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9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6.4 지방선거와 진보정치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9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6.4 지방선거와 진보정치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박원순, 안희정, 최문순.'

6·4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모두 '재선'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는 차기 대선주자로서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아주 높다.

그런데 '당'보다는 '후보' 개인의 역량이 이들의 당선을 좌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제1야당의 경우 '강한 후보'가 '약한 정당'을 뒤로 한 채 선거를 치른 모양새다. 정당정치 전문가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이를 "한국정치 퇴행의 징후다"라고 진단했다.

"박원순 정치 방법은 안철수 변형 모델... 다시 점검해야"

박상훈 대표는 9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박원순 당선자가 과연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로 이번 선거를 치렀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거기에 답하는 데에는) 애매한 지점이 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박 대표는 "그것이 박원순 당선자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이해하지만 정치가 개인의 이미지나 인기에 주목하는 순간 사인화된 정치(personalized politic) 구도로 빠질 수 있다"라며 "박 당선자가 승리했지만 민주정치의 가치로 보자면 (그의 당선방식은) 퇴행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다행히 승리해서 그런 문제를 평가하지는 않겠지만 박원순 당선자의 정치 방법도 한번 점검해봐야 한다"라며 "넓은 범위로 보면 안철수의 변형 모델일 수밖에 없다"라고 꼬집었다. 정치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정당'보다 '개인'을 앞세울 경우 필연적으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처럼 여론 동원 정치나 여론 시장의 인기도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박 대표는 이러한 주장들을 바탕으로 "한국정치가 점점 사인화된 엘리트 정치로 심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며 "이미 (사인화된 엘리트 정치로) 갔다"라고 진단했다. 시민들이 강한 정당을 대안으로 가지지 못하면 엘리트 정치로 흐를 수 있다는 경고다.

이어 박 대표는 "정몽준 후보의 개인 매력이 약했고, 아들의 '미개한 국민' 발언까지 겹치면서 세월호 비판 여론이 SNS 등 뉴미디어상에서 박원순 당선자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라며 "그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박원순식 정치가 어떤 파괴력을 갖고 있는지, 그것이 갖는 민주적 효과를 말하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박원순 당선자는 교육받은 중산층이 좋아한다는 느낌을 주는데 교육받는 중산층은 정치문화적으로는 진보적이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다"라며 "박 당선자는 도시생활에 익숙한 중산층의 정서에는 맞지만 민중적 느낌은 받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안희정의 노무현 후기 모델이 더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9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6.4 지방선거와 진보정치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9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6.4 지방선거와 진보정치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또한 박 대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어떤 사회적 내용에서 차이가 있는지 애매한 상황에서는 개인을 주목하게 된다"라며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안이냐?' 이렇게 묻고 투표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주변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좋아서 찍은 사람을 한명도 보지 못했다"라며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안이라고 생각해서 찍은 게 아니라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좀 나은 인물로서 박원순·안희정 등을 찍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당선이 무조건) 좋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박원순 당선자 등이 개인의 역량으로 선거를 치렀다는 분석은 특히 '정당 없이 선거를 치르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박 대표는 "정당없이 선거를 치르게 되면 개인이 가진 학력 자산이나 전문직 등 직업 자산이 영향을 크게 미치게 된다"라며 "그런 자산이 적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당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그렇게 사인화된 선거가 커진다는 것은 폴리티컬 마케터(political marketer), 즉 선거기획자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라며 "그렇게 되면 개인이 가진 이미지를 어필하는 것이 중요해져 선거가 장사(마케팅)가 된다"라고 우려했다.

박 대표는 "사회적 내용(구조화된 의견)을 정치적으로 조직해서 그것이 공공정책을 매개로 사회갈등을 줄여가고 사회를 통합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사이클이다"라며 "그런데 지금의 사이클은 후보로 시작해서 후보로 돌아가는 것어서 민주 정치의 분배 효과가 약해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박 대표는 "박원순 당선자는 무엇을 내걸고 시장에 당선됐나, 그 대안과 비전으로 우리 사회를 바꾸겠구나, 이렇게 예상할 수 있었나?"라며 "박 당선자는 당을 배제하고 반정당적, 비정치적 선거운동을 벌였다"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대 미덕은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라고 전제한 뒤, "이번 선거를 보면서 박원순 당선자의 시민정치모델보다는 안희정 당선자의 노무현 후기모델이 한국정치 발전에 더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앞으로 한국사회가 두 사람(모델)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같으면 진보정치의 길은 없다"

또한 박 대표는 '몰락'에 가까운 진보정당들의 참패에는 "비극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시민들은 진보정당을 냉정하게 평가하기 시작했다"라며 "심지어 유권자들은 '지금 같은 진보정당이라면 필요없다, 지지하지 않겠다'고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라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현재 같으면 진보정치의 길은 없다"라며 "이는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의 평결이다"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지금 정당들의 조직력으로 보면 새누리당 장기집권체제가 올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진보정당에는 "전환기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 박 대표는 "다당제를 염두에 둔 진보정당의 정치적 기획은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라며 "차라리 양당제적 구조 속에서 주류의 일원이 되는 경쟁을 벌이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제1야당과 통합하거나 제1야당의 '진보블록'으로 들어가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진보정당의 존립을 전제로 진보정당을 애정있게 비판해온 박 대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주문을 내놓은 셈이다. 그는 "제3정당으로 살아남는다는 다당제전략은 조금 우려스럽다"라며 "0.5진보정당체제를 다시 검토해서 소선거구제하에서 더 강한 야당이 되는 길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소선거구제에 진보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진보정당이 소선구제를 전제로 한 정치도 기획했어야 한다"라며 "비례대표를 늘리는 등의 제도화에만 의존하는 정치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진보정당 10여년간의 경험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라며 "진보정당이 구체화해놓은 진보가 무엇이고, 왜 진보정당이 필요한지 제대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태그:#박원순, #6.4 지방선거, #안희정, #진보정당
댓글2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