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교실 모습
 교실 모습
ⓒ sxc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는 사립학교(사학) 비중이 높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학교 중 중학교 23퍼센트, 고등학교 45퍼센트, 대학교 85퍼센트가 사립학교다.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학이 공교육 기관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책무를 다하고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회의적이다.

우리나라 사학은 외형만 '사립'인 경우가 많다. 사립 중·고등학교의 학교운영비 중 등록금과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98퍼센트나 된다. 사립학교법인(사학법인)이 내야 하는 재단전입금은 고작 2퍼센트에 불과하다.

사학이면서도 학교 재정의 대부분을, 학생이 내는 학비와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립학교에 쏟아붓는 국민 세금만도 약 5조 원에 이른다. 대한민국 사학은 명색만 사립일 뿐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과 다름없다.

문제는 이들 사학이 공교육 기관으로서의 책무를 온전히 감당하고 있느냐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윤리실천강령에서 "사학을 위하여 제공된 재산은 국가사회에 바쳐진 공공재산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유물 같이 다루어져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학 현장에서 이 강령이 실질적으로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재단 이사장의 친·인척이 교직원으로?

대다수 사학에서 재단 이사장의 친·인척이 교직원으로 다수 포진해 있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학교 인사가 재단 이사장의 입김 아래 친재단교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립학교 교원인사위원회의 비민주적인 구성이나 교직원 채용 비리 등은 그 필연적인 귀결이다.

2012년 8월 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공동주최한 '사립학교 비리, 이대로 둘 것인가?' 공청회 자료(서울 시내 134개 사립학교 인사위원회 운영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교원인사위원회를 교직원회나 교과협의회에서 민주적인 방식과 절차에 따라 구성한 비율은 23.2퍼센트에 불과했다. 나머지 76.8퍼센트는 학교장이 일방으로 임명하거나 교원인사위가 다배수로 추천한 후 교장이 지명하는 등의 비민주적인 방식을 따랐다.

관할 교육청의 지도 감독을 따르지 않는 '막가파'식 운영이나 교원 채용상의 비리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상민 의원실 국감 자료(2010~2012.8)인 '최근 3년간 사립학교 채용 관련 징계 처리 현황'에 의하면 주의 20건, 경고 120건, 견책 13건, 감봉 4건, 정직 11건, 해임 2건, 파면 1건, 퇴직불문 22건 등 총 193건에 달했다.

이나마도 관할 교육청의 감사처분 및 징계요구를 불이행하는 등으로 교육청의 지도 감독권을 무력화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서울시의회 김형태 교육의원이 2013년 2월 4일자로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0년 3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된 사립학교의 현직 교원에 대한 교육청의 신분상 처분(징계) 요구 182건에 대한 분석 결과, 교육청 요구대로 징계하지 않고 감경 내지 무혐의 처분한 경우가 총 97건으로 53%나 달했다.

2013년 감사원 자료에서 밝혀진 경기도 A사립학교의 사례는 사학의 교사 채용이 거의 '막장'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A사립학교에서는 재단 이사장 딸과 예비사위, 이사장의 채권자, 교장의 지인 또는 대학 후배, 법인 사무국장 아들 등이 교사로 채용되었다. 그 과정에서 A사립학교는 시험지를 사전에 유출하고 답안지를 바꿔치기 하는 등의 비리 백태를 연출했다. 사전에 내정된 교사를 채용하기 위해 면접을 실시하지 않고 교장이 임의로 점수를 부여한 일도 있었다.

사학법인 견제 위해 도입한 '개방이사 제도'는 유명무실

사학법인을 견제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개방이사 제도가 상당수 법인에서 유명무실해진 점도 사학의 부끄러운 현실을 말해준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전국 4년제 대학 133개 법인의 개방이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49.6퍼센트에 달하는 66개 법인에서 법인과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는 인사를 개방이사로 선임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경향신문> 2013년 10월 19일자 기사 "사학 개방이사는 '안방이사'" 참조)

사학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까닭은 뭘까. 무엇보다 대표적인 사학 관련 국가 법령인 사립학교법(사학법)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들 수 있다. 사학법은 사립학교 운영의 법적 지침서다. 하지만 2005년의 사학법 개정안이 2007년 재개정 과정에서 '누더기'가 되면서 사학법의 입법 취지가 무시되고 틈새를 이용한 편법 운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학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폐쇄형 이사제에 대한 대안으로 도입된 개방형 이사제가 '안방 이사제'로 전락한 현실이 대표적인 증거다.

그간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했던 '서울시 사립학교 투명한 운영에 관한 조례' 제정과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했던 '경기도 사학기관 운영 및 지원·지도 조례' 제정 등이 그것이다. 이들 조례는 사학에 대한 지원과 관리·감독을 좀 더 실질적이고 체계적으로 함으로써 사학의 민주성과 투명성, 재정 건전성 등을 제고하고 사학의 공공성을 높이는 데 그 취지를 두었다.

국가 법령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중앙정부가 사학에 대한 관리 감독을 등한히 하는 상황에서 그 차선책으로 지방교육기관이 관련 조례를 제정하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문용린 교육감 체제의 서울시교육청은 시의회가 통화시킨 조례('서울시 사립학교 투명한 운영에 관한 조례')에 대해 재의를 요청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조례('사학기관 운영 및 지원·지도 조례')가 도의회를 통과했으나 교육부에서 재의를 요청했다.

대한민국 사학은 '사학 마피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적폐가 심각하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이 공개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 등 정부 부처의 고위공직자 출신으로 사학재단의 이사에 오른 경우가 학교법인으로는 176개, 인원으로 따지면 262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직 사학재단 이사 가운데 전직 교육감 및 부교육감 20명을 비롯해 교육부 출신은 191명이나 되었다.(2014년 7월 15일자 <주간경향> 1084호 기사 "사학법 개정 '사학 마피아' 근절해야") 공직자의 사학 진출을 막고, 교육청이 사학을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법령 제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사학의 책무성 강화' 조례 제정 추진하는 전북교육청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전라북도교육청이 사학지원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 조례 제정은 김승환 전라북도교육감 2기 출범준비위원회(아래 출준위)가 공교육정상화를 위해 사립학교 개혁에 적극 나설 것을 제안한 데 따른 것이다.

이미 지난 6·4 교육감선거에서 김승환 교육감은 "사립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공적 책무성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번 사학지원 조례 제정 추진은, 전북교육청이 사학의 책무성 강화 공약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사립학교 교사 공개채용 확대와 함께 내놓은 것이다.

현재 전라북도에는 총 65개의 사학법인이 운영되고 있다. 전북 중등교육에서 사립학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중학교 40퍼센트, 고등학교 60퍼센트로 전북 교육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각각 23퍼센트, 45퍼센트인 전국 평균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그런데 전북 사학이 이런 높은 비중에 걸맞는 공공성과 책무성을 보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북 사학의 재단전입금 납부비율이 전국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점을 방증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전북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조례 제정은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사립학교법 등에 따른 정당한 법적 조치다. 특히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시·도교육감이 사학을 지도·감독할 수 있는 조례를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학지원 조례가 제대로 만들어져 도입된다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립학교법을 대신하는 '전북형 사립학교법' 구실을 톡톡히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도교육청과 출준위가 마련하려는 조례에는 서울과 경기에서 추진한 사학지원 조례의 주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사립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책무 규정, 사학기관 재정 지원에 관한 사항과 사학기관의 법령 등 준수 여부나 법정부담금 납부 실적과 관련한 재정 지원 반영 규정, 정기적인 행정지도 실시와 횡령·회계부정에 따른 처분 결과를 구성원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규정 등이 그것이다.

사립학교법에 따른 이사회 회의록 공개, 교원 신규 채용시 전형 과정을 교육청에 위탁한 사학에 대하여 행·재정적으로 우선 지원하도록 하는 규정 등도 주목해 볼 만한 내용들이다.

물론 전북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사학지원 조례가 무난하게 제자리를 잡을지는 미지수다. 2005년과 2007년 사학법 개정 과정에서 볼 수 있었듯이 이번 조례와 관련된 핵심적인 이해관계자인 사학법인들의 격렬한 반발이 불 보듯 뻔하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2년간 4차례에 걸친 본회의 상정과 부결을 거듭한 끝에 2013년 6월에서야 간신히 전라북도의회를 통과한 전북학생인권조례의 사례도 있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사학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공립 중심으로 학교교육이 이루어지는 오이시디(OECD) 국가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국가와 정부가 사학의 공공성과 공적 책무성을 힘주어 강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사학법인들 자신이 천명했듯이 '사학을 위하여 제공된 재산은 국가사회에 바쳐진 공공재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학의 성공없이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전북교육청이 추진하려는 사학지원 조례가 전북 사학, 나아가 대한민국 사학 전체의 진정한 성공을 위한 첫 자리에 서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전북 사학지원 조례, #사립학교법, #사학비리, #전라북도교육청, #김승환 교육감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