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일 오후 여의도 KBS본관에서 길환영 사장 해임안을 처리하는 이사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KBS노조와 언론노조KBS본부 조합원들이 '박근혜 사과' '길환영 해임'을 촉구하는 연대집회를 열고 있다.
▲ "길환영 사장 물러나라" KBS양대노조 한목소리 5일 오후 여의도 KBS본관에서 길환영 사장 해임안을 처리하는 이사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KBS노조와 언론노조KBS본부 조합원들이 '박근혜 사과' '길환영 해임'을 촉구하는 연대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KBS 이사회의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에 대해 대통령이 결재를 했으니 일단 이 사안은 마무리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다. 길 사장이 해임결정 무효소송을 낸다고 하지만 버스는 떠났다. 그러나 찜찜한 구석이 있다. 이 절차에 하자는 없는가? 길환영의 항변에 일리는 없는가?

둘 다 있다. 길환영을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진영논리에 갇혀 명분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점에서 짚어야 할 것을 짚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영방송 KBS의 정상화 장정을 이끌 컨트롤 타워의 부재에 대해서도 더불어 생각하면서, 관련하여 객관타당한 근거가 빈약한 지배구조개선 만능론에 대해서도 거듭 재고해보기로 한다.

6월 9일자 <연합뉴스> 기사의 내용이다.

'해임제청은 안행부를 거쳐 청와대에 전달된다. KBS 이사회는 사장 임명과 해임 제청권만을 갖고 있다. 실제 임명과 해임은 대통령 권한이다.'

맞는가? KBS 이사회에 해임 제청권이 있으며, 대통령에게 해임 권한이 있는가? 6년 전, 이명박 정권이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려 할 때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다.      

방송법 제50조 제2항은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되어 있다. 정연주 사장의 해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은 이 조항을 근거로 대통령은 임명권만 있으며 면직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연주 사장의 해임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이사회로 하여금 길 사장의 해임을 제청하도록 요구하며 농성을 했고, 이사회 결정에 대해 환호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재가를 당연한 일로 여긴다. 길환영이 해임된 것은 잘된 일이다. 그러나 방법과 절차에 하자가 있다. 저들이 했다고 해서, 독립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독립을 훼손하는 방법을 사용해도 되는가?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도 정당화되는가?

길환영 사장의 해임은 우발적인 것이었다. 항시적으로 잠복해있던 것이 세월호 참사를 겪는 와중에 군중심리가 발동되어 감정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때 지혜롭고 이성적인 컨트롤 타워가 있었더라면 이렇게 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투는 전략과 전술이 완비된 가운데 이길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 때 해야 한다.

길 사장 해임이 최종적인 승리가 아니란 것은 다 안다. 그래서 다들 지배구조 개선을 얘기한다.

<오마이뉴스> 박주현 시민기자는 '길환영 끝나면 끝? 박근혜의 꼼수는 이것'이란 글에서 "'권력의 방송'으로 돌아선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 되돌아오려면 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전제돼야만 한다"면서 "우선 공영방송 사장 선임의 첫 단추 역할을 하는 KBS 이사회와 방문진 구성에 관한 지배구조 요건부터 바꾸어야 한다. 정부와 여당추천 인사가 절대 우위인 현실에서 다수결로 사장 선임 등 중요 안건을 결정하는 비민주적 시스템을 뜯어 고쳐야만 한다"라는 처방전을 내렸다. 지배구조 요건을 뜯어고치면 '국민의 방송'으로 되돌아오는가?

지난번 내 글 'KBS 개혁, '특별다수제'는 답이 아니다'에 이어서 보다 구체적으로 따져보기로 한다. KBS의 경우 11인의 이사 구성이 여야 7대 4로서 사장 추천을 과반수로 결정한다. 지배구조개혁의 요체로 거론되는 '특별다수제'는 이러한 과반수 결정을 2/3 이상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면 8명 이상 찬성해야 결정되니 최소한 야당측 이사 1명이 찬성해야 결정될 수 있다. 그러니 이 구조에서는 야당도 동의할 수 인사가 추천될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말은 그럴듯하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는 프랑스의 사례를 들어 3/5 이상으로 하면 독립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서는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외국의 사례를 모두 검토하면서 토론회를 수백 번이나 했었다. 그러나 프랑스와 우리는 역사와 문화가 다르다. 토질이 다른데 껍데기만 바꾼다고 방송독립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나치독일에 저항했던 레지스탕스가 주축이 되어 반역자들을 처단하고 출발하여 정치인과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출중한 반면에 우리는 그 반대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지배하게 된 나라에서 이들은 도덕적 지적 열등감으로 인해 반공이나 종북주의라는 반지성주의를 앞세워 기득권을 지키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에서 KBS의 이사 구성 역시 7대 4였다.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여야구도는 4대 7이 된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신태섭 이사는 학교에서 징계해임되고, 이사직에서 해임된다. 이사장은 사퇴를 표명했다.

최시중의 방통위는 이사장을 포함하여 공석이 된 2인을 여당측 인사로 채웠다. 그리고 야당측 이사가 된 이춘발 이사가 여당측 이사들과 보조를 맞췄다. 결국 정연주 사장이 해임되었다. 이 사례는 이성과 도덕과 지성이 작동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지배구조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지배구조에서 정답은 없으며, 나라에 따라 다르다.

더구나 그게 정답이라고 해도 지배구조 개혁은 국회의 소관으로서 긴 시간을 요한다. 지금 KBS 개혁은 다급을 요하는 현안이다. 따라서 뜬 구름 잡는 지배구조 개혁이라는 수사는 그만하는 게 좋겠다.

대신에 KBS 구성원들이 입을 모아 반성하고 다짐을 했으니, 새 사장이 누가 내려오더라도 흔들림 없이 당장에 진실보도를 하고 좋은 프로그램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제도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내부적으로 취재보도의 자유와 제작편성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할 일은 군중심리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감시하고 차분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태그:#KBS 개혁, #길환영, #지배구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