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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쓴 책 <나의 한국현대사> 표지.
 유시민이 쓴 책 <나의 한국현대사> 표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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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씨는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2013년에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써냈다. 그 이후 독자들과 함께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던 저자는 시선을 과거로 돌린 듯 하다. 자신이 걸어온 길과 한국이라는 사회가 겪었던 일을 돌아보면서 그 사이의 접점을 찾고 나름의 의미를 짚었다. 그 결과물이 지난 7월에 발간된 <나의 한국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삶이 시작된 1959년부터 오늘날인 2014년까지, 55년의 기록에서 한 남자가 겪었던 우여곡절과 그가 속해있던 국가의 변천사도 관찰할 수 있다. 59년 돼지띠로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난 유시민씨는 역사교사였던 아버지의 다섯번째 아들로 자랐다. 그가 태어난 직후인 1960년에 이승만 대통령이 4·19혁명으로 하야했다.

이듬해에는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한국은 18년간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 놓인다. 끝나지 않은 탄압의 시절은 80년대의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진다. 그 후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민주화운동의 서술과 당시 상황의 사실적 묘사는 자못 흥미롭다. 이명박 정권에서 벌어진 국정원 댓글사건은 여전히 수사중인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책의 내용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누구나 들었음직한 이야기지만 단순히 평범한 사건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례대로 다양한 일들을 거론하면서 사건이 발생하게 된 다각적인 배경과 당시 느꼈던 자신의 경험과 감상을 덧붙인다. 독자로 하여금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과 각종 문헌을 참고한 글이 뒤따른다.

각각의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꽤 균형잡힌 것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소개하지만, 헌법에 입각하여 주된 판단을 내리는 부분에서는 보수주의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도 엿보인다. 또한 참고문헌도 진보진영에 유리한 내용만 발췌하지 않았으며, 우익논객 조갑제의 글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본문에서 보수진영의 인사라고 해서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닐 뿐더러, 진보진영의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태도도 발견할 수 있다.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역동적인 한국사

안보국가에서 출발해 발전국가와 민주국가를 거쳐 복지국가로 나아간 것은 인류의 문명사에서 보편적인 국가의 '계통발생'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 과정을 정확하게 압축·재현했다. 국가의 진화는 '욕망의 위계'를 반영한다. 문명 발생 이후 호모 사피엔스가 생물학적 진화를 이루었다는 증거는 없다. 1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동일한 위계를 가진 동일한 욕망을 품고 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생리적 욕망'부터 충족한 다음 더 고차원적인 욕망을 충족하려고 한다. 인간 공동체인 국가도 '생리적 욕망'의 충족을 도모하는 데서 출발해서 안전, 자유, 존엄이라는 차원 높은 욕망 충족을 향해 나아간다. (본문 57쪽 중에서)

한국현대사를 만든 힘이 '욕망'이라는 저자의 말은 상당히 공감되는 견해이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가 '욕망'에서 출발하여 도달한 시간들의 합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류가 공동체를 꾸린 것은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싶은 바람에서 비롯된 것 아니던가. 법을 만들고 평등을 추구하는 것도 자유와 인권과 같은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욕구이지 않은가.

피비린내 풍기는 독재와 침략, 전쟁의 역사도 거슬러 올라가보면 누군가의 욕망에서 싹을 틔운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많은 일의 뿌리가 된 각각의 욕망은 그 존재와는 별개로 정당성 여부를 살펴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말이다.

정치 동료였던 노회찬씨가 일전에 대통령의 업적을 '솥뚜껑'에 비유했던 것처럼, 저자인 유시민씨도 본문에서 한국현대사를 '비행기 이륙'에 빗댄 것이 인상적이다. 60년 동안 한국이 기록한 경제지표(1인당 GDP 등)를 그래프로 표시하자, 가파르게 상승하는 곡선이 활주로에서 날아오른 비행선의 궤적과 닮았다는 것이다. "60년대 초 한국경제는 (연료도 활주로도 없어서) 시동을 걸지 못한 비행기였다"거나 10월 유신 이후로 점차 높아지는 그래프에 "비행기는 가속도를 붙이면서 활주로 위를 달렸다"는 등 각 시대에 대한 평가도 수긍이 되는 면이 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90년대에 급상승하던 비행고도는 김영삼 정부 시절 IMF를 만나면서 곤두박질하여 반토막난다. 어렵사리 반등한 뒤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10년간 불안정하지만 지속적 상승세를 탄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환율관리 실패와 2008년 금융위기라는 난기류를 겪으며 하락하여 전과 같은 상승곡선을 유지하지 못한다.

경제적인 면 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화적 사건의 흐름도 빼놓지 않는다. 당대의 유행가나 그 노래가 정부에 의해 금지곡이 되었던 사연, 야간 통행금지와 장발단속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를 들썩인 중요한 일들을 비교적 빼놓지 않고 자세하고도 다양하게 다루면서, 저자는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한국사를 400쪽이 넘는 종이 위에 역동적으로 옮겨놓았다.

"4·19와 5·16 둘 모두 일정한 성공을 이루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저자는 참여정부 시절 장관을 지낸 정치인이기도 하지만, 민주화 운동이 뜨겁게 타올랐던 80년대에 직접 대열에 동참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책 속에서 그토록 유명한 '서울역 회군' 사건에 대한 묘사가 어찌 이리 사실적인가 했더니, 본문에 따르면 바로 글쓴이인 유시민씨가 당시 버스 위에 올라가 확성기로 연설을 했던 장본인이라고 한다. 계엄군에 체포된 경험담은 팽팽한 긴장감에 책장이 쉬지 않고 넘어갈 정도다.

정치권 안팎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현실의 정치를 경험한 그는 이제 은퇴를 선언하고 자유인이 되었다. 이제 어느 진영에도 몸 담고 있지 않은 덕분일까? 저자가 책에 "4·19와 5·16 둘 모두 일정한 성공을 이루었다"고 적은 부분에서는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가의 초석을 다졌고,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는 민주진영이 몸서리칠 소리로 들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 정권에서 벌어진 불법선거와 독재, 고문으로 조작한 간첩사건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보수진영이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와 대북관계를 발전시킨 긍정적인 면과 함께 아쉬운 점도 담았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고 통제없이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지만, 정리해고제 도입으로 노동계와 마찰이 생기는 등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역사교과서 문제가 다시 뜨거운 이슈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10일, 교육부가 EBS 수능교재에서 '유신에 대한 서술 줄이고 삼청교육대 관련내용 빼라"고 지시한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된 바 있다. 또한 교육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황우여 후보는 '국정교과서 전환'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과 해당 발언은 획일적인 역사를 가르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역사교과서에서 일부 내용만 부각하거나 삭제하려는 태도는 국가가 특정 관념을 강화하려는 발상은 아닌지 의심되기도 한다.

반면 <나의 한국현대사>를 통해 유시민은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 자신이 그런 것처럼, 이 땅위의 누구든 각자의 삶을 토대로 나름대로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비록 수치와 안타까움, 회한으로 채워져 있을지라도 말이다. 게다가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룩한 것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거론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어느 특정집단에게만 듣기좋은 소리가 아니면서, 동시에 모두가 불편할 이야기를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저술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만약 누군가 한국의 현대사를 알고자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유시민이 쓴 <나의 한국현대사>가 역사교과서로 손색없다고 답할 것이다.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드 컴플렉스'나 '진영 논리'를 모두 내려놓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경험을 받아들이는데 필수적인 개방성을 낳지 않고 오히려 폐쇄적인 사고체계를 낳는다"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버넌 보그다너 교수의 조언을 새길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역사저서에 필요한 균형감을 충족하면서, 과거에 대한 평가를 두고 평행선을 달리던 보수와 진보 양 쪽의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들 것 같다. 과열된 역사교과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적절한 대안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씀 | 돌베개 | 2014.7. | 1만8000원)



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돌베개(2014)


태그:#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역사, #교과서, #산업화와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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