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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산 편백숲. 연녹색의 숲바다를 만날 수 있는 숲이다.
 병풍산 편백숲. 연녹색의 숲바다를 만날 수 있는 숲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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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처참하게 죽어간 아이들의 앳된 얼굴만 아른거린다. 날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눌 길이 없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재난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단 한 명도 구조를 못했단 말인가.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가 무뎌져만 간다. 가슴이 아프다. 나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두렵다.

차를 몰았다. 무기력에 빠져 있는 내가 싫어서다. 봄바람이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았다. 늑장을 부린 탓에 멀리 가기엔 부담스런 시간이다. 혼자만의 여유를 갖기 위해 한재골로 간다. 도로변에 줄지어 선 이팝나무가 눈에 부시다. 지난 17일이다.

담양 한재골은 나에게 각별한 곳이다. 어릴 적 추억이 골골마다 서려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물놀이를 즐겼고, 학창시절엔 단골 소풍장소였다. 부모를 따라 땔감을 하러 다니던 곳이기도 하다.

하여, 심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게다가 싸목싸목 자박자박 걸을 만한 숲길도 있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이다. 길이 담양과 장성에 걸쳐있는 병풍산(822m)의 허리춤을 따라 나 있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 임도 구간이 길어 걷기에 부담이 없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 임도 구간이 길어 걷기에 부담이 없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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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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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한재에 섰다. 병풍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학교 때 소풍을 자주 갔던 곳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가 우람하다. 한재벌판은 발 아래로 펼쳐진다. 광주 첨단단지도 저만치 보인다.

그 사이로 영산강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언제라도 넉넉한 풍광이다. 양 옆으로는 병풍산과 불태산이 그려낸 연녹색의 숲바다가 드리워져 있다. 눈이 시원해진다. 금세 세상시름 다 걷어낸 것 같다.

한재에서 큰골로 방향을 잡는다. 길이 제법 넓다. 그렇다고 밋밋하지 않다. 반듯하다가 S자로 구부러진다. 하얀 찔레꽃이 햇볕을 받아 빛난다. 진분홍의 철쭉도 피어 있다. 길섶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이름 모를 들꽃도 정겹다. 들풀도 무성하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적함이다. 길도 예스럽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다. 폭이 넓은데도 한산하다. 인공의 냄새도 묻어나지 않는다.

얼굴에 와 닿는 봄바람이 달콤하다. 바람결에 실려 온 숲내음을 마음 속 깊이 호흡한다. 상쾌하다. 동행이랑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걸으면 더 오붓하겠다. 비 내리는 날 둘이서 우산을 쓰고 걸어도 좋겠다. 눈이 쌓여도 걷는데 그리 불편하지 않을 길이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 숲길이 한적하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 숲길이 한적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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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저수지.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월성저수지.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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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혼자서 걷는데, 마음이 시무룩해진다. 잔잔하던 감정이 순간 요동을 친다. 쥐어짜면 금방이라도 연녹색의 물기가 묻어날 것 같던 초목이 더 서럽게 느껴진다. 연둣빛 이파리가 죽임을 당한 어린 생명들 같다. 달콤한 봄바람을 쐬는 것도 죄스럽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미안해진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길 가의 평상에 앉았다. 산자락에 들어앉은 월성저수지를 내려다보며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숨도 깊이 들이쉰다. 숲에서 호흡하는 맑은 공기에 몸과 마음이 다독여진다.

한동안 풀어놓았던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손발을 위아래로 흔들며 잡념을 털어낸다. 길이 편백숲 사이로 지난다. 산골에도 편백과 삼나무 빼곡하다. 새순이 돋아나는 곰솔도 울창하다.

원시림 같다. 하늘로 쭉쭉 뻗은 모양새도 멋스럽다. 마음속 통증이 나무를 따라 하늘로 날아가는 것 같다. 숲에 흐르는 피톤치드와 음이온 덕분인지 머릿속까지 상쾌해진다. 호흡도 편안해진다. 몸과 마음의 긴장도 사라진다.

병풍산 임도. 숲그늘 사이를 따라 자박자박 걷기 좋다.
 병풍산 임도. 숲그늘 사이를 따라 자박자박 걷기 좋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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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를 이유가 없다. 숲길에서 하늘하늘 흐느적거린다. 숲길에 서성이는 것만으로도 보약 한 첩 먹은 것 같다. 어디선가 따다다닥, 따다다닥 울림이 들려온다.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다. 꿩의 울음소리와 종달새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온다. 새소리가 귓전을 말끔히 씻어준다. 마음도 청아해진다.

길이 임도에서 좁은 숲길로 이어진다. 길이 조금 가파른가 싶더니 통나무를 놓은 계단이 나온다. 나무계단도 다소곳하다. 숲길도 호젓해서 더 좋다. 숲길을 온전히 혼자서 차지한 것 같다.

병풍산 숲길. 임도를 지나면 오솔길로 접어든다.
 병풍산 숲길. 임도를 지나면 오솔길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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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 오른편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 오른편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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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길을 내려가니 큰골이다. 계곡의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다. 길도 넓어진다. 하지만 울퉁불퉁하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임도와 다르다. 옛길 그대로다. 길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물소리가 귓전을 간질이며 동행한다. 계곡 숲길을 걷는 묘미가 쏠쏠하다.

숲길에서 잠시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간다. 깊은 계곡이 아닌데도 물이 맑다. 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곡물에 한동안 눈을 맞췄다. 순간 현기증이 일어나면서 물살에 내 몸이 빨려들어 갈 것 같다. 계곡물에 손을 씻고 다시 길에 들어섰다.

병풍산 편백숲 계곡. 숲길을 따라 나란히 이어진다.
 병풍산 편백숲 계곡. 숲길을 따라 나란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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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 임도와 오솔길, 산길을 모두 만나는 길이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 임도와 오솔길, 산길을 모두 만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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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과 나란히 난 숲길을 따라가니 홍골이다. 하얀 꽃을 피운 나무가 눈길을 끈다. 꽃도 예쁘다. 길옆은 남새가 심어진 밭이다. 제 멋대로 자라난 머위대도 지천이다. 집도 드문드문 보인다. 그동안 동행했던 계곡물이 월성저수지를 만나 몸을 섞는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은 여기서 월성제를 끼고 금계사로 이어진다. 시간이 허락하면 홍길동 우드랜드를 거쳐 병풍산 매봉까지 오를 수 있다. 이렇게 한 바퀴 도는 거리가 40리에 이른다.

산속 숲길을 따라 편백 군락지와 계곡, 산봉우리를 모두 만난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숲길이다. 자연의 선물인 편백숲을 온몸으로 호흡하며 큰 힘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숲에 들어서는 순간, 오진 한나절을 선사해준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 임도와 오솔길을 지난 길이 계곡을 따라 간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 임도와 오솔길을 지난 길이 계곡을 따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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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월성저수지.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이 이 저수지의 수변을 따라 이어진다.
 장성 월성저수지.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이 이 저수지의 수변을 따라 이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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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가는길
고창-담양간 고속국도 북광주 나들목에서 담양 대치를 거쳐 백양사 방면으로 간다. 담양과 장성의 군계를 이루는 한재를 중심으로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이 다듬어져 있다. 내비게이션은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월성리 산76-3.



태그:#병풍산, #편백숲, #편백트레킹길, #한재골, #홍길동우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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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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