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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아침 거여동재개발지구 골목, 골목길 붉은 깃발에는 '투쟁'이라는 글씨가 써있다.
▲ 등교 비오는 날 아침 거여동재개발지구 골목, 골목길 붉은 깃발에는 '투쟁'이라는 글씨가 써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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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여느때 같으면 출근준비로 분주해야 했지만, 일개월의 말년 유급휴가를 받아 출근을 하지 않습니다.

말이 유급휴가지 직장상사와의 갈등으로 사표를 던지고 나온 것입니다. 어느새 이런 방식으로 세번째이다 보니 내성이 생겼는지, 올해가 가기 전에 앞으로의 삶을 위해 계획했던 일들을 구체화해야한다는 생각때문인지 이번 실직은 그 전과 다르게 마음이 편안합니다.

기왕 쉬는 것, 출근할 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카메라를 둘러매고 두물머리에 들렀다가 양평오일장 구경도 하고, 전수리에 사는 친구 집에도 들었다 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비오는 날에도 폐지수집은 쉴 수 없다.
▲ 리어카 비오는 날에도 폐지수집은 쉴 수 없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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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어둑한가 싶었는데 비가 내립니다.

오랜만에 내리는 단비, 저 비에 가물었던 땅들과 목말랐던 초록생명들과 바닥을 드러냈던 개천이 좋아하겠다 싶습니다.

비가 오는데 멀리 가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아 가까운 거여동재개발지구 골목길이나 한바퀴 돌고 오자 생각하고 그리로 향했습니다.

지난 봄에 방문한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쇠퇴해가는 그곳이라도 익숙한 모습들이 하나 둘씩은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어릴적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모습들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어느 방향이든 이른 아침 길을 나선이들은 일터로 향하고 있는 것이리라.
▲ 출근 어느 방향이든 이른 아침 길을 나선이들은 일터로 향하고 있는 것이리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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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투쟁'이라 선명하게 쓰여진 붉은 깃발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머지않아 개발이 될 듯합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들은 도시개발에 반대하던 분들이었고, 찬성하던 분들이 거반 떠난 뒤 이곳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쇠락된 곳이라도 지금이 더 나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네 개발이라는 것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던 이들을 내쫓는 개발입니다.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개발, 더 변두리로 밀려나야만 하는 난개발, 이젠 더 밀려날 곳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기에 열악한 환경이라도 차라디 더 나는 것이지요.

"그냥, 여기에 살게 놔둬라."

그런 약속을 한다면, 이 쇠락한 지역도 이렇게 끊임없이 쇠락하도록 두지 않겠지요.

재개발이 곧 시작될 것인가? 수년간 침묵했던 투쟁의 깃발이 집집마다 걸렸다.
▲ 투쟁 재개발이 곧 시작될 것인가? 수년간 침묵했던 투쟁의 깃발이 집집마다 걸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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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진 자들에게만 좋은 개발로 결론이 나고는 합니다. 가진자들과 토건세력들과 그 사이에서 약사빠르게 처신한 이들 정도만 이익을 보는 개발입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가 훤히 보이는데도 여전히 개발론자들은 지금 살고있는 곳을 어떻게 더 좋게 만들까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고, 무조건 철거하고 각진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짓는 것만이 개발이라 생각합니다.

하이브리드 자전거에 밀려버렸지만, 여전히 짐자전거는 건재하다.
▲ 짐자전거 하이브리드 자전거에 밀려버렸지만, 여전히 짐자전거는 건재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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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아침, 재개발지구, 간혹 오가는 사람들과 서민들의 삶의 흔적들....

이런 것들이 비오는 날 아침 풍경을 쓸쓸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서 삶의 애잔함을 느끼고, 그 애잔함이 단순히 쓸쓸한 느낌이 아니라 희망의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도시의 거리에서는 오로지 바쁨, 빠름, 경쟁, 속도만 느껴졌는데 이곳에서는 여유, 느긋함 같은 것들이 느껴집니다. 골목길 사이로 지나치는 이들은 많지 않아도, 그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학교로 혹은 일터로 향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좋겠다!'

매일 출퇴근이 일상이었을 때에는 알지 못하다가, 막상 그 시간들을 빼앗기고 나면 그 일상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이지요.

비오는 날 아침, 인적조차도 드물어 을씨년 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거여동재개발지구.
▲ 거여동재개발지구 비오는 날 아침, 인적조차도 드물어 을씨년 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거여동재개발지구.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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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번엔 보란듯이 실직의 시간들이 내 삶에 귀한 시간이 되도록 살 작정이므로 지금 이 시간 카메라를 들고 이곳을 배회하는 나의 시간도 '좋겠다!'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더 아끼게 되었는가 도시의 시간으로 재어보니 이렇습니다. 이전 같으면, 지금쯤 업무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 이전 시간들은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출근하면서 지하철에서 40여 분 책을 본 것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업무가 시작되고 10여분 지났으니, 밤 사이에 도착인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미 사진 10여 장을 담았고, 그와 관련된 글도 이미 많이 썼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 막내도 바래다 주었고, 담장 근처의 막힌 하수구도 낙엽들과 쓰레기를 조금 주워냄으로 빗물이 잘 빠져나가게 했습니다.

저렇게 오늘 아침에도 등굣길에 나섯어야할 우리의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갔음에도....
▲ 등굣길 저렇게 오늘 아침에도 등굣길에 나섯어야할 우리의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갔음에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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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먹먹해 집니다.

지금 이 시간쯤이면 조잘거리며 친구들과 등굣길에 나섰어야 할 단원고 아이들 생각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갔고, 아직도 시신조차 찾지 못한 이들이 있는데 벌써부터 책임을 져야 할 것들은 책임회피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민이 어리석을 수가 있을까?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어도 속 시원하지 않을 판에 이번 참사의 총책임을 져야할 이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그 황당한 말에 계란 하나 던지는 국민이 없는 것인지 의아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초청하여 면죄부를 던지듯 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아멘!'으로 화답하는 그 신도들은 또 어떻구요.

상황이 이럼에도 여전히 박빙이라니, 참으로 비상식과 비정상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지요.

좁은 골목길, 그 좁은 길도 꽉 채우지 못한 쓸쓸함이다.
▲ 골목길 좁은 골목길, 그 좁은 길도 꽉 채우지 못한 쓸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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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이었다면, 출근시간이었지만, 비가 오는데도 거리로 나선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출근시간에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업무시간이 되면, 일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일하자고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서민을 위한 개발이 있었던가?
▲ 재개발지구 그동안 우리에게 서민을 위한 개발이 있었던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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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단비가 내린 아침이 신선합니다.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 찜질방이나 숯가마 보다도 더 더워서 아침부터 골목길로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겠습니다.

재개발지구는 울에는 연탄가스와 화재사고 걱정으로, 여름에는 찜통더위와 냄새로 고통을 겪습니다. 그래서 겨울보다는 봄이, 여름보다는 가을이 좋고, 시원하고 열매까지 많은 가을이 사계절 중에서 가장 좋습니다.

그 어떤 노동이라도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다. 이런 노동을 욕되게 하는 이들이 있다.
▲ 노동 그 어떤 노동이라도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다. 이런 노동을 욕되게 하는 이들이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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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터가 곧 길인 환경미화원이 비오는 날에도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손길들, 이런 노동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의 신성한 노동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고, 이런저런 헛공약으로 표만 얻으려는 후보가 있다는 소식에 혀를 찹니다. 그런데 혀를 찰 일이 하나 둘이라야지요.

이 나라는 나쁜 짓을 하려면 통 크게 하면 되는 나랍니다. 전직 대통령처럼 통 크게 나쁜 짓하면, 검찰에서 대충 조사하는 척하다 무혐의 처리로 마감하지요.

갑자기 나라 생각을 하니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옵니다. 이런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겠지요. 내일, 지방선거일인데, 현명한 국민들이면 좋겠는데 또 허탈해서 아예 이 나라에 대한 희망을 접는 날이 될까 두렵기도 합니다.


태그:#거여동재개발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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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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