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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아빠, 요즘 학교에서 전화 오면 무서워!"

아내가 최근 들어 나에게 자주하는 말이다.

오늘 저녁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궁시렁댄다.

"제발 학교에서 전화 안 왔으면 좋겠어."
"왜?"

내가 물었다.

"서동이가 학교에 적응을 제대로 못하나봐. 오늘도 학교 선생님 전화 왔는데 글을 잘 모른다고 30분이나 통화했어. 어찌나 민망하고 회사 직원들에게 눈치가 보이는지..."

난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맞벌이 부부이긴 한데 아무래도 집안일은 아내에게 집중되어 있다. 아침에 첫째 놈 학교에 데려다 주고, 다시 집에 와서 둘째 놈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출근을 한다. 회사일도 바쁘고 한데 계속 학교에서 전화가 오니 안 받을 수도 없고. 또 한 번 전화 받으면 이삼십 분은 기본으로 흘러간다. 오죽 눈치가 보일까?

게다가 퇴근하면 태권도장에서 애들 데리고 집으로 온다. 두 놈 목욕 다 시키고 밥해서 먹이고 설거지 한 후에야 고단한 몸을 씻을 수 있다. 그러니 몸은 피곤한데 자꾸 학교에서 속 썩이는 아들레미 전화 오면 그 스트레스 알 만하다.

오늘도 학교에 보내며 긴장한다. 어떤 전화로 우릴 힘들게 할까?
▲ 초등학교 입학한 첫째 오늘도 학교에 보내며 긴장한다. 어떤 전화로 우릴 힘들게 할까?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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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한 첫날, 우리 부부의 가슴을 들었다 내려놓았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날 직장에 있는 내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서동아빠 빨리 학교에 가봐, 서동이가 사라졌대. 1학년 교실에도 없고 돌봄 교실에도 안왔대."

놀란 마음을 쓸어안고 급히 차를 몰아 엑셀레이터를 밟아댔다.

급 주차 후 초등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건 뭔가?

"서동아~"

이놈이 글쎄 학교 정문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서동아! 여기서 뭐해?"

태연히 아들놈이 그런다.

"태권도 사범님 기다려요."

놀란 마음 쓸어내리고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서동아, 지금은 태권도장 가는 시간이 아니고 먼저 돌봄 교실로 가야 해. 그리고 방과 후 수업하다가 다시 돌봄 교실로 간 후에, 선생님이 집에 가라고 하면 그때 운동장에서 태권도 사범님이 기다리고 계실거야."

차근차근 설명 후, 아들놈을 돌봄 교실로 데려다주고는 애엄마한테 걱정 말라 전화해 줬다. 이 사건 후에 그 주간은 내내 나와 아내가 번갈아가며 학교에 나왔다. 수업 후 돌봄 교실 이동과 방과 후 수업 이동을 손수 데려다주며 교육을 시켰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아들레미 때문에 까맣게 타들어 가는 듯 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금쪽같은 아들놈을 잃어버릴 뻔 했으니. 아내는 나보다 몇 배 더 놀랐을 거다.

그 다음 주엔 이놈이 글쎄, 월요일엔 책가방을 학교에 놓고 왔다. 화요일엔 축구화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

수요일엔? 이빨이 깨졌다. 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아내는 부랴부랴 직장을 나와 학교로 향했다. 입 안에 피가 철철 흐르고 이빨이 깨져 있었다.

"친구랑 부딪혔는데, 친구 머리랑 서동이 이빨하고 부딪힌 것 같아요. 빨리 병원에 가보세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치과로 가서 보니 나중에 치아가 변색될 수 있단다. 그래도 큰 사고는 아니니 안심은 했다만 하루가 멀다 하고 일이 생기는 바람에 아내는 무척 힘들어 한다. 집안 사정상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럴 때마다 사무실을 비워야 하니 동료들에게 눈치가 이만저만 보이는 게 아닐 게다.

한 대 콱! 쥐어 박고 싶다. 내 여자 힘들게 하지 말라고~
▲ 머리핀을 꽂아 봤다. 한 대 콱! 쥐어 박고 싶다. 내 여자 힘들게 하지 말라고~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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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오늘 선생님과 통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동이가 글쎄, 선생님이 글을 읽어보라고 했는데."

"근데?"

내가 물었다.

"글쎄 이러더래."

아내가 한숨을 푹 쉬더니 이야기한다.

서동 왈,

"선생님! 전 글자 읽을 줄 몰라요. 더하기 빼기도 모르고요. 그림만 그리면 안 될까요?"

이러더란다. 내 참.

선생님 "서동이가 글자를 몰라서 수업 진행이 안 되네요. 덧셈 뺄셈도 모르고요 집에서 신경 좀 쓰셔야 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아, 서동이 글자 읽을 줄 알아요"라고 말한다.

선생님 왈,

"그럼 서동이가 일부러 못 읽는 다고 한 겁니까?"

당황한 아내,
"아, 그게 아니고요. 서동이가 좀 수줍음도 많이 타고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주저리주저리"

30분을 담임선생님과 통화했단다. 선생님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일은 안하고 전화기 붙잡고 30분을 그러고 있으니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아들아! 학교는 유치원과 많이 다르단다
▲ 첫째 서동이, 둘째 효동이 아들아! 학교는 유치원과 많이 다르단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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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놈이 아직 유치원과 학교를 구분하지 못하나보다. 장난쳐도 농담해도 마냥 웃으며 다 들어줄 것 같은 유치원 선생님으로 보였을까? 이제 엄연히 초등학교와 유치원은 다른데…….

앞으로 또 어떤 사고를 칠까? 벌써부터 긴장감이 돈다. 아내는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냅다 학교로 달려가야 할 일이 걱정이다. 이달 말경에 있을 학부모 면담에는 남편인 내가 가기로 했다. 되도록이면 아내가 힘들지 않게 많이 도와주지도 못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해줘야지.

실은 나도 걱정이다. 낮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올까봐. 그럼 또 학교로 달려가야 하니까 말이다.

나중에 아내가 한마디 한다.

"나 전화번호 바꿀까?"


태그:#초등학교 입학, #돌봄교실, #방과후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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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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