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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2시,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을 지나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대자보를 읽고 있다. 대자보는 KBS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 대자보를 읽고 있는 학생들 28일 오후 2시,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을 지나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대자보를 읽고 있다. 대자보는 KBS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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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길환영 사장의 모교 후배들로부터 나왔다.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학생회 집행부는 지난 27일 오후 10시, 페이스북 페이지와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길환영 사장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의 전신인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74학번 출신이다.

미디어학부 학생회는 대자보를 통해 "길 사장의 방송보도 관여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KBS는 지난 1년 5개월 간 정권의 나팔수요, 권력의 방패"라고 규정했다. 이어 학생회는 길환영 사장을 향해 "부끄럽다"며, "보도와 편성의 자율권을 훼손한 길환영 사장은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학생회는 "이 땅 모든 언론학도들은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라며 "그대들의 선배들에게, 그대들의 상사들에게, 그리고 그 동안 우리를 감쌌던 침묵에게"라는 말로 대자보를 끝맺었다.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학생회장 김서연(22)씨는 "이번 사태에 대해 학생회 차원에서 의견을 표명해야한다는 여론은 집행부 안과 밖에서 모두 제기됐다"며 "개인적으로도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행부 회의에서 대자보를 쓰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대자보를 직접 작성한 미디어학부 부학생회장 유종헌(21)씨는 "국민 모두를 위한 방송이 되어야 할 공영방송 KBS의 지금 상황이 많이 안타까웠다"며 "이에 대한 학생 사회에의 논의가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대자보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학생회가 게시한 대자보가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게시되어 있다. 대자보는 KBS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학생회가 게시한 대자보가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게시되어 있다. 대자보는 KBS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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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를 읽은 학생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같은 과 10학번 구현모씨는 "용기내어 준 후배들이 자랑스럽다"며 "속이 다 시원하다"고 말했다. 역시 같은 과 12학번 조해영씨는 "(길환영) 선배가 부끄럽고 쪽팔렸다"면서 "개인 이름으로라도 대자보를 쓸까 고민 중이었는데 학생회가 대신 말해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정치외교학과 08학번 전형우씨 역시 "현직 기자들 중에서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선배들이 꽤 있을 것"이라며 "기자를 지망하는 후배들이 이렇게 말을 해주니 후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이 대자보가 균형이 잡혀있는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사건의 전말이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시기에 대선배를 향해 사장 자격을 운운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다음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학생회의 대자보 전문이다.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후배의 눈으로 KBS 사태를 바라보며


 언론의 위신은 어디까지 추락해야 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더 부끄러워야 하는가. 언론의 썩은 속살이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에는 공영방송 KBS의 사장님이시자 자랑스러운 우리 과 선배님이신 길환영(신문방송 74) 사장이다.

사건은 5월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5월 4일,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부적절한 발언' 논란에 휩싸였다.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 측은 김 전 국장이 회식 자리에서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국장은 '얘기가 취지와는 다르게 전달됐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5월 9일 사임했다.

그런데 9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김 전 국장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다. 바로 길환영 KBS 사장과 청와대가 김 전 국장의 사직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언론노조 KBS 본부가 공개한 김 전 국장의 KBS 기자총회 발언 내용을 보면 김 전 국장은 길 사장이 직접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자신에게 회사를 그만둘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국장은 또 재임 기간 동안,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길 사장에게서 보도 관련 외압을 수시로 받았고, 세월호 사고에서도 해경 비판을 자제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김 전 국장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KBS가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없으며, 대통령 뉴스는 항상 9시 뉴스 앞쪽에 배치하는 원칙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김 전 국장의 폭로를 시작으로 충격적인 사실들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13일 KBS 노동조합은 백운기 신임 보도국장이 청와대 관계자와 접선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공영방송인 KBS가 청와대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으며 여기에 윗선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KBS 노조는 이어 16일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를 KBS가 확대 보도했으며, 여기에 윗선이 개입되어있다고 추가 폭로했다. 김 전 국장은 5월 1일부터 8일까지 8일 동안 총 세 차례 길 사장의 관여가 있었다고 밝혔다. KBS 기자협회는 18일 청와대가 9시 뉴스를 어떻게 통제했는지 보여주는 '보도 외압 일지'를 공개하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기자협회는 사과문에서 '길 사장의 전횡을 막지 못했고, 보도본부의 굴종도 지켜만 봤다. 사장이라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유로 애써 눈감았다. 국민 앞에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방송법 4조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길 사장의 방송보도 관여는 명백한 불법이다. 물론 길 사장의 배후에는 청와대가 있다. KBS는 지난 1년 5개월 간 정권의 나팔수요, 권력의 방패였다. 청와대가 사장에게, 사장이 보도국장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보도내용을 입맛대로 조작하는 것이 전두환 정권 시절 '보도지침'과 무엇이 다른가? 청와대는 '협조요청'을 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편집권 외압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언론노조 KBS 본부에 따르면 현재 부장급 54명을 포함한 309명의 간부가 보직사퇴를 통해 길 사장의 퇴진과 박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부장단 전원이 길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KBS 노조는 "길 사장이 퇴임하지 않을 시,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길 사장 편은 없다.

부끄럽다. 이런 자가 공영방송의 사장자리에 오른 것도, 우리의 선배인 것도, 방송 3사 사장이 모두 우리 과 선배라고 자부심을 가졌던 내 자신도 부끄럽다. 무엇보다 언론의 위신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 것이 부끄럽다.

 길 사장은 '좌파 노조가 KBS를 장악하는 것을 막을 것이며 사퇴는 없다.'고 말했다. 길 사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양대 노조가 좌파이고 그들의 발언이 정치적이라면, 혹은 노조원들이 '사장님'의 복수를 걱정해 목소리 내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길 사장의 대학 후배인 우리가 대신 내겠다. 보도와 편성의 자율권을 훼손한 길환영 사장은 사퇴하라.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하라. 이 땅 모든 언론학도들은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그대들의 선배들에게, 그대들의 상사들에게, 그리고 그 동안 우리를 감쌌던 침묵에게!

침묵을 가르는 해방의 함성
제31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학생회 집행부 Comm-之樂




태그:#KBS, #길환영,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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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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