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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4일 오후 4시 15분]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이 지난 20일 경질됐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지난달 23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발언 때문인데, 그로서는 '문책성 경질'이 억울할 것 같기도 하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눈치 없는' 말을 했지만, 그의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거듭 밝히고 있는 '재난 관리' 구상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19일 오전 서울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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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와 이달 19일 대국민담화에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안전처를 신설해 모든 유형의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확인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재난 발생시 각 부처에서 국가안전처 장관의 요청사항을 따르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징계를 할 수 있는 규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급의 장관들이 안전처 장관의 지시를 따르겠느냐는 지적에 대한 대책인 셈이다.

그는 또 "혼선이 있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National Security Council)와 국가안전처의 업무분장을 명확히 해달라"며 "NSC는 전쟁과 테러위협 등 국가안보 관련 위기 상황을 전담하고, 국가안전처는 재난과 안전에 대해 책임을 맡아 총괄대응할 수 있도록 논의를 해 달라"고 했다.

김한길 대표 등 야당 쪽에서 "청와대 NSC가 재난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청와대 NSC는 전통적 군사안보에 대한 컨트롤타워고, 국가안전처가 재난 컨트롤타워'라고 무지른 것이다.

아직도 세월호 침몰 사고로 실종된 희생자들을 수습하는 중이고, 사고조사는 시작도 못한 시점에서 이같은 '안전처-컨트롤타워론'을 강조하는 논리는 무엇일까. 청와대는 지난 20일 배포한 '국가안전처를 국무총리 소속으로 두는 논거 설명자료'라는 2쪽짜리 문건에서 '청와대(NSC, 국가안보실)에 재난 컨트롤타워 설치 곤란 이유'를 설명했다.

청와대 "NSC는 국가안보에 집중... 안보·재난 통합수행시 재난 분야 위축우려"

- 남북대치상황, 북핵위협 등 안보상황을 감안할 때 NSC는 국가안보에 집중 필요
- 국가안보·재난관리 통합 수행시 안보와 재난의 전문성 차이로 시너지 효과가 미흡하고, 오히려 재난분야가 위축될 우려(안보적 위기상황에서 대형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분산될 가능성)
-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에도 대통령실 NSC는 외교안보 기능만을 주로 담당하고 재난 관련 기구는 별도(국토안보부, FEMA(연방긴급재난관리청))로 운영

청와대가 재난 문제까지 맡으면, 안보사안에 대한 컨트롤타워 기능이 약해지고 또 한편으로는 안보사안에 밀려서 재난분야 대응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 미국도 이렇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을까. 청와대가 사례를 든 미국 상황부터 살펴보면, 청와대의 설명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01년 9·11사건 이후 해안경비대, 출입국 관리소, 국경경비대, 대통령 경호실, FEMA 등 22개 연방기관을 합쳐서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DHS))를 출범시켰다. 미국 행정부처 중 국방부 다음으로 큰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부시 정부는 대테러 업무와 재난, 자연재해 등을 포괄하는 이 '공룡' 부서 업무에 대한 대통령 보좌를 위해 백악관에 국토안보위원회(HSC,HomelandSecurityCouncil)를 만들고, 외교안보분야를 담당해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와 별도로 운영했다. 

그러다 오바마 정부 출범 뒤인 2009년 5월, 안보조직 개편 정에서 국토안보위원회의 테러와 재난 관련 업무를 국가안전보장위원회로 통합해버렸다. 2008년 겨울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및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가안보 관련 기구들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계속 전쟁하는 미국도 백악관이 재난문제 컨트롤"

류희인 전 청와대 NSC위기관리센터장은 "미국 HSC는 30명,  NSC는 200명 정도 규모였는데 HSC의 공보·예산 관련·인사·법률 업무는 NSC가 맡는 형태로 운영되다가 재난 관련 업무 등을 NSC로 모아서 백악관이 통합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며 "지구적 차원의 안보문제를 다루고, 계속해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도 이렇게 하고 있는데, 청와대가 재난문제까지 맡을 경우 전통적 안보 사안에 대한 컨트롤기능이 약해질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와 재난관리를 통합 수행하면 재난분야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데 대해서도 "청와대의 국정운영이라는 것은 매우 다양한 분야를 다뤄야 하는 것인데, 군사안보가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분야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면서 "재난분야가 위축된다는 것은 현 청와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종합적으로 보면 국방비보다 재난 관리와 희생자 구조·지원 비용이 훨씬 크다"며 "정부는 전시에도 한편으로는 전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생활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군사안보 컨트롤타워 기능만 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행정부처의 조직관계에서 재난문제를 담당할 청와대 내 조직이 없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현재 우리의 대통령 비서실은 정부의 모든 조직과 관련해 대통령의 지휘를 보좌하는 수석과 비서관들이 있다. 행정부의 기획재정부 업무와 관련해 경제수석실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구조다.

그런데 '안전처 컨트롤타워안'으로 확정되면 청와대에는 재난업무와 관련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조직이 없는 상황에 놓인다. 미국이 국토안보부 업무와 관련해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NSC가 있는 것과 대비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이런 방침을 계속 강조하고 나서면서, 정치적 부담을 총리선에서 끊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안전처 대응 실패하면, 결국 청와대 책임으로 귀결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전날 밤부터 길거리에 앉아 항의하고 있다.
▲ 세월호 유가족 둘러싼 경찰병력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전날 밤부터 길거리에 앉아 항의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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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행정부 산하기관인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세월호 사건 검토에 따른 국가안전관리체계 개편(안)' 문건도 청와대의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안에 대해 '컨트롤타워 일원화'를 장점으로 제시하면서, '대통령실에서 직접 총괄하는 경우 정치적 부담가중', '정치적인 리더십 무력화의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음' 등을 단점으로 지적했다.

그렇다면 재난 대응 실패 책임을 국무총리선에서 끊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03년 초 NSC 위기관리센터가 재난재해 업무의 컨트롤 타워를 맡느냐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청와대에 컨트롤타워가 있으면 대통령에게 직접 부담이 전가되므로 국무총리실이니 관련 부처가 컨트롤 타워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국민은 궁극적으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며 NSC위기관리센터가 컨트롤 타워를 맡도록 했다(이종석 <칼날위의 평화> 53쪽).

세월호 사건을 예로 들면, 국가안전처가 대응에 실패하면 유족들은 총리가 아니라 청와대로 대통령을 찾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태그:#국가안전처,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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