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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예술인을 키우는 것 못지 않게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의 정신과 영혼을 동시대인과 미래의 사람들에게 물려주는 것 또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진영 논리를 떠나서 음악가 윤이상에 대한 경남도의 진취적이고 획기적인 접근을 요구하며 생가터 보존에 적극 나서기를 재차 촉구한다."

(사)경남민예총(회장 강동옥)이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 생가터 보존을 촉구하고 나섰다. 강동옥 회장 등 회원들은 27일 오전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남도가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작곡가 고 윤이상(1917~1995) 선생의 통영 생가터 보전 여부를 두고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은 윤이상 선생이 별세한 뒤 통영의 한 사찰에서 제사를 지냈을 때 영정 모습.
 작곡가 고 윤이상(1917~1995) 선생의 통영 생가터 보전 여부를 두고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은 윤이상 선생이 별세한 뒤 통영의 한 사찰에서 제사를 지냈을 때 영정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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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생가터는 경남 통영 도천면 157-2번지에 있다. 통영시가 이곳을 관통하는 도로 개설공사를 진행하려 했는데, 폭 8m에 길이 178m 규모의 왕복 2차로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예술인들이 반발하자 최근 통영시는 공사를 중단하고 설계 변경했다. 윤이상 생가터를 지날 예정인 왕복 2개 차로 중에 1개 차로를 생가터 옆으로 우회하기로 변경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생가터는 도로 한복판에 있어 고립된다.

일부에서는 생가터를 도로 한복판에 두어 고립시킬 것이 아니라 도로를 우회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통영시는 생가터 주변에 주택이 밀집해 있어 도로를 우회한다면 상당한 주택을 추가로 철거해야 하기에 재정 여건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윤이상 선생에 대해, 경남민예총은 "이미 살아있던 시절 현존하는 유럽 5대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으며,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에 의해 사상 최고의 음악가 44인 중 한사람으로서 그 이름이 동판에 새겨졌다"며 "44인의 위대한 음악가 중 20세기 작곡가는 윤이상과 스트라빈스키 등 4명뿐이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붉은색이 칠해진 윤이상 이름지우기에 급급한 현실에 대해 경남민예총의 모든 회원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윤이상 생가를 보존하겠다는 통영시의 약속은 보기 좋게 물 건너 갔으며 이제 그 생가터마저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밝혔다.

경남 통영시는 도천면 157-2번지에 있는 윤이상 선생의 생가터를 관통하는 도로 개설 공사를 벌이다가 예술시민단체의 반발을 산 뒤 계획을 바꾸었다. 통영시는 생가터를 복판에 두고 2개 차선 가운데 1개 차선을 옆으로 우회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되면 생가터가 고립된다.
 경남 통영시는 도천면 157-2번지에 있는 윤이상 선생의 생가터를 관통하는 도로 개설 공사를 벌이다가 예술시민단체의 반발을 산 뒤 계획을 바꾸었다. 통영시는 생가터를 복판에 두고 2개 차선 가운데 1개 차선을 옆으로 우회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되면 생가터가 고립된다.
ⓒ 통영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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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가 제시한 변경안에 대해, 경남민예총은 "생가터를 2차선 도로 한 가운데 위치시킨 변경계획은 졸속행정이며 면피성 계획에 급급한 내용이었다"며 "통영시는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기념사업이 학술적, 예술적, 문화재적 관점 없이 유족과의 협의 운운 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행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경남민예총은 "윤이상 생가터 보존과 기념사업에 경남도는 통영시 소관이라는 오불관언의 자세를 거두고 앞장서 나설 것"을 촉구했다.

통영에서 태어나 자랐던 윤이상 선생은 1948년 통영여자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있었고, 1956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꼽혔던 그는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베를린에서 숨을 거두었다.


태그:#윤이상, #통영시, #경남민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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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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