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요일 오전, 갯벌로 나가자는 아주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바다 한 가운데로 나간다는 기대감에 들떴다. 그래서일까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고 오직 장화만 신으면 된다는 생각에 룸메이트의 장화를 들고 와 버렸다는 사실을 하전 마을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나를 기다리던 한 아주머니가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라 물 빠지는 속도가 느려졌다며 바다로 나가는 시간을 늦춰야 한다고 말했다. 바람이 불면 왜 물의 속도가 느려지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갯벌 일을 하면서 몸으로 체득한 것이라 논리적인 설명이 어려웠고 나 또한 그에 대한 지식이 없던 터라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몰라서였다.

밀물과 썰물이 생겨나는 이유가 달의 영향이라는 사실을 안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수심이 깊은 동해 바다만 보며 자랐고, 대학시절 소래 포구를 찾았다가 펄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를 맡고 난 뒤, 개펄은 나에게 불쾌감을 주는 존재로 기억됐다. 그러나 이제는 바다가 밀려가고 밀려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느낌으로는 알 수가 있다.

돈도 벌고 맛난 조개도 캐고... 개펄은 '놀이터'

고창군 심원면 하전 마을에 사는 아주머니들은 일이 없으면 바닷물이 빠지는 틈을 타 조개들을 따러 가거나, 밭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쉬는 날이면 하루를 보내기가 지겹기도 하고 좀이 쑤셔 쉬는 것이 더 곤혹스럽다고 했다.

"그랴서 울들은 맛난 거 사들고 바다로 놀러 가제. 돈도 벌고 맛난 조개도 캐고 남자들은 이 재미를 몰른당깨." 

조개를 캐고 밭일을 하는 것도 일일 터인데 아주머니들에게는 즐거운 놀이였다. 다음에 갈 일이 있으면 꼭 부르겠다던 약속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목이 새까맣게 탈틴디. 목에 뭐라도 둘러야 쓰것어."

목이 훤히 드러나는 칠부 소매 티를 입고 온 내게 아주머니가 말했다. 나는 얼른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목에 둘렀다. 그래도 내 모습이 시원찮은지 내가 쓰고 온 모자 위로 조개 담을 망을 세모로 접어 둘러 주었다.

"이렇게 안허믄 모자가 바람 날라가지라. 잘 어울리네. 거 장화는 왜 그리 큰 걸 신고 왔단가. 오메, 걷다가 넘어지것소."

내가 신고 온 장화는 내 것이 아니라 걸을 때마다 다리가 빠져 나왔다. 아주머니가 집으로 가더니 자신의 장화를 하나 들고 나와서는 내게 건네주었다. 오늘은 운이 좋게도 양식장 그물을 손본다는 아저씨의 배를 얻어서 타고 바다로 나갈 수가 있었다.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를 태운 경운기가 개펄 사이를 내달렸다. 경운기는 배를 띄워둔 곳까지 타고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물의 빠짐이 예상보다 더 느려 펄 길을 다가 말고 멈춰야 했다.

"여그서 조개 좀 잡고 가세. 발이나 갈고리로 탁탁 바닥을 치믄 구멍에서 물이 올라와요. 흙탕물 같은 것이제. 그 구멍 주위를 파면 모시조개가 나온다요."

나는 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장화로 펄 바닥을 쳐가며 걸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펄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흙탕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한 시간 가량을 바닥을 기며 헤맸으나 몇 개를 캐지 못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자신들이 캔 조개를 내게 주었다. 일반 조개보다 더 둥글며, 검은 색에 테두리에 흰 줄이 있는 것으로 모시조개라 불렀다. 직접 눈으로 보면 색깔이나 모양이 또렷하여 자꾸 눈길이 갔다. 맛은 바지락보다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다. 물이 빠지자 모습을 드러냈다. 굴 껍데기로 뒤덮여 바위섬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다. 물이 빠지자 모습을 드러냈다. 굴 껍데기로 뒤덮여 바위섬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다.
ⓒ 김윤희

관련사진보기


경운기 운전석까지 차오른 물에 '흠칫' 놀라다

물은 아직도 많이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저씨는 경운기를 몰아 물이 들어찬 곳으로 들어갔다. 경운기 운전석까지 물이 차올랐다. 나는 놀라 긴장을 늦추지 못했지만 아주머니는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아저씨 또한 여유롭고 태연하게 경운기를 운전하고 있었다. 경운기가 멈춰 섰고 아저씨가 물속으로 내려가더니 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가판 위를 정리한 아저씨는 우리가 있는 곳까지 배를 끌고 왔다. 손수 배를 끌고 오는 아저씨의 모습이 어찌나 멋지고 야성미가 넘치던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우리를 작은 암초 위에 내려놓고 되돌아갔다.

"이 배가 다시 올때 꺼정 우리는 여그서 못가. 가만히 기둘려야제. 저 양반이 안 오면 우리는 큰일라제."

아저씨가 잊어버리고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암초 덩어리와 함께 물에 잠길 것이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아직 암초 바위 주위는 온통 물이다. 두 평 정도의 공간에서 우리는 물이 빠져 넓은 암초 섬이 드러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멍하니 앉아 바다를 보고 있자니 4월의 그날이 떠올랐다. 배 안으로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까. 자신들이 구조되지 않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바다에 손을 담그며 속으로 말했다.

'힘들게 그 속에 잊지 말고 어서 나와. 우리는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어. 빨리 와.'

내가 바다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 두 아주머니는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따시락을 따고 계셨다. 내다 팔기도 하고 집에서도 먹으려면 부지런히 따야 한다고 했다. 나도 아주머니들을 따라 따시락을 땄다. 따시락은 굴 껍데기를 둘러싼 채 무리지어 살았다. 그래서 갈고리로 굴 껍데기를 따면 거기에 붙어 있는 따시락들을 떼 내어 담으면 그만이었다. 서서히 물이 빠지고 거대한 바위섬의 정체가 드러났다. 내가 밟고 있는 것은 거대한 바위섬이라고 했다. 바위 위에 굴이 달라붙고 달라붙기를 반복하다 보니 바위의 모습은 사라지고 굴 껍데기로 뒤덮인 섬이 되었다고 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따시락을 따고 있는 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따시락을 따고 있는 나.
ⓒ 김윤희

관련사진보기


모양도 색깔로 예쁜 모시조개와 아는 사람만 즐겨 먹는다는 따시락, 내가 이날 딴 소라다.
 모양도 색깔로 예쁜 모시조개와 아는 사람만 즐겨 먹는다는 따시락, 내가 이날 딴 소라다.
ⓒ 김윤희

관련사진보기


물 빠진 바위섬에서 '따시락'을 따다

나는 두 시간 가량 햇볕 아래 쪼그리고 앉아 따시락을 땄다. 한 참을 웅크리고 있었더니 뒷목이 결리고 다리가 저려왔고 태양에 노출된 팔뚝은 익어 벌겋게 달아올랐다. 따시락 따는 일을 그만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위섬의 크기를 어림할 수는 없지만 천 평이 훨씬 넘어 보였다. 물이 빠지자 따시락, 소라가 눈에 더 띄었고, 꽃게와 손톱보다 작은 게의 새끼들이 껍데기 사이를 정신없이 기어 다니는 것도 보였다. 갯벌 체험의 목적이 따시락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바위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바위섬을 둘러보다 갈매기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모두들 흩어졌다. 나는 녀석들이 왜 그렇게 몰려 있는지 궁금했다. 갈매들이 날아간 자리를 내려다보니 뒤태를 드러낸 소라가 보였다. 그 뒤태가 어찌나 선명하고 아름다운지 멀리서 보아도 그 형태가 두드러져 나 소라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따시락을 따는 대신 소라를 채취하기로 했다. 크기도 켰고, 눈에도 잘 띄어 따기가 더 수월했다.

우리가 앉아 있는 공간을 빼고 모두 물이 드러찼다. 우리는 아저씨가 오기를 기다리며 라면을 먹었다.
 우리가 앉아 있는 공간을 빼고 모두 물이 드러찼다. 우리는 아저씨가 오기를 기다리며 라면을 먹었다.
ⓒ 김윤희

관련사진보기


잠시 소라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허기가 지고 살갗의 따가움이 심해지면서 내가 소라 따는 일에 너무 집중했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넓었던 바위섬에 다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머니들에게 다가갔다. 아주머니들은 여전히 따시락을 따느라 바빴다.

"힘들지 않으세요? 저는 온 삭신이 다 쑤시는데."

아주머니는 웃으시며 매일 바다 일을 하면 괜찮아진다고 말하며 챙겨온 컵라면을 건네주었다. 일을 많이 하고 난 뒤에 먹는 것이라 더 맛났을까 바다 한가운데서 먹는 것이라 맛이 좋았을까. 나는 몇 번의 젓가락질로 컵라면을 금방 비워냈다. 갯벌에서는 뭐든지 맛있다고 했던 룸메이트의 말이 떠올랐다.

아주머니들도 하던 일을 정리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뒤로는 고창군 심원면 하전 마을이 보였고 앞으로는 부안군내에 있는 한 마을이 보였다. 멀리서 볼 때는 두 마을이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 중앙에 서 보니 거리가 꽤 되었다.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을 제외하곤 바위섬에 물이 다 차올랐다. 아저씨가 탄 배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물이 완전히 차오르기 전, 우리는 아저씨의 도움으로 바위섬을 빠져 나갈 것이다.


태그:#갯벌, #따시락, #배, #모시조개, #바위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의 경의로움에 고개를 숙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