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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타고 내려오는 곰팡이
 벽을 타고 내려오는 곰팡이
ⓒ 민달팽이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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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자취 경험 6개월의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2박 3일의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온 나를 맞이한 건 방 3면을 둘러싼 곰팡이였다. 초록과 검정으로 무장한 징그러운 곰팡이가 원룸 벽을 뒤덮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던 터라 '내일 닦아야지'하는 생각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내 얼굴과 몸은 빨간 두드러기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원룸을 점령한 곰팡이처럼 말이다. 피부과에 가서 몇 차례의 진료를 받고 나서야 겨우 두드러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체질'이 변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난생 처음 독립한 나는 내 원룸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네 평 남짓한 방을 나만의 공간으로 가꾸기 위해 부지런히 쓸고 닦았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걸레질도 했다. 혹여나 벌레가 생길까 싶어 물기를 남김없이 닦아낸 뒤 출근하는 게 아침 일상이었다. 곰팡이가 필까 싶어 전전긍긍 관리를 해왔던 나였다.

단 이틀 밤 집을 비웠다는 이유로 저렇게 곰팡이가 피다니. 곰팡이가 필까봐 일부러 창문도 열고, 화장실 환풍기까지 틀어놓은 뒤 집을 나왔는데. 게다가 몸에 두드러기까지 나니 속도 상하고 억울했다. 필시 이건 내 잘못이 아니리라….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505호에 사는 학생인데요, 집에 곰팡이가 너무 많이 펴서 그런데 도배를 새로 해주시면 어떨까 싶어서요."
"곰팡이요? 얼마나 폈기에 그래요?"
"지금 온 벽에 다 곰팡이가 폈어요. 병원 가보니 두드러기도 났다고 하고…. 그래서 제가 지금 부모님 댁에서 잠깐 지내고 있는데 도배를 다시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도배하고 연락줄게요."

생각보다 흔쾌히 도배를 해주겠다고 했다. 감격스러웠다. 혹여나 도배비용을 내라고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알았다고 하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필요한 짐만 간단히 챙기고 세 시간 남짓 걸리는 부모님 댁에서 잠시 지낼 요량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 일전에 도배 부탁드렸던 505호 학생인데요, 도배가 다 됐을까요?"
"아, 요즘 장마철이라서 장마 끝나고 해줄게요. 어차피 지금 도배해도 곰팡이 피잖아요."
"아… 네… 그럼 기다릴게요(정확히 언제 도배를 시작해줄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하지 못했다)."

자취방 점령한 습기, 청년들 눈에도 습기가...ㅠ.ㅠ
장마철마다 올라오는 곰팡이. 에어컨 밑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장소다.
 장마철마다 올라오는 곰팡이. 에어컨 밑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장소다.
ⓒ 민달팽이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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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장마로 불렸던 2013년 여름, 딱히 장마철이라고 불릴 만큼 비가 잦지도 않았다. 대체 장마철이 언제이고, 그래서 언제 도배를 해주겠다는 건지.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났다. 보름 가까이 부모님 댁에서 회사까지 왕복 세 시간을 통근에 시달리고, 병원까지 오가며 두드러기 치료를 받다보니 화가 치밀었다. 집주인은 연락도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 505호 학생인데요, 도배 다 되었나요? 지금 2주 가까이 비우고 있는데 월세도 다가오고 해서 이번 달은 어떻게 내면 좋을까 하고 연락드렸어요. 제가 그래도 집 관리한다고 신경을 계속 쓰긴 썼는데…."
"학생, 제가 전화 해준다고 했죠? 왜 자꾸 전화를 걸어요? 비가 오는데, 도배를 못 하잖아요. 그리고 학생이 집 관리 잘못해서 곰팡이 핀 거를 형편 봐주는 건데 왜 이렇게 독촉해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젊은 아가씨가 돈을 엄청 밝히네요. 내가 나가랬어요? 학생이 먼저 나갔잖아요. 그리고 도배를 해준다면 기다리면 될 것이지, 왜 이렇게 독촉해요? 집이 뭐가 문제예요? 학생 집만 문제예요. 다른 집은 안 그래요."

집주인이 숨도 쉬지 않고 쏘아붙였다. 마침 월세를 내야 할 날짜도 다가와서 나는 마음이 조급했다. 자칫하다가는 도배 비용도 내야 할 판이었다. 사실상 2주 가까이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있는데 세를 내야 한다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속상한 맘에 친구를 불렀다. 곰팡이도, 그를 대하는 집주인도, 무덥고 습한 날씨도 모두 미웠다. 만난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손사래를 쳤다. 자취 생활 3년만 넘기면 곰팡이로 속 끓이는 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곰팡이 분투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난 장마철에 비가 오면 에어컨 바로 아래의 벽이 심각하게 젖는다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집주인한테 신고했는데도 전화 한 번 하고는 그 후로 아무 조치가 없더라? 오히려 처리하려면 벽을 들어내야 하니까 심각하지 않으면 그냥 살라는 거야."

친구는 버티는 심정으로 그 해 여름을 보냈다. 집주인도 바뀌고, 여름도 다 지나가고 해서 그냥 잊고 살았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는 데 있었다. 친구가 이어 말했다.

"내가 사는 집은 창문이 하나밖에 없는데 거기다 또 작아. 현관문을 열지 않으면 바람이 잘 안 들어서 여름엔 몹시 습하지. 그렇다고 혼자 사니까 문을 열어두기도 그렇고. 이 집에 창문을 하나 더 내거나 이사를 가지 않으면 딱히 도리가 없는 거야. 그냥 곰팡이와 공존한다고 생각해. 간간이 닦아내면서 사는 거지. 게다가 그 위치가 바로 침대 아래라서 닦아낼 때마다 이불 빨래를 해야 하는데도 어쩔 수 없지."

서울 청년 10명 중 3명이 주거빈곤층... 곰팡이와 이별하고 싶다!

천연제습기
 천연제습기
ⓒ 민달팽이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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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년 1인 가구 주거빈곤율 36%. 서울에 사는 청년 10명 중 3명은 최저주거기준을 넘지 못하는 곳이거나 주택이 아닌 곳, 즉 반지하나 옥탑에 산다는 결과다. 대표적인 곳이 공시촌(공무원시험촌), 고시촌이라고 불리는 동작구와 관악구인데 주거빈곤율이 자그마치 50%를 넘는다.

관악구와 동작구에서 마주치는 청년 두 명 중 한 명은 곰팡이를 벗 삼아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또 다른 나와 내 친구 같은 청년들은 곰팡이를 없애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청년 주거 문제 해결하기 위해 모인 민달팽이유니온은 매년 여름마다 청년들과 제습 정보를 나누는 세미나를 열어왔다. 작년 여름에는 제습 용품을 공동구매 하기도 했고 천연제습기도 만들어 나눠줬다. 

이쯤에서 천연제습기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 첫째, 페트병을 구한 뒤 2/3 지점에서 자른다. 맥주나 주스 페트는 두꺼우니 생수병이 적당하다. 1/3이 페트병 입구 부분이 되고 나머지 몸통이 2/3 정도 크기가 되도록 한다.

둘째, 1/3 크기의 페트병 입구를 거꾸로 두고 세로로 틈을 낸다(틈을 많이 낼수록 염화칼슘이 굳지 않고 물이 잘 빠진다). 셋째, 페트병 입구에 부직포를 댄 뒤, 페트병 몸통으로 거꾸로 집어넣는다. 그 위에 염화칼슘을 넣고 다시 부직포로 덮으면 천연제습기가 완성된다.

인터넷에 염화칼슘으로 만드는 천연제습기 방법이 다양하게 소개돼 있으나, 이 방법은 민달팽이유니온의 회원들이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고 터득한 방법이라고 하니 믿고 따라해봐도 좋을 것 같다.

천연제습기 만들기, 에어컨과 보일러 틀기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좋은 것은 곰팡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이 마련되는 것, 즉 '주거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임대인에게 "곰팡이가 자주 생기니 집을 수리해달라"는 요구를 주눅 들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도 우선돼야 한다.

올여름 장마철 습기 대란, 어떻게 극복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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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달팽이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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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달팽이유니온 간사입니다.



태그:#곰팡이, #습기, #장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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