전체, 동·북구 5~6학년 등만 선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울주군이라 해서 남구와 멀지도 않고 기타 학원가들도 바로 남구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이사를 여러 번 고려를 해봤어요."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지난 9월 교육부에서 국회로 제출한 광역지자체별 무상급식 실시율을 보면, 울산(36.3%), 대구(45.5%), 경북(49.5%)은 50%를 밑도는데 비해 제주(86.9%), 전남(84.5%), 전북(83.7%), 강원(82,1%)은 80% 이상의 높은 무상급식 실시율을 기록하고 있다.

울산의 경우 울주군의 초등학교와 동·북구의 일부 학년만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고, 남구나 중구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는 복지국가로의 공약을 약속했던 현 정부의 교육철학과도 상당히 어긋나는 부분이다.

무상급식은 포퓰리즘?

이처럼 우산의 무상급식 비율이 저조한 것은 박맹우 전 울산시장의 지론이었다. 무상급식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며, 그다지 절실하지도 예산이 풍족하지도 않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울산교육감이었던 김복만 교육감 역시 예산부족을 이유로 무상급식이 아닌 선택적 복지의 확장을 주장할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과정과 제도를 보자면 이는 단순히 무상급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교육의 장소는 학교 수업을 보충하는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사교육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안 그래도 중산층이 줄어들고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점점 증가하는 사교육과 학교 수업 준비물에 급식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학부모로서는 가벼운 주머니사정이 안타깝기만 하다.

과거 육성회비나 수업료를 내지 못해 교무실에 불려갔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 보기 창피하고 엄마 아빠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혹자는 옛날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아직도 우리 주위엔 5만 원어치 급식비에 쩔쩔매는 가정들이 적지 않다. 점심시간만 되면 영양사나 관리 교사의 눈치를 피해 몰래 밥을 먹는 학생들도 있고, 아예 교실 밖으로 나가 한동안 앉아 있다 들어오는 학생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건강한 마음과 몸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주기 싫다고 서민층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부담을 주는 것은 현실과도 맞지 않다. 게다가 무상급식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일부 정치권의 야합과 정쟁의 도구로 소모되지 말기를 바란다.


태그:#무상급식, #돌봄교실, #사교육,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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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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