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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봐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눈 부릅뜨고 입은 웃고 있는 사진
▲ 선거벽보용 포스터 지금봐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눈 부릅뜨고 입은 웃고 있는 사진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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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꿈을 꾼 듯하다. 처음 출마 제안을 받고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나 같은 소시민이 정치를? 며칠간의 고민 끝에 출마를 결심하고 선거일까지 숨 고를 틈 없이 내달렸다. 귀 얇은 나 자신을 얼마나 책망했는지 모른다. 마음의 준비 없이 뛰어든 선거판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나는 이번 지방선거에 시의원으로 출마하였다가 고배를 마셨다. 0.5%p 차이로 당선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일반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하는 선거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도 유쾌한 당선기가 아닌 통쾌한(?) 낙선기이다. '평범한 시민의 정치 참여'라는 약간은 무모한 타이틀을 걸고 도전했던 지난 40일간의 여정을 몇 편의 글로 나누어 담아본다.

처음 출마 제안을 받은 날짜는 4월 20일로 기억한다. 귀 얇은 사람 곁에는 늘 달변의 유혹자들이 있게 마련인데, 정치라는 쓰디쓴 제안도 그들의 입을 거치면 달콤한 유혹이 된다. 물론 그리 달콤한 유혹은 아니었다. 절박한 제안이었고, 거부하기 힘든 압력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가 이번 지방선거부터 3인 선거구로 바뀌었다. 3등까지 시의원에 당선된다는 이야기고, 다시 말하면 야권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아,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한 부가설명이 필요하다. 장황한 설명보다 현직 시장님(이번에 또 당선되셨다)의 표현을 빌리는 것이 더 가슴에 와닿을 듯하다. '반인반신'의 도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와 그의 이름을 딴 체육관이 있는 경북 제3의 도시 구미다.

그러다보니 선거 때는 온통 빨간 물결(새누리당이 상징색이 빨간색이니)뿐이고, 혹자는 '허수아비도 빨간 옷만 입혀놓으면 당선된다'는 말까지 한다.

그러한 동네에서 야권 후보로 명함을 내민다는 것은 총 대신 야전삽 하나 달랑 들고 적진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후보들은 기를 쓰고 '빨간당'의 공천을 받거나 그것이 어려울 경우는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그러한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야권 후보로 출마를 준비하던 분이 계셨는데, 갑작스런 사정으로 후보직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3인 선거구로 바뀌어서 그 어느 때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데, 야권 후보 자리가 공석이 된 것이다.

후보등록 사흘 전 "나 출마한다"... 아내에게 등을 돌렸다

사진작가님 한테서 눈좀 뜨고 웃으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 네 시간 가까이 촬영하는 동안 처음으로 정치인들이 존경스러웠다.
▲ 후보자 사진 촬영-1 사진작가님 한테서 눈좀 뜨고 웃으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 네 시간 가까이 촬영하는 동안 처음으로 정치인들이 존경스러웠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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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와 풀뿌리 지역단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그리하여,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집회를 계기로 알게 된 나에게까지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의무감이 엄습해왔다. 때마침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내 안의 피가 끓고 있던 터라 바로 거절하지 않고 3일만 고민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정치는 더러운 것, 진흙탕, 악의 무리 등 뭐 안 좋은 이미지는 모두 연상되는 단어이다. 아내도 다르지 않았다. 시의원 출마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더니, 나를 흉물스럽게 바라보고는 하루 동안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는 피켓 들고 거리를 함께 누비고 다녔지만 선거 중반까지는 떨어지기만 바랐다. 등 뒤에 적을 두고 출사표를 던진 꼴이었다.

아내뿐만 아니라 주변의 지인들이나 친척들도 한목소리로 뜯어 말렸다. 더군다나 새누리당도 무소속도 아닌 '파란색' 옷을 입고 출마한다니, 반쯤 미친 사람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일일이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이왕 출마하는 것, 제1야당의 옷을 입고 지역주의에 맞서보자는 생각이었고, 당의 후보등록일이 겨우 3일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나 출마한다, 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남기고, 아내에게 등을 돌렸다. 평소에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공부하던 독서모임의 멤버들을 모아놓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론만 공부하는 것보다 실전에 나아가 행동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멤버들을 대표하여 내가 출마하기로 결정했다. 모임의 멤버들을 주축으로 선거캠프도 꾸렸다.

여기서 두 가지 크나큰 실수를 범했는데, 하나는 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선거 경험이라고는 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서 율동 정도 하던 것이 전부인 아마추어들로 캠프를 꾸린 점이다.

예비후보 기간 동안 직계가족은 후보자의 명함을 돌릴 수 있는데, 아내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절반의 운동밖에 안 된다. 이것은 치명적인 결점이므로,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 선출직 공무원을 꿈꾸는 분이 있다면 반드시 아내의 동의와 지지부터 구하시라. 그러려면 평소에 아내에게 점수를 많이 따두어야 한다.

아마추어끼리 만든 '얼빵캠프'... 즐거운 선거가 웬 말인가

시민후보의 이미지를 위해 급하게 섭외한 주민들과 함께 촬영한 단체사진. 가운데 아이가 나의 둘째 아들이다.
▲ 시민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시민후보의 이미지를 위해 급하게 섭외한 주민들과 함께 촬영한 단체사진. 가운데 아이가 나의 둘째 아들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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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제점은 아마추어들로 구성된 캠프였다. 시민캠프라는 이름으로 낮에는 각자 직장생활을 하고 저녁에만 모여서 선거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도 부족했고 추진력도 달렸다. 우리끼리 '얼빵캠프'라고 할 정도로 모든 일이 서툴렀다. 경험 부족은 열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선거운동본부의 형태는 그럭저럭 틀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돈 안 쓰는 깨끗한 선거, 선거법을 준수하는 투명한 선거,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즐거운 선거. 이 세 가지로 선거의 방향을 잡았다. 특히 세 번째 목표는 일종의 실험정신으로 도전한 것이었는데, 평범한 개인이 선거를 준비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선거운동 기간을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된다. 하물며 즐거운 선거라니… 쯧쯧.

선거를 준비하며, 가장 첫 번째로 닥친 어려움은 현수막과 홍보물, 그리고 명함에 들어갈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최대한 선한 웃음을 지어야 하고, 사진작가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표정을 연출해야 했다. 웨딩 사진이야 행복에 겨운 표정만 지으면 되지만, 후보자 사진은 때론 인자하게, 때론 단호하게 찍어야 한다. 문제는 내가 웃을 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웃으시라고요."

모델도 배우도 아닌데 그게 과연 가능한 주문인가? 결국 눈은 최대한 부릅뜨고 입은 웃고 있는, 합성사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더불어 시민후보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여러 시민들을 섭외해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사진 찍으러 가는 전날 급하게 수소문한 분들임에도 열정적으로 촬영에 임해주신 점,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중에는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다섯 살 난 내 둘째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자, 정말 정치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정치인, 표 앞에서만 웃는 그런 정치인들을 혐오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을 닮아가는 걸 보며 입맛이 씁쓸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관문은 선관위와 당에 제출할 서류를 준비하는 일이다. 말 그대로 우여곡절 끝에 준비하였는데, 이 이야기부터는 다음 회에서 하기로 한다.



태그:#지방선거, #시민후보, #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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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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