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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경남 창원의 볼베어링을 생산하는 KBR에서 오랜만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소속의 KBR 조합원들이 지역 노동조합 간부들을 초대해 점심을 대접한 것이다.

"줄을 서시오"

지역 노동조합 간부들이 자율배식을 하며 양껏 음식을 담으며 행복해 했다
▲ "많이 담어 많이" 지역 노동조합 간부들이 자율배식을 하며 양껏 음식을 담으며 행복해 했다
ⓒ 정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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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 한 조합원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통을 옮기며 지역 노동자들을 줄 세웠다. 오늘의 메뉴는 비빔밥. 빨간 고추장과 상추, 당근, 오이에 계란 지단까지 올려 진 비빔밥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애초 50인 분을 준비했지만, 이날 온 지역 노조 간부들은 100명이 넘었다.

"길거리에서 만든 음식이 와이리 맛있누"

비빔밥을 한 움큼 떠 입에 넣은 조합원들은 하나같이 극찬했다. 따스한 밥에 적절하게 비벼진 고추장이 매콤함을 더했다. 거기에 생으로 채 썰어 넣은 오이와 당근이 씹는 맛을 놓치지 않았다. 한 숟가락 먹고 난 후 들이킨 오이냉국은 초여름의 더위를 씻어냈다.

비빔밥이 유독 맛있었던 이유는 음식을 준비한 이가 특별한 조합원이기 때문이다. 올해 38세인 변경욱 조합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변경욱 조합원이 천막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연구 중에 있다
▲ 조금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 변경욱 조합원이 천막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연구 중에 있다
ⓒ 정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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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자격증 빼고 다 갖고 있습니다"

변경욱 조합원이 수줍게 웃으며 자랑했다. KBR에서 쇠를 깎던 노동자인 변 조합원은 애초에 요리를 좋아해 집에서도 가족들에게 많은 요리도 만들어준다고 하였다. 독이 있는 복어를 손질할 수 있는 자격증부터 음식관련 자격증이 5종이라고 한다.

KBR에는 48명의 조합원이 있지만 자연히 요리의 총책임자는 변 조합원이 되었다. 공장 앞에 쳐진 '천막주방'에서는 변 조합원의 말에 따라 3명의 조합원들이 손발을 들어주고 있었다. 일종의 '변 쉐프'인 셈이다.

변 조합원은 오늘 뿐만 아니라 매일 KBR 48명 조합원들의 밥을 책임지고 있다. 재료는 신선함을 위해 새벽시장에서 구입해 온다고 한다. 그날 쓸 재료는 그날 산다는 변 조합원의 말은 일류음식점의 사장이 갖고 있는 원칙처럼 느껴졌다.

변 조합원은 매일 메뉴를 정하는 만큼 고민이 적지 않을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변 조합원은 이러한 질문에 웃으면서 대답하는 여유를 보였다.

"매일 5만 원으로 48명의 식사를 책임지려고 하니 고민은 많이 되지만, 모두가 힘든데 나만 힘들다고 안할 수도 없는 거고... 그냥 열심히 합니다."

지역 노동조합의 한 간부가 마련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다.
▲ 맛있다 지역 노동조합의 한 간부가 마련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다.
ⓒ 정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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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 노동자는 왜 밥주걱을 들었나?

KBR 조합원들이 이렇게 '천막식당'을 차린 것은 40여일 가까이 파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측은 지난 5월 17일 직장을 폐쇄했다. 이후 사측은 직장폐쇄에 이어 6월 5일 폐업공고를 내고, 오는 7월 10일 폐업을 예고했다. 식당도 폐쇄되어 이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 조합원들은 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 주방을 마련했다.

KBR 노사는 13년 임금협상을 여태껏 이어가고 있다. 노조는 기본급 9만5천 원 인상과 성과급 100%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적자'를 이유로 임금인상을 거부했다. 

케이비알은 지난 2012년 매출 410억 원에 순이익 26억 원, 지난 2013년 매출 270억 원에 순이익 7.5억 원을 기록했다. 세계 볼베어링 생산업체 중에서도 4위의 업체이며 국내 볼베어링의 80%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볼베어링은 산업기계에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라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합원들은 적자라는 말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입을 모을 정도다.

케이비알 조합원이 마련한 비빔밥 재료를 담으며 지역 노동조합 간부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 고추장 한 껏 케이비알 조합원이 마련한 비빔밥 재료를 담으며 지역 노동조합 간부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 정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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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 노사갈등은 비단 임금인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선임 금속노조 경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KBR 노동자가 파업한 이유는 회사가 노사합의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사내하도급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조가 지난 13년 쟁의조정이 중지되어 쟁의권을 갖고 있고, 파업 등 쟁의행위 중 사내하도급 도입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파업만이 사측의 일방적 사내하도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13년부터 이어진 노사갈등에 사측의 기계반출 시도도 있었다. 사측은 지난 13년 용역을 투입해 기계반출을 시도했다. 또 KBR 지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기계보수를 이유로 기계를 반출해 놓고 3년 째 돌려놓지 않았다. 40여일 가까이 이어지는 파업 역시 지난 4월 사측이 기계보수를 이유로 기계반출을 시도가 기폭제가 되었다.

유태종 KBR 지회 부지회장은 "KBR 조합원들이 독종이 되고 있다"며 "사측이 얼마나 자본이 있고, 빽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조합원들은 하나로 뭉쳐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혀 투쟁의지를 보였다.

KBR 조합원들은 내일도 공구대신 밥주걱을 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공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또 밥을 지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금속노조 경남지부 홈페이지에 게재합니다.



태그:#케이비알, #금속노조, #민주노총, #볼베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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