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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 대전에 있는 효 공원에서 효축제가 열립니다.
 매년 가을 대전에 있는 효 공원에서 효축제가 열립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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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고, 샘 없는 물줄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라도 조상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두 대(代) 아니 서너 대쯤의 조상이야 가족관계증명서나 호적등본 등을 이용해 확인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 조상, 세기(世紀)를 달리하는 선조들을 확인하는 데는 족보만한 것이 없을 겁니다.

대전에 오면 효 월드(뿌리공원)가 있습니다. 효 월드에는 뿌리공원도 있고 족보박물관도 있습니다. 뿌리공원에는 성씨별 조형물이 130여 작품이 넘게 전시돼 있고, 박물관에는 한 눈에 여러 성씨의 족보 들을 둘러 볼 수 있도록 잘 전시돼 있습니다. 1000여 성씨의 유래에 대한 정보도 읽을 수 있습니다.

족보박물관에는 족보의 변천사와 족보가 어떤 절차와 어떤 작업을 걸쳐서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까지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시청각 자료로 잘 꾸려져 있어 단 한 번만의 관람만으로도 족보가 뭔지를 모르는 청소년에게 족보가 뭐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설명해 주기에 딱 좋은 곳이라 생각됩니다.

그냥 성씨만을 기록한 기록물이 아닌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지은이 박홍갑 / 펴낸곳 도서출판 산처럼/2014년 8월 25일 / 값 2만 5000원)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지은이 박홍갑 / 펴낸곳 도서출판 산처럼/2014년 8월 25일 / 값 2만 5000원)
ⓒ 도서출판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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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지은이 박홍갑, 펴낸곳 도서출판 산처럼)는 족보에 대한 전반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족보에 대한 정의, 족보가 갖는 시대적 가치, 족보의 유래와 변천사는 물론 족보가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조되거나 위조 돼 활용되고 있는지 등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이름 앞에나 당연히 붙어있는 게 김·이·박·최·정과 같은 성입니다. 각각의 성은 당연 태고부터 사용되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조선 전기만 해도 인구의 약 40%는 천민이었다고 합니다.

성이 없었던 천민들이 조선 후기로 가면서 조금씩 족보에 등장해 성씨를 획득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성씨는 신라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족보 또한 15세기부터 출현하기 시작해 17세기가 돼서야 보편화 된 것이라고 하니 아주 까마득한 전설 속 기록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족보를 알고, 족보의 변천사를 안다는 건 결국 족보가 품고 있는 시대적 가치와 문화의 변천사를 읽는 게 됩니다.

내시 가계를 잇는다는 것은 양자를 들이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를 이어가는 자손 모두 성씨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시조부터 15세까지 지낸 관직과 성명·본관·묘소의 위치나 좌향 등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으며, 시조가 청도에 입향한 내력도 수록되어 있는데, 그 시기가 1500년대였음을 알려준다.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075쪽-

자식을 나을 수 없었던 내시에게도 족보가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족보가 갖는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이해하게 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나이를 먹은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족보라는 것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만 그런 게 아닐 겁니다. 명절 때, 동년배 친척들이 만나 나누는 대회 중에 족보이야기가 자연스레 종종 등장합니다. 하지만 족보라는 게 참 재미없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전부가 한자로 돼 있어 읽기 힘들고, 편집 또한 세로로 돼있어 선뜻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똑 같은 형식의 반복이라 지루하기조차 합니다.

족보박물관, 족보가 어던 과정과 절차를 걸쳐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족보박물관, 족보가 어던 과정과 절차를 걸쳐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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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박물관에 전시 돼 있는 각 성씨별 족보
 족보박물관에 전시 돼 있는 각 성씨별 족보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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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약간의 지루함 쯤을 극복하고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역사시간에나 배웠던 인물이 내 조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책에서나 봤던 인물, 나와는 상관없는 역사 속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누군가가 내 조상이라는 것까지를 확인하고 나면 알듯 모를 듯한 관심이 생길 겁니다.

관심이 생기면 읽게 되고, 읽다보면 인물에 대한 정보를 더 알게 되는 것은 물론 재미없게만 생각되었던 역사가 시나브로 재미있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알면 알수록 재미있어지고 흥미진진해 지는 게 족보일 수도 있습니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조선 후기에 이런 종류의 서식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군역의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양반의 판정 근거는 오로지 가계기록과 족보였다. 공공기록이었던 호적의 기능을 사적 이록인 족보가 대신한 것이다.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209쪽-

1766년에 발행된 선산임씨 족보 중. 외고손자까지 기록돼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766년에 발행된 선산임씨 족보 중. 외고손자까지 기록돼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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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진은 필자의 뿌리인 선산임씨들이 1766년에 처음으로 발행한 족보, 창시보 중 한 페이지입니다. 내용을 보면 족보에 외고손까지 기록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기록들을 통해 시대적 변천사, 그때까지만 해도 딸들을 출가외인으로만 취급하던 여성 차별적 가치가 그리 두텁지 않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족보는 단순하게 누가 누구의 자손임을 열거한 기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족보는 사회진출을 위한 발판이었고, 근거였으며, 증빙자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위조와 변조, 끼워 넣기와 사고팔기가 성행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족보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케케묵은 궤짝 속 이야기쯤으로 치부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족보에 목을 매야하는 사연은 아직도 현실로 존재하는 실상이며, 드러나지 않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뿌리 찾기(더 정확하게는 조작)라는 것을 책에서는 실례로 들려줍니다.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지은이 박홍갑, 펴낸곳 도서출판 산처럼)를 통해 각각의 이름 앞에 꼭지처럼 들어가 있는 성(姓), 뿌리의 본향을 나타내는 본관(本貫), 그들만의 관계를 줄줄이 꿰고 있는 족보가 갖는 의미와 유래, 변천사까지를 알고, 내 조상과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족보'를 읽게 되면 족보를 통해서 새길 수 있는 의미는 훨씬 더 깊어지고 넓어지며 오묘해 지리라 생각됩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지은이 박홍갑 / 펴낸곳 도서출판 산처럼/2014년 8월 25일 / 값 2만 5000원)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 족보를 통해 본 한국인의 정체성

박홍갑 지음, 산처럼(2014)


태그:#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박홍갑, #도서출판 산처럼,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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