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홍진희 '사학을 바로 세우려는 시민 모임' 공동대표.
 홍진희 '사학을 바로 세우려는 시민 모임' 공동대표.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평범한 학부모가 비리를 저지르는 사립학교와 싸우는 투사로 변했다. 홍진희 '사학을 바로 세우려는 시민 모임'(사바모)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홍진희 대표가 주도해 만든 사바모는 12일 출범했다. 사립학교 교사들과 학부모,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 각종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홍진희 대표와 함께 하기로 뜻을 모았다.

홍진희 대표는 몇 년 전만 해도 평범한 '딸 바보'였다. 딸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아빠였다. 홍씨의 딸은 2009년 글로벌 인재를 키운다는 명분으로 개교한 영훈국제중학교에 지원했지만 마지막 추첨에서 떨어졌다. 학교 쪽은 홍씨에게 2000만 원의 발전기금을 내면 딸을 합격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홍 대표는 고민 끝에 1000만 원을 학교에 내고, 딸을 영훈국제중에 보냈다.

홍진희 대표는 11일 오후 서울 태평로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내 딸이 좋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털어놓았다. 홍 대표의 딸은 2012년 영훈국제중을 졸업한 뒤 같은 재단인 영훈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영훈고 학교운영위원회 활동을 한 홍 대표는 영훈국제중·영훈고 재단인 학교법인 영훈학원의 독단적인 운영을 비판하고 학내 민주화를 주장했다.

2013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이 영훈국제중에 사회적 배려대상자로 합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훈국제중을 둘러싼 파문이 확산됐다. 하지만 재단은 이를 무마하려 했고, 홍 대표는 "재단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뒷돈을 건네고 딸을 영훈국제중에 보낸 사실을 고백했다"고 말했다. 상처받을 딸이 눈에 밟혔지만, 결단을 내렸다.

홍 대표의 고백으로 드러난 영훈국제중 입시 비리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그 뒤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홍 대표는 "입시 비리로 김하주 영훈학원 이사장이 구속됐지만 학내 민주화 탄압에 앞장섰던 직원들은 그대로 남았다"고 밝혔다. 오히려 신분이 드러난 홍 대표는 학교 사람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고, 홍 대표의 딸은 영훈고에서 2학년 과정을 마친 뒤 지난해 12월 쫓겨나듯 시골학교로 전학 갔다.

홍 대표는 "고3을 앞둔 딸을 시골학교로 보내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면서 "제보자 보호가 전혀 안됐다, 사학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과 함께 사학을 바로 세워야겠다는 생각에 사바모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학 비리가 있는 학교를 직접 찾아가 제보자와 만나겠다"면서 "제보자 보호는 공익제보자 모임, 참여연대, 투명성 기구, 호루라기 재단 등과 함께 반드시 관철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학 비리 척결을 위해서는 서울시교육청 인사 개혁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영훈국제중 입시 비리 감사에 소극적이었던 조승현 감사관을 비롯해, 이준순 교육정책국장 등 문용린 교육감의 측근들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나가고 개혁적인 인사가 들어올 수 있도록 조희연 교육감에게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희연 교육감도 적극 협조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기자와 홍진희 대표의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이다.

"사학을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 생각에 양심고백"

서울 강북구 미아삼거리역 부근 영훈국제중.
 서울 강북구 미아삼거리역 부근 영훈국제중.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지난해 영훈국제중 입시 비리 사건은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딸의 입학을 위해 학교에 뒷돈을 건넨 사실을 고백하면서, 입시 비리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제 딸은 중학교 3학년 때인 2008년 말 영훈국제중에 지원했다. 딸은 1차(서류)·2차(구술면접) 전형에 합격했지만, 마지막 추첨에서 떨어졌다. 학교 쪽에 제 딸을 대기자로 올려놓아 달라고 요청했다. 2009년 2월 이 학교 임아무개 행정실장이 저를 불렀다. 말을 빙빙 돌리더니, 합격시켜주겠다면서 학교발전기금으로 2000만 원을 내라고 했다. 집에 돌아가서 고민했다. 결국 1000만 원을 주고 딸을 입학시켰다. 내 딸이 좋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물론 양심의 가책도 느꼈다."

- 딸은 2012년 영훈국제중을 졸업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 양심 고백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개교 첫해였던 2009년 영훈국제중은 엉망이었다. 기간제 교사가 전체 교사의 30%를 넘었다. 제왕적 권력의 김하중 이사장이 학교를 독단적으로 운영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성적 조작도 있었다. 2010년 학교 관계자들이 학부모들에게 노골적으로 발전기금을 요구했다. 딸은 2012년 영훈국제중과 같은 재단의 영훈고로 진학했다. 영훈고 학교운영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학교와 갈등을 빚었다.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교육청에 여러 차례 민원을 넣은 탓이다. 그 와중에 2013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이 사회적 배려대상자로 같은 재단인 영훈국제중에 합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학을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 양심 고백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계기는 무엇인가.
"이재용 부회장 아들 문제로 논란이 확산되자, 김하주 이사장이 저를 불렀다. 갖가지 논란 때문에 학교가 붕괴되는 게 싫다고 하더라. 학내 민주화가 이뤄지면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했더니, 김하주 이사장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얼마 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외곽 선거 캠프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행복교육추진단 추진위원이었던 황영남씨가 영훈고 교장에 임명됐다. 각종 논란을 무마하기 위한 시도로 보였다. 결국 영훈재단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김형태 당시 서울시의회 교육의원과 상의해, 뒷돈을 건넨 사실을 언론사에 제보했다. 2013년 3월 보도가 되자, 파문이 확산됐다."

- 양심 고백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인 딸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망설였다. 딸에게 양심 고백을 하겠다고 말했더니, 딸은 '아빠가 한다면 막지 않겠다, 다만 대학가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해 달라'고 하더라. 또한 대의명분을 위해 양심의 가책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제보를 하고 난 뒤 곧 신분이 밝혀졌다. 당시 학교 사람들과 학부모로부터 '정치하려고 제보했느냐', '뭘 원하느냐', '혼자만 공명심이 있다' 등 많은 비판을 받았다."

- 관련 보도 직후 진행된 서울시교육청의 감사를 두고 뒷말이 나왔다.
"문용린 교육감이 이끌던 서울시교육청은 영훈국제중 감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 직원이 일요일 오전에 집으로 전화했다. 직원은 전화를 받은 아내에게 '돈을 내고 딸을 영훈국제중에 보냈느냐'고 묻더라. 아내는 교회에 갈 시간이라 나중에 전화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뒤 연락이 오지 않았다. 특히, 조승현 감사관은 당시 기자들에게 '돈 있는 집에 2000만 원은 껌값이다', '이런 제보는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은 많은 것을 밝히지 못했다."

- 그 뒤 영훈국제중 등 영훈학원의 학교들은 크게 달라졌나.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일부 비리 직원을 파면 등 징계를 하라고 했지만, 한준상 이사장 등 관선 이사진이 파견된 영훈학원은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경징계를 하거나 징계를 차일피일 미뤘다. 김하주 이사장이 실형을 받아 구속됐고, 영훈국제중 교감은 스스로 목숨은 끊었지만 학내 민주화를 탄압했던 인사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딸 쫓겨나듯 시골학교로 전학.. 말할 수 없는 아픔"

- 딸은 계속 영훈고에 다니고 있나.
"딸은 지난해 12월 2학년 과정을 마친 뒤, 경남 남해의 한 고등학교로 전학 갔다. 지난해 언론사에 영훈국제중 입시 비리를 제보한 사실이 알려진 뒤, 딸이 힘들어했다. 딸은 울면서 '아빠 때문에 학교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 선생님들이 대놓고 무시한다'고 하더라. 결국 딸을 시골학교로 보냈다. 사실상 쫓겨난 것이다. 고3을 앞둔 딸을 시골학교로 보내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 제보자 보호가 전혀 안됐다. 사학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과 함께 사학을 바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 사학 비리는 현재 어떤 상황이라고 보나.
"썩었다고 할 수 있다. 문용린 전 교육감 체제에서 서울시교육청의 청렴도는 전국 시도교육청 가운데 최하위였다. 2012~2013년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시내 사립학교법인 34곳의 44개 학교를 대상으로 감사를 했더니, 지적건수 282건, 행정상처분 157건, 신분상처분 244건이 나왔다. 하지만 사립재단이 교육청의 권고대로 신분상처분을 한 경우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2010∼2012년 서울시교육청이 사학재단에 징계를 요구한 182건 중 교육청의 권고에 응하지 않고 징계를 하지 않은 경우가 71건에 달했다."

- 진보교육감 시대를 맞아 큰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에게도 사학비리 척결을 강조했나.
"조희연 교육감 취임 전날인 6월 30일 오전 사립학교 교사 8명과 함께 조 교육감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사학 비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사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영훈학원 감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조승현 감사관 대신 개혁적인 감사관이 사립학교를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얘기를 듣지 못했다. 직접 사학 비리를 파헤치고 제보자를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사바모에는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 등 많은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90명가량 된다. 지난해 영훈국제중 입시 문제를 파헤치는 데 노력했던 김문수 교육위원장은 저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19개 사립학교 교사와 학부모들, 신광식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 한국투명성기구 대표인 김거성 목사, 서울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 김옥성 목사 등이 함께 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사학비리 척결과 사학의 올바른 운영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하겠다. 사학 비리가 있는 학교를 직접 찾아 제보자와 만나겠다. 공익제보자 보호는 공익제보자 모임, 참여연대, 투명성 기구, 호루라기 재단 등과 함께 반드시 관철시키겠다. 앞서 얘기했던 대로 서울시교육청 인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조승현 감사관을 비롯해, 이준순 교육정책국장 등 문용린 교육감의 측근들이 모두 서울시교육청에서 나가도록 조희연 교육감에게 계속 요구할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도 적극 협조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

[관련기사]
"칠판 지우개 10만개 샀다며 돈 빼돌려"
"'사악법' 소리듣는 사학법 개정 노력할 것"


태그:#사학을 바로 세우려는 시민 모임, #홍진희 공동대표
댓글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