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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국제다큐영화제(EIDF) 포스터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포스터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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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우연히 TV 채널에서 EIDF(EBS국제다큐영화제)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의 숨겨진 이야기들, 들춰지지 않은 사건들, 외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연일 TV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요. 매년 EIDF가 엄선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설레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올해도 8월 25일부터 31일까지 제11회 EIDF가 열립니다. 26개국 50편의 작품을 EBS 채널을 통해 하루 평균 9시간 방송한다고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애청자의 마음으로 어떤 작품들이 출품되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카탈로그를 보는 순간, 너무나 놀라고 당혹스럽고 실망스러웠습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을 받아 기획된 '이스라엘 특별전'과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컨퍼런스'를 보고서 말이죠.

지금 이 순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한 달 동안 압도적인 무력으로 침공해 19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집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습니다. 폭격으로 사망한 임신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아가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발전시설을 파괴해 전력이 차단되어 인큐베이터가 작동을 멈추는 바람에 결국 숨을 거두었습니다.

가자 해안가에서 축구를 하며 놀던 4명의 어린이들은 두 차례에 걸친 이스라엘의 포격으로 모두 죽었습니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을 향해 두 번이나 이스라엘은 총구를 겨누었습니다. 그리고 이 야만스런 침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2008~2009년 약 3주간 1400여 명을, 2012년 17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했습니다.

그 사이에도 학살은 빈번했고, 물을 오염시켜 병들게 하고, 재판없이 잡아 가두고, 높이 8m의 장벽으로 갈라놓고, 검문소에서 감시하고 통제하여 오늘과 다를 바 없는 내일에 좌절하게 만들고, 때론 그들 서로서로를 증오하게 만듭니다.

폭격이 계속되는 지금, 이스라엘 다큐 못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점령과 학살에 희생당한 이들은 단순히 참담한 사진 속 피해자도, 압도적인 숫자도 아닙니다. 사랑하고, 뛰어 놀고, 때론 다투기도 하던 오롯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우리는 또 다른 슬픔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남겨진 또 다른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버거울지.

삶의 기록을 담고 전하는 다큐멘터리 팬으로서 이스라엘 특별전을 개최한다는 것은 올해 EIDF의 캐치프레이즈인 '다큐, 희망을 말하다'와 매우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간 EIDF가 매해 한두 편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상영해왔고, 그 작품들은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번 이스라엘의 다큐멘터리들도 특별히 반(反)팔레스타인적이거나 폭력을 미화하는 작품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서 저는 이스라엘의 다큐멘터리들을 그들의 자유로운 삶, 그리고 점령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의 삶은 우리네 일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때로 아웅다웅 티격태격대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은 안전과 평화가 보장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서구화된 우리 눈으로팔레스타인의 삶과 비교해본다면 교양 있고 세련됐지요. 바삐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친구도 만나고, 데이트도 하고, 부모가 물려준 가게를 어떻게 잘 꾸려볼까 고민하고, 길거리는 활기 차 있겠지요. 현실은 조금 우울하더라도 내일의 희망을 꿈꿀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는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더미 위에 간신히 찾은 소파에서, 함께 살아남은 기념으로 촬영한 가족사진 속 '가자'의 삶과는 전혀 다르겠지요.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하루하루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는 지금, 평화롭게 이스라엘의 자유와 희망에 대해 말하는 영상은 못 보겠습니다.

그들이 만행이 감춰지지 않도록 같이 행동해주세요

한국청년연대와 KYC한국청년연합, 원불교청년회, 복지국가청년연석회의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7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스라엘이 미사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해 어린이와 청소년을 무차별 학살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한국청년연대와 KYC한국청년연합, 원불교청년회, 복지국가청년연석회의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7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스라엘이 미사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해 어린이와 청소년을 무차별 학살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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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으로서 자국의 점령과 폭력에 대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대사관이 지원하는 특별상영전 계획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수준 높은 영상이 보여주는 그들의 교양과 문화에 보내는 박수에, 지금 이 순간 계속되는 그들의 폭력과 점령의 만행이 희석되고 감춰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잔혹하고 일방적인 공격이 마치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쪽의 교전처럼 보도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린이들과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사용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무슬림 테러리스트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들이 만들어 낸 '이슬람포비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국내에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의 책임이겠지요. 우리가 상상하는 과격하고, 맹신적이고, 극단적인 팔레스타인은 실제로 자유롭고, 익숙하고, 세련된 문화를 향유하는 이스라엘에 점령당하고 학살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유롭게 희망을 꿈꿀 수 있어야 합니다. 자유롭게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자신이 저지른 억압의 진실을 가리게 된다면 우리는 용기 내어 그 세련된 자유를 거부하겠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희망과 공존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그렇기에 관객으로서 이번 EIDF의 '이스라엘 특별전'과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컨퍼런스'를 보이콧하며, 같이 할 수 있는 행동을 제안합니다.

▶ 제1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공식 홈페이지(http://www.eidf.org/) 내 자유게시판,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ebs.eidf/)에 항의글 남기기
▶ 공식 트위터에 항의 멘션하기(https://twitter.com/ebs_eidf)


태그:#EIDF보이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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