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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할 수 있는 일본'.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도입으로 동북아시아 평화협력과 한중일 공동체의 미래는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지난 1일, 일본 아베 정권은 헌법 해석변경을 통해 '국가존립에 명백한 위협이 존재하는 경우, 자국민을 보호할 다른 수단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필요 최소한도의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 한다'는 각의결정을 내렸다.

1972년과 1981년, 일본정부가 '전수방위와 미군 후방지원로만 한정했던 집단적 자위권 불허 방침'을 공식 채택한 평화헌법 9조가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 같은 아베 정권의 결정은 일본 자위대 방위예산 증대와 더불어 중국과 한국의 군비증강으로 이어져 결국 동북아 군비경쟁의 가속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동북아시아 지역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분쟁의 씨앗을 다시 품게 됐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2012년 발표한 군사균형보고서(Military Balance)를 보면, 중국군 258만, 북한군 120만, 한국군 65만, 일본 자위대 24만 등 약 467만 명의 대군이 서로를 가상의 적으로 두고 대치하고 있는 상태다.

연간 지출된 국방예산만 따져도 중국 1293억 달러, 일본 545억 달러, 한국 282억 달러로 한중일의 군비는 2120억 달러에 달한다. 해외주둔 병력도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합쳐 6.5만 명에 이른다. 유럽 전체 약 8만 명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도를 짐작케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5월 15일 오후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5월 15일 오후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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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북아의 미래는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보다는 의심과 반목, 대립과 갈등, 분쟁과 대결로 점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베 정권의 본심은 오로지 하나다. "전쟁 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의 해양진출과 군사력 증강에 대비한 전쟁 억지력 확보 ▲중일 분쟁 시 미국이 일본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미국이 강요한 절름발이 평화헌법을 털어버리고 군사·경제력을 지닌 보통국가 지향 등을 집단 자위권 공식 인정 이유로내세우고 있다.

전쟁포기를 선언한 1947년 평화헌법 9조, 위안부 강제연행과 전쟁침략을 반성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는 전후 일본의 양심과 민주주의 상징이었다. 아시아와 공존할 수 있는 중요한 상호신뢰의 기반이자 한-중-일을 잇는 가교역할을 해왔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우익집단인 아베정권 등장으로 일본과 아시아의 소중한 공동자산은 하나씩 파괴돼 왔다. 아베정권은 국내외 비판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참배, 교과서왜곡, 영토 도발을 시작으로 고노담화 부정, 평화헌법 무력화 등의 어처구니없는 만행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화해와 평화 대신 대립과 분쟁 택한 아베정권

대동아공영권과 태평양전쟁에서 일본 군국주의가 내세운 명분은 '자존자위(自存自衛)', 즉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자국을 방어한다는 것이었다. 침략과 살인을 자행한 난징 대학살과 731부대의 만행, 식민지배 속 강제 징용과 위안부 동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피해까지. 이 모든 비극은 지금 아베정권이 내세우고 있는 일본의 자위권 확보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본 집단 자위권 도입을 지지하고 나선 미국의 외교정책은 동북아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2020년까지 미군 10만 명을 감축하고 국방예산 4500억 달러를 줄여야 하는 미국은 이라크, 시리아,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할 능력이 없다. 중동지역 중시에서 벗어나 아시아로의 복귀정책(Pivot to Asia), 미중 간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재균형 정책(Rebalancing)은 국제분쟁 개입을 꺼리는 오바마 정권의 속내다. 이마저도 예산부족으로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국방예산에서 아시아 태평양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금년과 마찬가지인 8%에 그쳐 국방비 증액의 한계를 드러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군사력과 국방비를 공동 분담해줄 든든한 파트너로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도입을 적극 동조했다. 한반도 유사시에만 운용되는 주한미군에 비해 주일미군은 글로벌 전력배치가 가능한 기동군의 성격을 띠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도입 이후, 일본 자위대와 주일 미군 간 무력일체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1978년과 1997년 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인 가이드라인에서 일본은 그저 주일미군의 후방기지이거나 주변사태 유사시 정보, 병참, 경계 분야의 지원부대에 머물러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 개입 가능, 한국정부 대안 제시해야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을 비롯한 각계 시민사회단체회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순신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힘을 실어 온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 "일본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힘 싣는 박근혜 정부 규탄한다"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을 비롯한 각계 시민사회단체회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순신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힘을 실어 온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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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5월 아베 정권이 자문기구로 설치한 '안전보장의 법적기반 재구축 간담회'는 보고서를 통해 헌법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도입의 필요성을 적극 제기했다. 주변 사태법, 테러조치특별법, 유사법제와 자위대법 개정 등의 수단으로는 이미 한계에 달했으며, 더 이상 후방기지나 후방지원이 아닌 미군과의 공동작전을 적극 수행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미군함정 미사일 피격시 해외일본인 적극 보호, 중동에서 외국군대와 공동으로 군사력 대응이 가능한 집단적 자위권 등을 요구했다. 물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제한적인 것이다. 명백한 위험이 존재할 경우, 일본인 구출을 위한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 필요 최소한도의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사전에 국회승인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국가화는 이미 빗장이 풀렸다. 올 가을과 내년 상반기까지 10여개의 법률개정 과정에서 일본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야당 민주당의 감시와 견제가 기다리고 있다. 중국과 일본 간의 분쟁 격화가 예상된다. 내각마다 명백한 위협이라고 자의적 판단과 정의를 내려 해외로 자위대를 파병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개입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급변사태를 가상해보면, 국내 거주 약 6만 명의 일본인이 대피하는 과정에 자위대가 개입해 전쟁확대가 이뤄질 수도 있다.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보장되지 않는 긴장의 시간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한반도 영해, 영공 진입 시 반드시 사전허가가 필요하다는 말만 하고 있다. 일촉즉발의 전시 상태에서 일본정부가 한국 측 요구를 그대로 들어줄 리 만무하다. 한일간 군사력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벌어질 것이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을 추진하는 상황 속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한다. 더불어 동북아 군비경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일본과 북한을 끌어들여 동북아 안전보장과 평화협력 체제를 적극 구축해 나가야한다.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해야할 때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양기호 기자는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입니다.



태그:#집단적자위권, #일본, #아베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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