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성 정체성은 타고날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길러질까. 동성애자 같은 성 소수자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성 정체성의 후천설을 지지한다. 그들은 동성애자를 '비정상'으로 여기곤 한다. 그 비정상을 치료와 교육을 통해 '정상'으로 돌려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 정체성을 타고나는 것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에 반대한다. 그들은 성 정체성이 그 어떤 교육이나 훈련 등 외적 요인으로도 바뀔 수 없다고 말한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 알마

관련사진보기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는 남자로 태어났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14살 때까지 여자로 살다가 다시 남자로 돌아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이다. '본성 대 양육 논쟁의 전환점이 된 일란성 쌍둥이에 관한 기록'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성 정체성에 관한 논쟁적인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

책에 담긴 이야기와 이를 통해 드러나는 저자의 주제 의식은 무척이나 교훈적이다. 성 정체성에 관한 우리의 얕은 지식과 관점, 나아가 미심쩍은 과학 기술이 야심만만한 과학자의 욕망에 결부되어 인간에게 섣부르게 적용될 때 부닥칠 수 있는 파국적인 비극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책 내용은 방대한 의료 자료와 연구 논문, 신문 기사 등 다양한 사실 기록물에 근거한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불행한 삶을 살다 간(이 책의 주인공은 2004년에 엽총 자살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 어떤 빼어난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다. 시종일관 유지되는 긴장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다.

"새까매서 조그만 노끈 비슷하게 보이더군요. 그마저도 뿌리까지, 몸 바로 앞까지 다 타버렸고." 론(기자 주-주인공의 아버지)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석탄 조각 같았어요. 그 지경이 됐으니 원상복구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었죠." … 그 후 며칠에 걸쳐 브루스(기자주-데이비드 라이머의 어렸을 적 이름)의 성기는 서서히 마르면서 차츰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머지않아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36쪽)

캐나다 출신 데이비드 라이머의 불행이 시작되는 순간에 대한 생생한 묘사다. 생후 8개월 무렵, 데이비드는 포경수술을 받다 성기를 통째로 잃어 버렸다. 절단기에 전류를 흘려보내 절단 부위를 지져 혈관을 봉합함으로써 출혈을 막는 데 쓰이는 전기 소작기를 집도의가 잘못 쓴 결과였다.

 억지로 주입된 성(性), 가능할까
 억지로 주입된 성(性), 가능할까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절망에 빠진 데이비드의 부모는 그를 세계적인 존스홉킨스병원의 성(性) 전문가에게 데려갔다. 존 머니라는 이름의 심리학자였다. 당시 머니 박사는 "성 혁명계의 공작원"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었을 정도로 성에 대해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머니 박사가 1952년에 쓴 박사학위논문은 <반음양: 인간 본성의 패러독스에 대한 연구>였다. 그는 이후 6년간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심리호르몬 연구팀을 꾸려 중성(반음양) 환자에 대한 연구를 보강한다. 이에 따라 중성 어린이들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성 구분 없이 태어나며, 양육에 따라 남성적인 기질과 여성적인 기질을 습득하게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은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는 이론이 있지만, 반음양 환자들을 관찰한 결과 알 수 있듯이 심리학적으로 볼 때 출생 당시 중립적이었던 성별은 성장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성적인 쪽으로 혹은 여성적인 쪽으로 차별화되기 시작한다." (59쪽)

저자는 머니 박사의 주장을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파란색 옷을 입느냐 분홍색 옷을 입느냐, 남성적인 이름이 붙여지느냐 여성적인 이름이 붙여지느냐, 총을 가지고 있느냐 인형을 가지고 노느냐에 따라 자신을 남자 혹은 여자로 인식하게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양육에 따라 남성이 여성이 될 수도 있다는 머니 박사의 주장은 절망에 빠진 데이비드의 부모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데이비드는 곧 머니 박사에게 맡겨졌다. 데이비드는 젖먹이 무렵 머니 박사 팀의 저명한 성 전문의들 손에 의해 거세와 그 밖의 생식기 수술을 받았다.

데이비드는 이름도 '브렌다'라는 여자 이름으로 바뀐다. 이후 12년간 그에게 여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도록 집중적인 훈련이 가해졌다. 머니 박사는 브렌다에게 기본적인 호르몬 치료와 함께 사회적·정신적 교육을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머니 박사는 상상할 수 없는 엽기적인 실험을 강요하기도 했다. 어린 브렌다에게 성교 흉내를 내도록 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놀이 삼아 성 관계를 흉내 내야 성 정체성이 바로 잡힌다는 믿음에서였다.

머니 박사의 확신(!)에 찬 노력 덕분이었을까. 데이비드의 사례는 성 전환의 탁월한 성공담으로 의학계에 보고되었다. 성에 관한 한 혁명적인 주장을 펼치면서 이미 유명 인사가 된 머니 박사는 세계적인 거물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1997년에 "금세기 최고의 성 전문가"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성이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결정된다는 머니 박사의 이론은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확산에도 기여했다.

14년간 자신의 성(性) 몰랐던 아이

하지만 머니 박사가 학계의 거물이 되어 승승장구하는 사이 데이비드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머니 박사의 주장과 달리 '그'는 완전한 '그녀'가 되지 못했다. 데이비드의 '여성화'를 위한 호르몬 치료와 교육은 아무런 효과도 가져오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극심한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다.

급기야 14살이 됐을 무렵 브렌다가 된 데이비드는 자살을 시도했다. 부모는 더 이상 비밀을 숨기지 못하고 브렌다에게 원래의 성을 알려준다. 12년간 강요된 성별에 따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소녀는 다시 소년이 되었다. 하와이대학교의 생물학자 밀턴 다이아몬드 박사가 한 의학 전문지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데이비드가 강제로 부여된 여성이라는 성별에 어떻게 반발했고,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14살에 다시 원래 성으로 돌아갔는지 폭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롤링 스톤>의 객원기자였던 저자 존 콜라핀토는 1998년에 '존/조앤의 실제 이야기'라는 제목의 기사로 데이비드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폭로했다. 이 기사는 2000년 전미잡지편집자협회상 보도 부문을 수상한다. 1998년의 기사를 토대로 엮은 이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고, <반지의 제왕> 감독인 피터 젝슨에게 영화 판권이 팔렸을 정도로 많은 이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비운의 주인공 데이비드 라이머는 2004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비록 그는 자살했지만 생전의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불행을 더 이상 겪지 말아야 한다며 큰 용기를 낸 사람이었다.

저자가 <롤링 스톤>에 기사를 쓸 당시 그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저자와 6개월 동안 분명 고통스러웠을 인터뷰에 성실히 응했다고 한다. 머니 박사의 허위 보고로 인해 수천 명의 다른 신생아들이 똑같은 성전환수술을 받는 사실에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이야기는 다분히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범주에 속하지만 본성과 양육 논쟁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단순히 성 정체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했던 인물이다. 그의 경험담은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자신의 본모습을 지켜야 하고, 억압하고 조롱하고 억누르고 뒤흔드는 세상에 맞서 싸울 의무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354쪽)

저자는 영아기의 성전환수술이 일반인의 예상보다 훨씬 빈번하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머니 박사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생식기에 손상이 있거나 그것이 비정상적인 신생아들은 성전환수술을 받는 것을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여기는 이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 신생아들이 성장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겪을 고통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존 콜라핀토 지음, 이은선 옮김 / 알마 / 2014. 8. 11. / 370쪽 / 1만 58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 본성 대 양육 논쟁의 전환점이 된 일란성쌍둥이에 관한 기록

존 콜라핀토 지음, 이은선 옮김, 알마(2014)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