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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딸 영정사진과 함께 찍은 유경근씨 투표인증샷
 딸 영정사진과 함께 찍은 유경근씨 투표인증샷
ⓒ 유경근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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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예은이와 함께 투표하고 인증샷도 찍었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투표할 수 있다고, 얼른 스무 살 돼서 투표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투표장에 가게 되었네요. 그래도 덕분에 예은이랑 산책했어요. 맑은 바람, 따사로운 햇빛 맞으며."

이보다 더 슬픈 투표인증 사진을 본 적 있는가.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고 유예은(18)양도 성인이 되면 꼭 투표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단다. 그래서 6·4 지방선거 당일인 4일 오전 단원고 2학년 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는 딸의 영정사진을 안고 경기 안산시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쳤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투표 인증 사진, 그리고 이번 6·4 지방선거를 상징하는 하나의 사진. 이번 선거 최대 화두였던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큰 관심거리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을 잃었는데 무슨 선거냐"는 일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딸의 영정사진을 품고 투표장으로 향한 유경근씨의 행동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후안무치한 '박근혜의 눈물' 마케팅과 '도와주세요' 쇼

그렇다. 결국 이번 선거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언제나처럼, 구체적인 전망이나 정책, 주요 의제가 실종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귀결은 '대한민국호의 참사'라 비유됐던 세월호 참사 그 이후를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일 것이다.

이러한 의지에 최우선적으로 수반돼야 할 것이 바로 '공감능력'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국민들의 집단 트라우마를 씻어 주며, 안전불감증에서 이제야 제대로 눈을 떠가고 있는 한국사회를 진정 '개조'시키고자 하는 의지. 그러기 위해선 국민들의 정서에 얼마만큼 공감하는가가 기본으로 전제돼야 한다. 누구를 대변할 것인가, 누구의 이익에 '공감능력'을 발휘할 것인가 말이다.

1일 오후 부산역광장에서 새누리당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눈물' 사진이 담긴 피켓을 100개 가까이 들고 나왔다. 이 피켓의 다른쪽은 서병수 후보 사진이 붙어 있다. 막판 총력 유세에 나선 서병수 후보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선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 오후 부산역광장에서 새누리당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눈물' 사진이 담긴 피켓을 100개 가까이 들고 나왔다. 이 피켓의 다른쪽은 서병수 후보 사진이 붙어 있다. 막판 총력 유세에 나선 서병수 후보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선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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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지방선거 유세 막판 새누리당이 연출한 '박근혜 마케팅'과 '도와주세요' 쇼 말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천대했던 대통령의 눈물을 부각하며 '위기의 대한민국, 부산이 구합시다'란 구호를 내건 새누리당.

그리고 윤상현 사무총장을 비롯해 핵심당직자들이 '도와주세요'란 피켓을 들고 큰절로 읍소하던 집권여당의 '후안무치'. 이를 보며 과연 대통령과 여당에게 과연 '공감능력'이란 게 존재할까란 회의가 들 수밖에 없었다. 직설적으로, 국민들의 안위를 챙기고 정책으로 승부해야 할 거대여당이 자신들의 위치는 내팽개친 채 한심한 읍소로 일관하는 모습에서 공감능력은커녕 소시오패스가 넘쳐나는 이 사회에 대한 환멸을 재확인해야 했다고 할까.

정몽준과 고승덕으로 대변되는 공감능력 부족자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정몽준 후보와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일 것이다. 정 후보는 한 쪽방촌을 방문해 집주인 허락도 받지 않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환경미화원 코스프레로 서민 이미지를 연출했지만 청소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모임에 참석해 달란 요구는 끝내 묵살했다. 선거운동 내내 '급식논란'과 '색깔론' 등 박원순 네거티브에 올인 했던 그가 강남3구 등 대표적인 '부자동네'를 넘어 서울시민 전체의 민의를 받아 안을 수 있을까.

'생물학적 아버지'가 자신들을 돌보지 않았다던 딸의 폭로를 '공작정치'의 일환으로 치부했던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가족사는 둘째치더라도, 그는 '고시 3관왕'등 화려한 이력과 TV 출연으로 얻은 이미지를 등에 업고 자신의 전문분야와 상관없던 '교육감' 후보로 나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더욱이 딸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 아버지가, '눈물로 읍소'하는 법을 완벽히 체득한 정치인 출신인 그가 과연 '세월호 참사' 이후의 교육을 걱정하는 '앵그리맘'들의 분노까지 어루만질 수 있을 것인가.

세월호 참사 후 대통령과 정부, 집권 여당 세력이 바라보고 읍소하며 표를 구걸하는 국민이 극히 한정돼 있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굴하지만 분명 효과적이다. 그들은 '도와달라'는 비굴한 읍소가 지지층의 표를 결집시키는데 더없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이미 체득한 상태 아닌가.

세월호 참사 이후의 변화, 우리에게 달려 있다

6.4지방선거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3일 오후 서울 강남역 유세 도중, 자신을 향해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편지를 작성해 공개한 이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거론하며 "딸아 미안하다!"를 외치고 있다.
▲ 고승덕 후보 "딸아 미안하다" 6.4지방선거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3일 오후 서울 강남역 유세 도중, 자신을 향해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편지를 작성해 공개한 이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거론하며 "딸아 미안하다!"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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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정치다. (기존)정치는 또 돈이다. 수 조 원을 서울시에 '기부, 기여'하겠다는 '특급재벌' 정몽준 후보나 사퇴 거부의 이면에 선거비용 보전에 대한 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고승덕 후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심리가 만연한 정치판에서 후보자들의 '공감능력'을 적극적으로 헤아리고 따지는 것도 결국 유권자의 몫으로 남게 됐다. 여당의 읍소 대상에서 제외된 국민들이 더 응집해야 할 이유다.

한 설문조사 결과 "투표해도 변할 것이 없을 것"이란 이유로 투표 자체를 포기하겠다던 국민이 여전히 10%가 넘었다고 한다. 반면 유경근씨처럼 딸의 영정사진을 들고 투표장으로 향한 국민도 존재한다. "이 세상을 더 오래 살아갈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어른들이 투표로 그런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유씨가 투표장으로 향한 이유였다.

이렇게 세월호 참사 이후 맞은 6·4 지방선거는 결국 변화에 대한 갈망을 공감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느냐 마느냐의 격돌장이 됐다. 언제나처럼, 그러나 훨씬 더 절박하고 치열하게.

"투표해도 바뀌는 게 없어서 투표 안 하신다는 분들. 핑계 대지 마십시오. 비겁한 당신, 우유부단한 당신. 바꿀 기회를 드려도 기회를 포기하는 당신 때문에 세상이 그대로인 겁니다."

투표일, SNS 상에서 화제를 모은 '트통령' 이외수 소설가의 투표 독려 글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비용은 총 3879억 원, 유권자 1인당 투표 비용은 1만 원에 육박한다. 1만 원의 낭비와 1만원의 소비 사이. 그 작은 차이에 개개인의, 한국사회의 변화가 달려 있다. 오후 2시 현재 사전투표를 합친 전국투표율은 42.5%. 투표 마감인 오후 6시까지, 그 변화에 동참할 시간은 충분하다.


태그:#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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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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