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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씨. 사진은 1974년 3월 당시 모습.
 김영희씨. 사진은 1974년 3월 당시 모습.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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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씨는 지난 1973년 10월 26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한 경찰관에 의해 맡겨졌다. 당시 그는 '맨발에 빨간색 바지'를 입었고, 걸을 수 있었으며 치아가 몇 개 있었고, 명확하게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남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973년 10월 29일, 그는 미아보호소로 보내졌다. 그는 미아보호서에서 '김영희'이라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부여받았다. 그때 김씨는 1971년생으로 추정됐다.

그 다음 날인 1973년 10월 30일, 사회복지협회는 김씨를 해외입양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후 1973년 11월 15일에서 26일까지, 11일간 그는 삼육의료원에서 폐렴으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74년 8월 29일 그는 미국으로 해외입양 보내졌다.

김영희씨는 근시이며 오른손잡이로 두 번째 발가락이 엄지발가락보다 긴 편이다. 혈액형은 O형이고 귓불이 다소 붙어있고, 귀가 좀 큰 편이다. 또한 뾰족한 턱에, 높은 광대뼈와 턱의 선이 나뉘어 있다. 그는 이마의 상단 중앙쯤 작은 가르마가 있고 뒷골은 약간 돌출돼 만질 수 있는 편이다. 김씨는 언제 다쳤는지는 모르지만, 무릎에 약 1cm 정도 되는 작은 흉터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입양 보내지기 전에 붙임성이 있어 모든 남자들을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씨가 1973년 10월 26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발견됐을 당시 길을 잃었던 것인지, 동행하는 사람과 떨어져 헤맸던 것인지, 유괴 또는 유기됐던 것인지 여부는 모두 불확실하다. 다음은 지금도 한국 친부모를 찾고 있는 김영희씨와 지난 며칠간 이메일로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내 삶의 목표는 잃어버린 과거를 복원하는 것"

김영희씨의 최근 모습.
 김영희씨의 최근 모습.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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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부모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나요?
"안타깝지만 한국부모님에 대해 아무 기억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평생 부모님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 부모님들과 가족들이 나를 꼭 찾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 순간 하고 있습니다."

- 미국입양 생활은 어땠나요? 또 미국 양부모님은 어떤 분이신지요?
"양부모님은 미국 중산층 백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려서부터 늘 백인 부모님 가정에서 자라면서 내 외모가 양부모님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늘 외로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 그런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극복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도움이 된 것은 제가 성장하고 나중에 유사한 환경에 비슷한 외모를 가진 다른 한국계 해외입양인들을 만났을 때였습니다. 다른 한국계 미국입양인들과 만나면서 점차 외로움을 덜 느끼게 됐습니다."

- 지금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 혹은 삶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금 제 삶의 목표는 저의 '잃어버린 과거를 복원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친부모님이 저를 의도적으로 유기했던 것인지, 불가피하게 양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사고로 제가 길에서 실종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가 저를 납치했던 것인지 잘 모릅니다. 제 과거가 무척 궁금합니다. 제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는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친부모, 모국, 원래 문화와 단절되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 그래도 지금은 결혼에서 1남 1녀를 둔 엄마인데, 이제 그런 과거의 상처가 치유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제가 길에서 발견된 지도 이제 4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과거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제 과거를 알고 싶다는 갈증은 전혀 가시지 않습니다. 만약 친부모님이 저를 의도적으로 유기한 것이 아니라면, 얼마나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인가요? 그렇다면 지난 40년간 제가 친부모님과 친형제들을 애타게 찾고 그리워하듯이, 친부모님과 친형제들도 저를 얼마나 애타게 찾고 있을까요. 이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막 뛰며 잠이 안 오고 우울해집니다."

"뿌리 모르는 심정, 말로 표현할 수 없어"

김영희씨. 사진은 1974년 6월 당시 모습.
 김영희씨. 사진은 1974년 6월 당시 모습.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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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현하기가 힘들겠지만, 친부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심정은 어떤지요?
"친부모님이 저를 버린 것이 아니었고, 저 역시 사랑을 받고 자라는 아이였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삶은 마음의 한 조각을 분실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는 항상 버림받은 한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불현듯 제 친부모님 중 한 분 혹은 두 분이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마음이 허탈해지고 공허감이 생깁니다. 제 존재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심정,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가 없네요." 

- 어머님 혹은 친부모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다면 전하고 싶은 말은?
"저는 부모님 또는 어머님의 과거에 상처나 부담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저의 과거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싱글맘으로 산다는 것은 지금도 물론이거니와 1971년경에는 엄청난 사회적 낙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과거사'로 인해 지금 현재 어머니가 가진 모든 것을 전부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어머니와 부득이 이별할 수밖에 없었지 않았을까'라고 추정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제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할 것 같아서요. 하여간 저는 잘 있습니다. 어느덧 결혼해 저도 이제 1남 1녀의 엄마입니다. 어머님이 제 아이들을 만나서 한국의 가족과 전통 유산을 알려주신다면 무척 좋겠습니다. 저는 제 뿌리가 미치도록 궁금합니다. 최소한 제 한국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제 생일이 언제였는지, 제가 태어난 곳은 어디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머니께 저와의 재회를 강요할 마음 역시 추호도 없습니다. 단지 이 인터뷰를 보면서 제가 잘 있고 어머니를 전혀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부모님이나 제 형제자매들이 혹시 저를 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망설이지 마시고 연락해주십시오.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아동이 부모와 헤어지지 않도록 최선 다해야"

김영희씨. 사진은 1974년 8월, 미국 입양 후 모습.
 김영희씨. 사진은 1974년 8월, 미국 입양 후 모습.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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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의 해외입양 정책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 정부는 한 아동이 친부모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과 도움을 줘야 합니다. 만약 사별 등 부득이한 사유로 아동이 친부모와 함께 살 수 없다면 정부는 그 아동이 친척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해줘야 합니다.

만약 아동에게 친척도 없다면 국내입양이 불가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입양은 최후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해외입양의 경우, 정부는 최대한 비슷한 인종이거나 비슷한 문화, 언어권에 있는 양부모에게 아동이 보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아동에게 가장 적합한 '가정의 기준'은 부모의 물질적 부유함이 아닙니다. 물론 아동에게 부모가 다 있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 정부는 한부모 가정에서도 아동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펴야 합니다.

정부의 기본역할 중 하나는 자국민을 돌보는 것입니다. 부모 혹은 한부모와 아동이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원해줘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의 국적은 미국이지만 제 피는 여전히 한국인의 그것과 같습니다. 비록 한국정부가 40년 전 저를 한국사회에서 도려내 미국으로 보냈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실종감과 외로움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제 몸에는 여전히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딸입니다."

* 김영희씨는 현재 남편 그리고 1남 1녀의 자녀들과 함께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습니다. 김영희씨를 알아보시는 분은 '뿌리의집'(02-3210-2451)으로 연락바랍니다.


태그:#김영희, #김성수, #영등포, #입양, #빨간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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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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