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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탑골할매가 올라오셨다. 그동안 안 보이신다 했더니 올라오신 것이다. 나는 송정댁에서 얻은 도라지 씨 뿌리느라 호미 들고 마당에 앉아서 모처럼 '일모드'로 있던 참이었다.

"있능가 없능가 몰라서 그냥 와봤는디. 없으먼 그냥 무시나 갖다 놀라고 왔는디 여가 있네".
"어서 오셔요."

서로 반가워서 웃는다. 비닐봉지에 들은 무를 낼름 받아서 집안에 갖다놓고 왔더니 탑골댁은 그새 밭고랑에 앉아 호미질을 하셨다.

내가 통 못와봤드만 여가 요렇게 생겼네이
 내가 통 못와봤드만 여가 요렇게 생겼네이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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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동안 바빠서 통 못 와봤드만"

여든하고도 여섯 되신 할매가 바쁘다니 속으로 빙긋빙긋 웃음이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탐골댁은 그동안 어지간히 바쁘셨다. 물가상(강가) 밭 풀매랴  안골 밭 풀매랴 고지박골 밭 풀매랴 바로 우리 집 앞에 있는 텃밭에 감자 심으랴 노인네가 온 동네를 앞으로 뒤로 옆으로 다니면서 일한다고 소문이 다 났다.  

"여가 요렇게 생겼네이" .
"예?"
"풀을 매고 거름을 놔야제 풀우게 거름을 놔놨어. 풀이 거름 다 빨아묵고 좋아서 춤추겄구만"
"누가 거름을 미리 놔노라고 허든디요"

이 귀 얇은 초짜 농사꾼이 누가 한마디 뚱겨주자  그대로 한 것이다.

"누가 그래? 풀좋은 일 시키라고".
"그러네요이. 인자 봉께 풀 키우고 있었네요이"
"그라제. 근디 쇠스랑 좀 가져와 봐 "

나는 얼른 뛰어가서  쇠스랑을 가져왔다.

"그거 아닌디"

또 얼른 뛰어가서 이번에는 있는 대로 쇠스랑 비슷한 것을 다 가져왔다.

"그것은 갈퀴고. 쇠스랑이 없구만.  아저씨가 우리 집 얼른 가서 쇠스랑 좀 가져와."

마당 한쪽에서 달아내기를 하던 남편이 붙들렸다.

"어떻게 생긴 줄 알아야 가져오지요."
"요렇게 발이 세 개여. 우리 집 화장실 열면 그 안에 걸렸어." 

남편이 진짜 쇠스랑을 가져오자 탑골할매가 쿵쿵 땅을 파서 풀을 뒤집어엎었다.

"제가 하께요"

막상 내가 쇠스랑을 휘둘러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요렇게 해놓고 호미로 풀을 두들겨서 흙을 털어야 해."

쑥도 풀은 풀이라 죄다 뽑아버린다. 이제 올라오는 쑥이 아직 귀하고 아깝다. 국도 끓여먹고 쑥버무리도 만들고 싶다. 나는 호미를 놓고 칼을 들고 앉아 쑥을 캤다.  

"풀매랑께 쑥캐고 있네. 조금 있으면 주체를 못 헐 것인디. 요렇게 뿌랑구까정 다 뽑아부러야제 안 그러면 거름 우게서 시퍼렇게 춤 출것이여."

흙속에 박힌 쑥 뿌리들이 길기도 하다. 인정 사정 없이 뽑아내던 탑골할매가 뿌리를 들고,

"쑥이 나 미워허겄네."

하고 웃는다. 풀이 없어진 고랑이 말끔해졌다.

"인자 잘 됐구만. 거름하고 흙하고 잘 섞였어. 이렇게 해노면 인자 뭣을 심어도 좋제. 여기다 비닐을 씌워 노면 풀 안 나고 좋은디"
"뭣으로 덮어 노까요."
"덮어놓기는 좋아해. 저 아래 밭도 거름 허쳐놨당가 "
"예."
"내가 헌 쇠스랑 빌려 주께 내일 아래 밭도 이렇게 해."

탑골할매가  숙제까지 내주신다.

"그나저나 어째 그리 바쁘셨다요?"
"풀매로 댕겼어. 풀을 매놔야 뭣을 허더라도 헌께. 아래께 아들이 와서 보고 뭐라고 할 줄 알았더니 암말로 안하데."   

하지마시란 일을 해놓고 아들한테 야단 듣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듯 웃는다. 이럴 땐 마치 부모 몰래 장난친 아이 같다. 자식이야 누구나 어머니가 일 같은 것은 하지 말고 그저 편안히 계시기룰 바랄 것이다.

쇠스랑으로 풀을 뒤집어 엎으신다.
 쇠스랑으로 풀을 뒤집어 엎으신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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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귀촌 , #섬진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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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에서 텃밭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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