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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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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적 대통령제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 개헌 이유로 가장 많이 드는 것 가운데 하나가 "승자독식으로 인한 대립정치를 끝내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기 위해 권력분점을 기반으로 타협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헌법을 개혁해야 한다는 담론은 다른 이면을 감추고 있다. 식물 대통령은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헌법에서는 제왕적 대통령과 식물적 대통령이 공존한다. 임기 전반은 제왕이고, 후반은 식물이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가 가능할 때에는 제왕이다. 하지만 인사권을 상실하기 시작하고, 차기 대선후보에게 줄서기 시작하면 식물로 급전직하한다. 핵심 정책조차 주요 후보진영으로 줄줄이 새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가운영이 공동화하는 것이다. 정책으로 심판받거나 능력을 보여주는 헌법 구조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늘 제왕적 대통령만 부각시켜왔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수록 대통령은 식물로 전락하면서 정책적으로 완전 부유한다. 임기 후반에 대통령은 힘과 정책의 중심이 아니다. 이미 차기 대선후보가 중심이 되면서 정부는 정책을 제대로 결정할 수도 집행할 수 없다. 5년단임이 아니라 사실상 4년단임과 마찬가지다. 제왕적 대통령제만 강조할 게 아니라 식물적 대통령제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섯 대통령이 모두 겪었던 현상이다."

- 개헌한다는 것은 '87년 체제를 변화시킨다'는 것인데,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
"그것은 한마디로 좋은 삶, 좋은 사회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민주주의', '능력있는 민주정부'의 건설이다. 민주적 국가운영의 가장 중요한 핵심원리인 책임윤리와 책임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리하여 6월항쟁 때 논의하지 못했던 국가구조, 국가체제, 국가내용, 국가능력을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저는 '87년 체제'라는 용어보다 '6월항쟁 체제'라는 용어를 쓴다. 당시에는 '우리 정부는 우리(국민)가 구성한다'는 국민주권 원칙에 충실했다. 민주적 정부수립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이 정신에만 온통 집중한 나머지 민주정부의 내용, 제도,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다. 정당과 정당정치를 보자. 대통령 임기 전반기 동안 집권당은 대통령의 지시와 통치를 받드느라 정당으로서 역할과 의회요소로서의 기능을 완전 상실한다. 반면 임기후반엔 미래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대통령과 대립하느라 집권당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다. 이 말은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정당과 의회가 '헌법구조상' 정치와 정책의 중심에 결코 설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에서 좋은 민주주의, 능력있는 민주정부, 바람직한 정당체제 발전은 불가능하다."

- '87년 체제' 피로감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 피로감은 정치피로감, 정치혐오를 말한다. 특히 의회정치에 느끼는 피로와 증오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 헌법 구조에서 의회는 비판, 반대, 조사, 청문절차와 같은 '소극적 정치'만 한다. 입법의 주도권 역시 제한적이다. '적극적 정치'의 영역인 인사, 예산, 정책, 감사의 모든 결정권한은 대통령과 행정부에게 있다. 그런데도 비판은 주로 정당과 국회가 받는다. 적극적 정치의 권한을 갖지 못한 영역에 비판을 집중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정치의 중심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국회가 가장 심각한 비판을 받는 모순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87년 체제에 느끼는 실질적인 피로감이 뭐냐? 가장 핵심적인 요체는 이 체제에서는 경제는 발전하는지 모르지만 사회갈등은 더욱 심각해지고 국가가 발전한다는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경제, 재벌, 기술, 기업, 수출은 나아지는지 모르지만 이념, 세대, 지역, 계층갈등은 점점 심각해지고 대한민국이 발전한다는 확신은 거의 들지 않는다. 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묻기 시작한 것이다.

두번째 피로감의 요체는 공동체의 연대가 강화되거나 개인이 발전한다는 인상도 가질 수 없다. 반면 극단적인 양극화, 이념화, 진영화를 포함해 국가공동체는 점점 해체되고, 개인 삶들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과연 한 나라에 산다는 게 무슨 의미를 갖는지도 모를 정도로 극단적으로 대결하고 있다. 실업자, 구직자, 비정규직, 하층민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루하루의 일상조차 힘에 부치고 눈물겹다. 삶이 이런데,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선거는 왜하며 정부는 왜 바꾸느냐는 극단의 피로감과 정치혐오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최상층의 생각과 삶은 이들과는 완전히 딴 세계인 것처럼 안정적이고 부유하며 다르다.

세번째 피로감은 대통령 개인, 즉 사람요인이다. 대통령의 교체가 반복되며, 우리는 자신과 이념적으로 동일한 사람이 집권했을 때 잠시를 빼고는, 극단적인 실망을 반복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몇 번의 대통령을 경험하면서, 짧은 기대와 긴 실망, 단기적 희망과 장기적 좌절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요인이 주는 압도적인 실망의 크기로 인해 제도요인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저는 제도요인과 인간요인이 결합되어 계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 집단적 희망고문을 이제는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본다. 이 피로감은 너무 자주 너무 깊이 좌절과 절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제가 때 이르게 김대중 정부시기부터 헌법개혁을 주창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 국회 헌법 논의 개입은 3권 분립 위반"

지난 10월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를 언급하며 '개헌 논의 등'에 대한 자제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 박 대통령 "개헌 논의 등" 자제 요청 지난 10월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를 언급하며 '개헌 논의 등'에 대한 자제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 청와대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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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어떤가?
"박근혜 대통령 역시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의 집중에 따른 국민적 피로감이 크다. 그러한 구조적 요인에다가, 주요 공약들의 급속한 철회와 무능한 국정수행에서 보다시피 너무도 빠르게 피로와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대통령이 주요 현안에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 외고집과 불통으로 인한 피로감은 더욱 크다. 심지어 세월호 특별법이나 개헌 논의에 개입한 것은 3권분립 위반의 측면마저 있다.

현재 국정의 현안, 또는 교착국면 역시 대통령 개인 보위와 직결되는 측면이 크다. 이를테면 세월호 특별법 교착,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판결, <산케이> 서울지국장 기소, 인터넷 공간 사찰과 정보통제 등 네 가지 현안 문제는 대통령 권력창출의 정당성과 심기의 보호를 둘러싼 요인이 크다. 민주주의의 수준과 직결된 사안들이 대통령 개인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상징한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판결문의 경우 법리는 고사하고 논리적으로도 전혀 일관되지 않았다. 정치에는 관여했지만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현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해주기 위해 판결문이 일관되지 않은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 역시 대통령 조사문제가 핵심갈등사안이다. <산케이> 보도를 둘러싼 문제도 대통령을 보호하려다 국제적으로 확대됐다.

이러한 대통령 피로감은 상당 부분 현행 헌법구조에서 온다. 노태우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요인은 한국정치의 최대의 문제점이었다. 한국정치의 최대문제점은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인 것이다. 무능한 의회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됐다. 지금까지 선거인 절반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500만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조자 선거인수 대비 겨우 30.5%에 불과했다. 현행 헌법 하에 치러진 대선 중 최하 득표율이다. 요컨대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었다면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의 낮은 득표다. 결국 제도요인으로 당선된 것이다.

현재와 같은 권력구조, 정당체제, 의회제도의 극적인 상호 모순 하에서는 국민 의사가 정상적으로 반영되기 어렵다. 1인1표가 정상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앞서 언급한 이념-세대-지역-계층에 따라 표의 등가성이 심대하게 왜곡된다. 의회 구성에서 지역과 선거구에 따른 일인일표의 왜곡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현재의 선거구제와 의회구성은 전면적으로 혁파되어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투표율에 따른 표의 왜곡은 심각하다. 한 가지만 살펴보자. 지난 대선에서 선거인수 비율은 50대와 60세 이상이 전체의 40.3%이지만, 투표자수 비율은 43.4%로 상승한다. 반면 19세-20대-30대의 경우 선거인수는 전체의 37.9%지만 투표자수는 전체의 34.8%로 줄어든다. 전체 투표자수는 무려 8.6%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노장년 세대가 크게 앞서는 굉장한 차이다. 사실상 노장년세대가 선거결과를 좌우했다.

실제 숫자를 보자. 당시 선거의 총투표자수는 3072만1459명이었다. 그렇다면 50대-60대 연령대와 19-20대-30대 연령대의 투표자수 차이는 무려 264만 2000명에 이른다. 노장년 세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이러한 투표율 차이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요구가 반영되는 선거결과가 나올 수는 없다. 삶을 20~30년 남긴 세대가 50~60년을 남긴 세대의 미래 삶을 결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후보는 세대요인에서 264만표가 불리했는데도  단지 110만 표 차이로 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는 지역, 이념, 계층요인에서는 크게 앞섰다고 할 수 있다.

투표를 하지 않은 유권자는 물론 지역, 이념, 계층을 막론하고 대통령에게 느끼는 피로감과 실망이 매우 빠르게 다가오고, 아주 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다면, 득표율이 훨씬 낮았던 앞의 대통령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재오 의원 출판기념회 '이제는 개헌이다'에 참석해 이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재오 의원 출판기념회 '이제는 개헌이다'에 참석해 이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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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내각책임제도 가능하다는 얘기인가?
"분명한 것은 단순다수대표제보다는 비례대표제가, 대통령책임제보다는 의회책임제가 자유, 평등, 복지, 민주주의에 더 낫다는 것이다. 선진복지국가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다. 이것은 무엇을 얘기해주는 것인가? 국가가 발전하는 단계, 특히 경제성장단계에서는 대통령책임제가 적합할 수 있다. 그러나 선진복지국가단계에서는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위해서는 의회책임제가 훨씬 유리하다. 한국사회가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의회책임제는 아직 어렵다고 본다. 우선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 열망이 강하기 때문에 대통령 책임제에서 바로 의회책임제로 가기 어렵다. 그래서 저는 분권형 대통령제, 반(半)대통령제, 준대통령제를 주장해왔다. 또한 현재의 한국 정당체제와 의회정치의 수준에 비추어 의회책임제를 시행하기에는 이르지 않나 싶다. 다른 한 이유는 사회경제부분, 이른바 사회경제적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어있는 독점, 과점 상태에서 의회책임제는 부패의 심화를 초래할 수 있다. 재벌의 영향력은 지금 사회 모든 부문을 압도할 정도로 너무 막강하다.

과연 현재의 정당과 의회가 재벌, 관료, 언론, 학교, 종교 등 상층부 카르텔을 제어하고 개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벌체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한국사회가 이렇게 정체돼 있는 것은 재벌체제와 관련돼 있다. 막강한 재벌구조가 관료, 대학, 종교, 법조체제에까지 강고한 상층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정당체제가 갖추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의회책임제를 실시하면 그 의회책임제는 대통령무책임제를 넘어서 다시 의회무책임제, 정당무책임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진보의 개헌 반대는 보수기득세력 크게 도와주는 것"

- 그동안 정치권과 학계에서 계속 개헌을 논의해왔는데 왜 실행되지 못했다고 보나?
"기득세력, 대통령, 의회, 진보세력, 이 네 가지가 핵심요인이다. 먼저 보수적 기득세력의 경제논리에 따른 저항이다. 대통령과 재벌, 보수 언론, 학계 등은 헌법개혁에 따른 민주주의의 확장을 원하지 않는다. 반정치적, 반의회적 정서를 공유하는 그들은 막강한 권력과 이익을 보장해주는 현재의 헌법체제가 좋은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의 반정치, 반의회 정서를 활용해 헌법개혁논의가 초래할 정치확장과 질서변동을 제어하려 한다. 시장의 실패를 시장이 해결할 수는 없다. 경제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헌법을 개혁하려고 할 때마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기득세력은 이를 비판해왔다. '경제가 문제다, 개헌은 블랙홀이다, 경제가 중요하다, 그러니 개헌은 안 된다'는 말은 오히려 완전히 거꾸로 접근해야 한다. 즉 국민경제가 안 좋기 때문에 헌법구조를 포함한 정치질서를 바꾸어야 한다. 경제가 좋다면 오히려 정치질서를 전혀 바꿀 필요가 없다. 선진국들의 경우도 나라가 위기였던 시점에 국가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했다. 경제가 잘 나가면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경제가 좋다는 것은 체제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지 않고 시민들의 삶과 경제가 계속 안 좋다면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헌법개혁은 민주주의역량을 반영하는 문제다.

둘째는 대통령요인이다.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들은 개헌을 약속하거나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헌법개혁은 항상 당시 대통령의 임기 전반에 추진해야 한다. 임기 후반에는 대통령이 식물로 전락할 뿐만 아니라, 이미 차기주자들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헌법개혁은 미래권력 구조를 향한 경쟁이 된다. 차기주자들이 가시화되면 그들의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충돌하기 때문에 헌법개혁은 불가능하다. 이 헌법을 개혁한다고 해도 현임 대통령의 임기는 제한받지 않는다. 따라서 임기 초반에 개헌한다고 해도 권력행사와 임기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대통령이 임기 전반에는 제왕의 지위를 다 누리고 나서 식물로 전락한 뒤 개헌을 시도해서는, 진정성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또 성공할 수도 없다.

끝으로 의회 책임도 크다. 의회가 개헌을 주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개헌이 국민적 지지를 받으려면 국회의원들의 특권 축소와 함께 가야 한다. 헌법개혁의 중심 주체는 의회다. 내용 역시 핵심은 민주주의 확대와 대통령권력 축소인데 그렇게 하려면 의회권한과 역할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지 않고 의회의 권한을 키우고 그들이 주도하는 개헌이 가능할까? 그건 불가능하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우리 국회의 규모는 최소 500명, 최대 900명 사이여야 한다. 제헌국회 때 국민 10만명당 의원 1명이었다. 5·16 쿠데타 때부터 대폭 줄었는데 그때 구조가 지금까지 왔다. 의원을 500명 이상으로 늘려야 정상이다. 상원과 하원도 나누고, 비례대표도 대폭 늘려야 한다. 의회 권한은 키우되 의원 개인의 특권은 대폭 축소해야 한다. 하지만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은 폐지하면 안 된다. 국민 대표가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기관을 비판하는 것은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노회찬 사례'가 생기지 않는다.

국회의원 특권의 핵심은 돈 문제다. 그들은 명예와 권력도 갖고 부(富)도 가지려 하기 때문에 안 된다. 이걸 내려놔야 국민들이 그들의 진정성을 믿어준다. 의원이 되면 경제 기득이익이 지나치게 많다. 의원 급료가 OECD 평균은 1인당 GNP의 2배를 조금 넘으나 한국은 무려 5.5배다. OECD 국가의 평균은 2.08배다. 노르웨이 1.1배, 스웨덴 1.7배, 핀란드 2.7배, 벨기에 2.3배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많아도 지나치게 많다. 절대액수로도 구매력 기준으로도 독일, 영국,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보다 높다. 우리나라의 5.5배보다 더 높은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그래서 국회의원 급료를 절반 이상 삭감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헌법개혁 의지를 인정받는다.

반면 우리나라 의회 예산은 안성시나 광명시 수준으로 작다. 게다가 주로 의원이나 보좌관 등 인건비에 집중돼 있다. 정책비용은 아주 적다. 다른 나라들은 인건비는 적은데 정책개발, 입법 등 정책비용이 크다. 의회예산을 늘려야 한다. 인건비를 대폭 축소하고 정책비용을 대폭 늘려야 한다.

진보세력 역시 문제가 많다. 혁명이 불가능할 때 진보의 확장은 기본적으로 제도를 문제삼는 것이다. 혁명이 아니라면, 권력의 구성방법과 절차를 바꾸지 않고 진보가 성장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는 제도, 특히 헌법에 느끼는 문제의식이 대단히 허약하다. 그들의 토대와 역량에 비해 의회 대표성과 권력진출—연립정부를 포함해-이 현저히 허약한 것은 제도요인이 아주 크다. 기존 제도로 인해 크게 손해를 보고 있는 진보가 헌법개혁을 반대하는 것은, 기존제도로 인해 커다란 이익을 보고 있는 보수기득세력을 크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다. 내 지식의 범주에서 이러한 진보는, 불가능한 급진혁명을 꿈꾸는 경우가 아니고는 거의 알지 못한다."

"선거구제 개편이 개헌 반대하는 논리가 되어선 안 돼"

-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헌을 평가한다면.
"지금 개헌 논의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왜 개헌하는가' 하는 문제다. 현행 헌정체제로는 능력있는 좋은 민주주의, 좋은 나라, 좋은 삶을 만들기 어렵다. 거기에 방점이 놓여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 하나를 얘기하면서 4년 중임이나 분권형으로 바꾸면 된다고 하는 것은 선후가 바뀌었다. 한국 민주주의나 한국사회의 모습, 한국적 삶이 좋지 않는 이유를 정밀하게 진단한 뒤, 헌법질서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를 파악해서 개혁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 일부 그룹에서는 '7공화국 운동'을 주창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와 헌정체제에 관한 한 '몇 공화국'이라고 하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른 표현도 아니다. 노태우 정부로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를 제6공화국이라는 같은 범주로 묶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민주주의 내용의 편차와 다양한 여러 현실을 호도할 뿐이다."

-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이 개헌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예를 들면 "'비례대표 강화, 결선투표제 도입, 선거구제 개편' 이후에 개헌하자"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부분적으로 맞는다. 그러나 그것을 선후의 문제나 양자택일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선거, 정당, 국회, 지방자치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부분들을 그동안 수차 개혁해 왔지만 원했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권력독점이라는 근본적인 헌법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구제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헌법개혁을 반대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같이 가야 한다. 선거구제를 개편하더라도 권력독점을 그대로 두면 원하는 목적을 거의 달성할 수 없다."

- 먼저 선거구제를 개편한 뒤에 개헌하는 단계론도 가능해 보인다.
"동시에 한다면 더욱 좋고, 개헌을 전제로 선거구제를 개편하는 것도 좋다. 선거구제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선거개혁과 헌법개혁은 선후나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선거개혁만으로 좋은 민주주의, 능력있는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현행 체제에서는 부분개혁으로는 좋은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


태그:#박명림, #개헌, #헌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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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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