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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랜스젠더이자 여성으로서 지금까지 겪은 성 전이(Transition)에 대한 기록을 총 3회에 걸쳐 게재하고자 한다. 이 글에는 내가 여성으로서의 성별정체성을 수용하고 처음으로 여성호르몬을 투여하기까지 겪은 갈등에 대해 담았다.... 기자 말

 태국행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세상. 지난여름, 나는 수술(SRS)을 받으러 태국에 다녀왔다.
 태국행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세상. 지난여름, 나는 수술(SRS)을 받으러 태국에 다녀왔다.
ⓒ 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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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나는 태국 방콕에서 수술(SRS, sex reassignment surgery, 성별적합수술)을 받고 싸늘한 회복실에 누워 있었다. 한국에서 걸려온 지인의 안부전화를 받으며, 나는 그에게 "여기 너무 추워요…"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때 내가 지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이 외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나는 친한 학교친구로부터 내가 방콕에서 요양을 하던 중 그와 통화를 하며 엉엉 울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학교친구와 통화를 했다는 사실만 어렴풋 기억할 뿐, 내가 그와 통화를 하며 무슨 말을 했고 또 정말 울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왜 그때 그 통화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를 걱정해준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그저 안타깝고, 그들에겐 미안할 뿐이다. 또 수술 전후로 내 마음이 휘청거릴 때마다 나를 보듬어준 언니들, 내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며 격려해 준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이들의 가호로 내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 이번 수술을 잘 견딜 수 있었다.

태국에서 약 한 달 동안 체류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는 이번 수술을 비롯하여 내가 트랜스젠더이자 여성으로서 겪은 성 전이(Transition)의 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가 다른 트랜스젠더들에게 참고가 되고 격려가 된다면,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이 성소수자와 여성이 일상에서 세상과 빚는 마찰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면, 나는 무척 기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때로는 가슴 벅찼고 또 때로는 무척 괴로웠지만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우화(羽化)의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나의 욕망과 정체성을 마주보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몸과 성에 대한 고민과 의구심을 안고 살아왔다. 비록 페니스를 가진 채 태어났지만, 지금껏 남성으로 대우받던 상황에서 자연스러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물론 내가 나 자신을 남성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곧 내 성별정체성이 여성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의 성별정체성이 여성 또는 남성 둘 중 하나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고 인식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여성이자 동시에 남성이라고 인식한다. 자신의 성별정체성이 생물학적 성과 일치하는 사람(Cisgender)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Transgender)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짧은 말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세상에는 다양한 성별정체성과 그 성별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들 중에서도 자신을 분명히 여성으로 인식하는 사람에 속한다.

내가 MTF(Male To Female, 흔히 말하기로는 '남성의 생물학적 성별'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성별정체성이 '여성'인 사람)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언제부터 본인이 여성이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이 질문의 의미가 "당신이 처음으로 자신을 여성으로 느낀 순간이 언제인가요?"라면, 나는 그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나와 내 또래 아이들을 여성과 남성 중 어느 한 쪽의 성별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이, 아이들이 줄을 설 때마다 '여자 줄'과 '남자 줄'이 구분되고 출석번호도 '여자 O번'과 '남자 O번'으로 구분되었던, 초등학교 재학시절이 아니었을까 하고 어렴풋이 추측해볼 뿐이다.

하지만 만약 위 질문의 의미가 "당신은 언제 '여성'이라는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받아들였나요?"라면, 나는 그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년 전이었다고 대답한다.

하얀 날개옷을 입고 나풀나풀 춤을 추면서...

2010년의 끝자락이었는지 2011년 초였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겨울날. 나는 그 당시 친하게 지내던 게이 지인의 집에 놀러갔다. 지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나는 얼결에 지인에게 내 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다 자란 내 몸이 우락부락한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아. 내 넓은 어깨도, 굵은 손가락도, 큼지막한 손과 발도 다 싫어. 아니, 불편해. 나는 내가 다 자란 내 몸 때문에 많은 걸 포기했다고 생각해. 이 몸만 아니었다면, 내 몸이 이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내 성적지향에 대한 고민보다 수술에 대한 고민을 먼저 했는데…."

지인에게 이 말을 하고 나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난 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슴 속에 꼭꼭 숨겨온, 나의 성별정체성에 대한 끝나지 않은 고민과 직결되는 소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뱉어 버리다니. 잠시 당황했던 나는 지인에게 "아직 A(당시 나와 사귀던 남자애인)에게는 비밀로 해줘"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때 나는 내 성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A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인 후 내 삶에 생길 변화들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나의 지난 연인들에게 꺼림칙한 존재로 기억될까봐 두려웠고, 만에 하나 나의 성 전이 과정을 가족에게 들켜서 나와 가족 사이의 관계가 단절될까봐 두려웠다. 특히 호르몬으로든 수술로든 내 몸에 어떤 변화를 가한다는 것 자체가 몹시 두려웠다.

그렇게 내가 성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고 혼자 끙끙대는 동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2011년 초봄, 아직 지난 겨울을 잊지 않은 찬바람이 내 뺨을 모질게 때리던 날. 그 날은 또 이상하리만큼 자욱한 안개가 인천 로데오거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날, 나와 A의 연애는 끝났다.

나와 A의 연애가 끝이 난 이유는 그가 나의 성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나와 A의 연애와 사랑도 다른 사람들의 연애와 사랑처럼 평범했을 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나는 A와의 연애와 사랑이 평범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A는 나에게 첫 애인은 아니었지만 첫사랑이었으니까.

나는 마치 끔찍한 악몽을 꾸는 심정으로 짙은 안개 사이를 헤매며 한참을 울다가 문득, 어느 날 밤에 A가 나에게 한 말을 기억해냈다. A는, 난생 처음 흰 샤워가운을 입고 나풀나풀 춤을 추는 나에게 "너 혹시 옷자락이 밑에서 팔랑거리는 게 마음에 드는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잡아뗐지만 사실 A의 말이 옳았다.

조금 더 보태자면 그날 나는 큼지막한 유리창에 비친 내 그림자가 늘씬해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그 그림자가 정말로 내 모습이기를 바랐다. 정말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방구석에서 샤워 가운을 입고 즐거워할 게 아니라 핫팬츠, 미니스커트, 또는 끝자락이 내 발목에 닿을 만큼 긴 치마를 입고 햇살 쏟아지는 거리를 거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안녕, 주말 밤의 종로3가

A와 헤어진 후, 나는 그를 잊기 위해 한동안 일부러 다른 남자를 만나보려 애를 썼다. 이 시기 동안 나는 게이들이 모이는 술번개나 단체 미팅 등에 나가곤 했다. 그러다가 적당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에게 "저 사실은 제가 여성이라고 느껴요"라고 말했다. 이 때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상대마다 달랐다. 내가 만난 사람 대부분은 내 정체성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간혹 자기에게도 트랜스젠더 친구가 있다면서 반갑게 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에게 정신질환이 있는 게 분명하니, 어서 병원에 가보라는 식으로 말했다. 심한 경우에는 나에게 본인의 여성혐오를 쏟아내며 아무런 근거도 맥락도 없이 '한국 여자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시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A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점점 엷어졌다. 그리곤 어느 날 문득 내가 A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 시점부터 내 욕망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일단 나는 짧았던 내 머리카락을 길게 길렀다. 여기저기 층이 진 머리카락을 한 쪽으로 쓸어 넘기고 머리끈으로 질끈 묶으면 기분이 좋았다. 긴 머리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슬슬 '중성적인' 느낌의 옷을 찾아 입기 시작했고 때때로 입술에 붉은색 틴트를 바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성에 대한 갈등과 혼란을 정면으로 마주했고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을 쌓은, 주말 밤의 종로3가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든 건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을 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전처럼 '남성적인' 복장을 하고 집 밖을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여자 옷'을 입고 일상생활을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당장 자취방 집주인이나 학교 친구 등 내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빚는 갈등을 어느 수준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전부터 쭉 가져 온 내 몸에 대한 검열과 혐오가 나를 수시로 좌절하게 만들었다. 내 넓은 어깨와 좁은 골반은 내가 사람들로부터 '평범한 여자'로 비쳐지는 것을 끝까지 방해할 것만 같았다.

사실 당시에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의 골격 차이가 어마어마한 것은 아니다. 또 성차 못잖게 개인 간의 신체적 차이도 분명하다. 미니스커트나 핫팬츠가 안 어울리는 여자는 나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여자 옷 사이즈'라는 건, 그 옷을 입는 여자가 트랜스젠더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현실의 적잖은 여성의 체형과 몸집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내 몸을 미워하고 있던 그때의 나에게 이런 사실들은, 그저 여성학 개론에 해당하는 내용을 다루는 강의 시간에 흔히 듣거나 볼 수 있는 문장들일 뿐, 내가 살아가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들로 여겨졌다. 때문에 나는 아주 나중에야 이 사실들을 인정했다.

설령 내가 정말 '어딜 봐도 상남자'스러운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치장을 하고 어떤 목소리로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못나고 무례하다고 손가락질 받아야 마땅하지, 그런 사람들의 비난이 마치 정답인 양 내가 내 몸을 증오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은 훨씬 더 나중의 일이다.

학교 캠퍼스에 있는 나와 바깥 세상의 나

 2013년 4월 11일, 처음으로 여성호르몬을 맞은 날의 저녁식사.
 2013년 4월 11일, 처음으로 여성호르몬을 맞은 날의 저녁식사.
ⓒ 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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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니는 학교에서 일찍이 MTF 트랜스젠더로서 커밍아웃을 했고, 학교 친구들은 나를 '언니', '누나', '네 이년(!)'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학교 캠퍼스를 벗어나는 순간, 다시 사람들로부터 남성으로 간주되고 대우받는 삶으로 돌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오간다는 건 나에게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난 학교와 바깥 세계의 경계를 드나들 때마다, 학교 캠퍼스에 있는 나와 바깥 세계에 있는 내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내가 하루에 두 사람 노릇을 하며 살던, 2013년 봄 어느 날 아침. 나는 지난밤에 내 속에 술을 실컷 들이붓고는 잔뜩 취해 잠든 탓에 지독한 숙취에 시달렸다. 속이 더부룩하고 머리가 아프고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천천히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두 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며 "아아, 머리 아파…"라고 말을 하고는, 그만 내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지난밤 과음에 지친 내 목에서 낯선 남자 목소리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몹시 불쾌했다. 나는 깨자마자 느낀 놀라움과 불쾌감에 방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숙취를 잊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어느덧 내 어깨에 닿을 만큼 길게 자란 내 머리카락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씩 웃어봤다. 솔직히 말해서 그 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별로 예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보아 온, '여자보다 더 예쁜 여자'라는 MTF 트랜스젠더에 대한 환상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그것이 MTF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 부당하고 폭력적인 요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기준에 부합해야 비로소 안전한 일상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 기준을 충족할 수 없다면 차라리 태어난 몸 그대로 살아가야만 내 삶이 안전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아침,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의 시선에 짓눌린 채 살아가는 것 역시 나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에 찔려서든 내 가슴이 답답해서든, 나는 갈등과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변화하기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곧 나는 자취방 근처 산부인과에서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 '어느 트랜스젠더의 여정' 2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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