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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당 스님(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은 5월30일 윤이상 생가터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에 통영시 도천동의 생가터를 둘러봤다.
▲ 윤이상 선생 생가터 영당 스님(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은 5월30일 윤이상 생가터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에 통영시 도천동의 생가터를 둘러봤다.
ⓒ 윤이상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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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기왓장이 뒹굴었다. 잘게 쪼개진 콘크리트 조각들도 깔려있다. 위태로운 내일을 알아챈 것일까? 민들레 꽃씨 한 대롱이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렸다. 한쪽 구석엔 폐전선 줄이 흩어져 있고, 콘크리트가 덕지덕지 붙은 작은 밀차도 있다.

지난달 30일에 찾은 경남 통영 윤이상 선생 생가터 풍경이다. 집은 무너졌다. 통영시가 70㎡(20여 평) 집을 매입해서 허물었다. 이제 생가터를 밀어버리고 그 위에 2차선으로 너비 88m, 길이 177m 규모의 소방도로를 만드는 일만 남았다. 생가터는 아스팔트 속에 묻힐 것이다.

통영시의 '윤이상 지우기'

아이러니한 일이다. 통영시는 이곳에서 3m 앞쪽에 '윤이상 생가터'라고 적힌 둥근 표지석을 모셔놓았다. 10여m 떨어진 곳에 윤이상 선생의 독일 집 실제 모형도 만들었다. 그 앞에 고인이 생전에 타던 차까지 전시했다. 이뿐인가? 근처에 선생의 동상도 세웠다. 공원 건물에는 선생이 추구했던 음악과 정신을 기리는 전시실도 있다. 먼 곳도 아니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이다. 통영시는 한쪽에서는 생가터를 지우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선생을 기렸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지만,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은 이념과 사상을 떠나서 존경을 받아야죠. 생가터 주변에 달랑 돌멩이(표지석) 한 개 갖다 놓고, 실제 생가터를 아스팔트 속에 묻겠다? 차는 왜 갖다 놓았나요? 여기 와서 보니까 분노가 치밉니다."

이날 기자와 함께 생가터에 간 영담 스님(윤이상 평화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사실 통영시는 '윤이상 지우기' 작업을 해왔다. 2010년 생가터 주변에 '윤이상 기념공원'을 만들었다. 지금은 '도천테마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윤이상 국제음악제'는 '통영 국제음악제'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윤이상 국제음악당'이라는 이름으로 520억 원을 끌어다가 만든 건물은 '통영 국제음악당'으로 불린다. 통영시는 지난 2006년에 생가를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는 물 건너간 이야기다.

"통영이 왜 국제음악제를 하는 거죠? 왜 통영에 국제음악당을 지었을까요?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빼면 어떤 분들이 비행기 타고 와서 음악을 연주하겠습니까? 역사가 그리 깊지 않은 지방자치단체들도 작은 업적이 있는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관광자원을 개발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분의 업적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겠죠. 그런데 통영은 세계적인 음악가의 흔적을 지우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 윤이상 관련 예산도 전액 삭감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영담)과 윤이상선생생가터를지키는모임은 5월 30일 통영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윤이상 생가터 도로 편입 반대 및 복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에 통영시에 항의서한을 전달했고 통영시장 선거에 출마한 진의장, 김동진 후보 캠프에도 이와 관련한 요구서를 전달했다.
▲ 윤이상 생가터를 지키는 사람들의 기자회견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영담)과 윤이상선생생가터를지키는모임은 5월 30일 통영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윤이상 생가터 도로 편입 반대 및 복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에 통영시에 항의서한을 전달했고 통영시장 선거에 출마한 진의장, 김동진 후보 캠프에도 이와 관련한 요구서를 전달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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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담 스님의 말처럼 윤이상 선생은 세계적 음악가다. 뉴욕 브루클린 음악당 로비 벽면에는 위대한 예술가 44명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이 중 20세기 음악가는 조지 거슈윈, 벨러 버르토크,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윤이상 4명뿐이다. 또 윤이상 선생은 생존 당시 현존하는 유럽 5대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선정됐다. 이것이 바로 통영에서 국제 음악제가 열리고, 국제음악당이 지어진 이유다.

- 그럼에도 통영시가 이런 일을 벌이는 까닭은?
"이 사업을 밀어붙인 시장은 새누리당 공천으로 이번 선거에 출마했어요. 속된 말로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알아서 기는 건 아닐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뜻은 아닐 겁니다."

- 통영시가 주는 건 아니지만 정부는 매년 윤이상 평화재단이 주최하는 국제윤이상음악상 관련 행사 지원 예산 9000만 원을 전액 삭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년 책정된 예산이어서 당연히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최근에 확인했더니 전액 삭감했더라고요. 황당했습니다. 이 역시 알아서 기는 게 아닐까요?"

피로 쓴 유언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다"

고 윤이상 선생(1917~1995)
 고 윤이상 선생(1917~1995)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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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긴다? 영담 스님이 이런 추측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박정희 정권과 윤 선생의 질긴 악연 때문이다.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소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왔다"는 중앙정보부 요원에 속아 독일에서 납치된 윤 선생은 11년 만에 고국으로 끌려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자백서를 썼다. 정신을 차린 뒤에 자괴감에 휩싸여 탁자 위의 재떨이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쳤다. 흘린 피를 손가락에 찍어서 벽에 유언을 써내려갔다.

"나와 내가 자백한 사람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죄가 없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아,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다."

그의 납치 소식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구명운동이 벌어졌다. 지휘자 캬라안과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등 세계적인 음악가 181명이 서명했다. 하지만 군사정권 아래서의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 뒤에도 구명운동이 이어졌고, 결국 박정희 정권은 무릎을 꿇었다. 그는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하지만 그 뒤 그는 독일 국적으로 살다가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폐병으로 독일에서 생을 마감했다.

애조 띤 남도창, 신명 난 어부들의 노랫소리

윤이상 평화재단 이사장인 영담스님은 지난 5월30일 윤이상 선생의 부인인 이수자 여사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 윤이상 선생의 부인과 만난 영담 스님 윤이상 평화재단 이사장인 영담스님은 지난 5월30일 윤이상 선생의 부인인 이수자 여사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 윤이상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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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는 <내 남편 윤이상>이라는 책에서 그가 꼭 찾아가고 싶었던 도천동 생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어린 시절 그가 살던 집은 돌담 아래가 바다였다. 밤이면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오고, 아침이면 멸치 떼가 모래사장까지 밀려와 은빛으로 퍼덕였다.(중략) 때로는 고기잡이배들이 먼 바다에서 환한 불을 밝히기도 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어부들의 노랫소리. 바다는 공명판이 되어 마치 가까이 듣는 것처럼 선명하게 애조 띤 남도창도 들을 수 있었다.(중략)멸치 떼가 많이 몰려오면 신명난 어부들의 노랫소리는 차츰 고조되어갔는데 그는 그 때의 그 노랫소리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멀리 두고 온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추억은 항상 그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생의 원동력이었다."

생가터는 그의 음악 세계의 원천인 셈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떠할까? 영담 스님은 이날 '윤이상 생가터를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통영시청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파리 북부 몽마르트르에는 <카르멘> <아를의 여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를 작곡한 조르주비제의 집을 비롯해 반 고흐의 집, 베를리오즈의 집, 트리스탄 차라의 집, 에릭 사티의 집 등 무수한 예술가들이 머물던 집이 자리하고 있다. 파리가 파리인 것은 이들 예술가들과 이들의 흔적 때문입니다."

영담 스님은 이 밖에도 폴란드가 음악가 쇼팽을 위해 2차 대전 당시 파괴된 생가를 개조해 박물관을 만든 사실을 전했다. 그는 또 독일이 파괴된 건물을 복구해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박물관을 지은 사례를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시개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땅속에 있는 유물, 유적이 발견되면 즉각 공사를 중지하고 역사를 보존합니다. 그런데 이미 땅 속에 존재하고 있는 예술가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즉각 중단돼야 합니다."

"세계 예술인들에게 호소해서 생가터 지키겠다"

영담 스님(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은 '도천테마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윤이상 기념공원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윤이상 평화재단 이사장 영담 스님 영담 스님(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은 '도천테마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윤이상 기념공원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윤이상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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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통영시는 이 소방도로가 지난 1970년대 도시계획 때 그어진 선이고 주민들의 도로개설 요구가 많고, 건물과 토지보상도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6월부터 공사를 재개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생가터를 비켜가도록 도로계획을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만약 통영시가 공사를 강행할 경우 세계 예술인들에게 호소해서 막겠습니다. 예향이자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을 위한 일입니다. 해양 산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을 통한 공해 없는 산업을 육성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또 만약 통일이 되면 후손들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유한한 권력, 한순간의 이념 때문에 세계적 문화유산을 버렸다는 원망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영담 스님은 통영시가 고집하고 있는 직선 도로의 대안으로 곡선 도로를 제시했다. 생가터는 그 옆에 조성한 테마공원에 비하면 손바닥만 한 땅이다. 옆길로 살짝 비켜간다면 세계적인 음악가가 성장한 혼의 터전을 지킬 수 있다. 윤 선생이 이곳에서 듣고 자랐던 남도 가락도 명주 실타래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곡선이었다. 윤 선생이 평생 오선지 위에 그렸던 아름다운 선율도 항상 곡선이었다. 지금은 잡초가 무성한 생가터가 그 곡선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태그:#영담 스님, #윤이상평화재단, #윤이상 생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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