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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 새벽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경비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응급실에서 눈을 감았다. 사인은 뇌출혈. 그는 전날 24시간을 근무하면서 새벽까지 100여 자루의 낙엽을 쓸어 담고 순찰도 돌았다. 그는 죽은 지 이틀 만에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돼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아파트 경비원을 포함하는 감시·단속직 노동자는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고 대기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그의 죽음은 감시·단속직 노동자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경비원의 죽음을 계기로, 감시·단속직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이 이중주차된 차를 밀고 있다.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이 이중주차된 차를 밀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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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허리병신' 되는 곳으로 유명해요."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한인수(60, 가명)씨가 나직이 일렀다. 경비초소 책상 서랍에는 40여 개의 차 열쇠가 빼곡했다. 그는 허리를 만지며 "이곳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없어 이중주차를 한다, 차를 미는 일이 주 업무다, 허리에 무리가 간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한씨는 이날 오전 6시에 출근했다. 이튿날 오전 6시까지 24시간 일해야 한다. 외부인 감시·순찰뿐 아니라 주차, 택배, 분리수거, 청소 업무 등을 담당한다. 점심과 저녁을 먹는 1시간씩이 유일한 휴게 시간이지만, 쉴 공간이 없다. 꼼짝없이 경비초소를 지켜야 한다. 그렇게 주 77시간, 월 330시간 일한다. 손에 쥐는 돈은 수당을 합쳐 월 184만 원이다.

이곳 아파트 경비원들은 휴게시간이 적고 노동 강도가 높은 탓에 다른 아파트 경비원보다 월급이 많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한씨의 시급은 4700원 가량이다. 올해 최저임금(5210원)의 90% 수준이다.

경비원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일한다. 한씨는 단지 내 42m 높이의 굴뚝을 가리켰다. 2012년 12월 이곳 경비원 민아무개씨가 고공농성을 했던 곳이다. 당시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원의 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낮췄고, 이에 따라 23명이 쫓겨났다. 정년이 보장되면, 경비원들의 월급이 올라 관리비 부담이 커진다는 게 해고 이유였다. 

고공농성이 언론의 주목을 받자, 7명이 복직됐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지난해 말 쫓겨났다. 정년을 65세로 환원해 달라는 경비원들의 요구를 입주자대표회의가 묵살했기 때문이다. 용역업체와 한 합의도 무시됐다. 한씨는 "내년 최저임금제 적용을 앞두고 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비 증가를 이유로 경비원 수를 줄일 수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법 사각지대에 놓인 감시·단속직 노인노동자

아파트 경비원을 포함하는 감시·단속직 노인노동자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감시·단속직은 감시 업무와 단속적(일이 계속 이어지지 않아, 대기시간이 많은 업무)인 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합쳐 부르는 개념이다. 아파트와 건물 경비원, 학교 야간 당직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감시·단속직 노동자들은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다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휴게·휴일에 대한 규정은 이들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주 40시간으로 제한된 법정근로시간 규정은 이들에게 의미가 없다.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 유급 휴일이 주어져야 한다는 조항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노동자들은 합법적으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다. 정부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최저임금에서 10%를 뺀 금액을 감시·단속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으로 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32조 1항은 '국가는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경비원들에게는 다른 나라 얘기인 셈이다.

최저임금제는 당초 2012년부터 감시·단속직 노동자에게 적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11년 아파트 입주민들이 관리비 부담 증가를 이유로 반대해, 유예됐다. 일부 아파트단지는 최저임금제가 적용되면 경비원을 줄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탓에, 경비원들이 최저임금 적용을 유예해달라는 서명을 받기도 했다. 2015년 최저임금제 적용을 앞두고, 벌써부터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은 2014년 3월에 발표한 <서울시 아파트 경비 노동자 노동실태와 개선방안>에서 "'장시간 저임금 노동체계'라는 후진적인 틀을 바꿔야 한다"면서 "입주민의 관리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한시적 제도인 최저임금 감액제도가 최저임금법의 입법 취지를 훼손시키는 만큼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주 평균 61시간 근무... 41.2%가 최저임금 못받아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감시단속직 노인 근로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감시·단속직 노동자의 열악한 고용상황이 드러나 있다. 인권위로부터 연구 용역을 의뢰받은 울산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팀이 지난해 5~7월 경비 업무 등에 종사하는 전국 55세 이상 노인 8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노동자 대부분은 비정규직이었다. 정규직은 유효응답자의 4.6%(40명)에 불과했고, 비정규직은 95.4%인 822명이었다. 더 큰 문제는 노인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면서 간접고용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용역·파견업체에 고용된 노동자의 비율은 82.5%에 달했다. 직접고용은 16.6%에 불과했다. 2004년 노동부의 <감시단속적 근로자 실태조사>에서 직접고용 노동자가 36.1%였던 것을 감안하면, 고용 형태가 더욱 열악해졌다.

이들은 또한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감시·단속직 노동자의 주 평균 근로시간은 61시간이다. 이들 대부분 24시간 맞교대로 휴일 개념 없이 일하고 있다. 이마저도 초과근무를 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전체의 19.1%인 160명에 달했다.

2012년 1월 초등학교 경비원 최아무개씨는 제설작업 등의 이유로 6일 연속 근무한 뒤 숙직실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 "장시간 근무, 야간 근무, 추운 날씨에서의 격한 업무가 뇌·심혈관계 질환을 야기해 최씨가 숨졌다,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감시·단속직 노동자들은 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처럼 1주일에 1일 유급 휴가를 보장받고 있다고 답한 이는 전체의 24.3%에 불과했다. 12.9%는 4주에 하루 휴가가 주어진다고 답했고, "휴가가 없다"고 답한 이들도 15.5%에 달했다.

살인적인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 노동자가 받는 돈은 많지 않다. 전체의 89.7%가 100만 원 이상~150만 원 미만의 월급을 받는다고 답했다. 100만 원 미만의 월급을 받는 이들의 비율은 4.7%였다. 최저임금 적용 유무로 살펴보면, 41.2%는 2013년 최저임금(시간당 4860원)을 밑도는 임금을 받는다고 답했다. 또한 이들 중 신체적 또는 언어·정신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5.0%, 32.5%에 달해, 인권상황이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대 연구팀은 "감시·단속직은 한 번에 18~20시간 근무하고 이같은 근무형태를 주당 3~4회 반복한다, 신체·정신적인 노동 강도가 높다"면서 "최저 근로기준의 적용 제외를 인정하는 것은 구체적인 타당성을 결여한 불합리한 차별이 될 수 있다, 근로기준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그:#한 경비원의 쓸쓸한 죽음, #감시·단속직 노인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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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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