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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이란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의 줄임말로 청소년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게임이다.
 ‘롤’이란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의 줄임말로 청소년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게임이다.
ⓒ 리그오브레전드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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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찮게 포털 실시간 상위 검색어 순위에서 '롤 패치'라는 단어를 본 적이 있으리라. '롤'(LoL)이라는 말이 게임과 관련돼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남자 청소년들 사이에서 '롤'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오죽하면 '악마의 게임'이라는 별칭까지 붙었을까.

요즘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게임 '롤'에 빠진 두 아들 때문에 내가 다 고민이다. '롤'이란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의 줄임말로 동시 접속자 수가 300만 명에 이르는 게임이다.

'롤'은 주로 다섯 명씩 한 팀을 이뤄 상대방의 건물을 부수는 실시간 전투 게임이다. 협동을 통한 팀플레이가 관건이다. 유저는 우선 100여 명의 영웅 캐릭터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해 게임에 참여한다. 자신과 한 팀을 이룬 다섯 명과 함께 상대방이 택한 다섯 명의 영웅과 겨뤄 상대방의 '넥서스(본부)'를 먼저 파괴하는 쪽이 승리한다.

'롤'은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장시간을 투자해 레벨을 쌓고 힘을 키우는 리니지 등 롤플레잉 게임과는 확연히 다른 게임이다. 일단 자신이 고른 영웅의 조작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에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온라인게임과 PC방 게임 점유율이 50%에 육박한다고 한다.

'롤'에 빠진 두 아들, 혼내보지만 그때뿐

'롤'게임에 몰입중인 아이들은 밥을 컴퓨터 앞에서 먹기도 하지만 식음 전폐까지 불사한다.
 '롤'게임에 몰입중인 아이들은 밥을 컴퓨터 앞에서 먹기도 하지만 식음 전폐까지 불사한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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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지난 겨울방학.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인 두 아들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졌다. 언제부터인가 컴퓨터에 한 번 앉았다 하면 두 시간은 기본이었다. 용변은 참고 참고 또 참았다가 나오기 일보 직전에 처리하곤 했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게임을 하는 두 아이를 보는 아내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보다 못한 내가 "컴퓨터 좀 끄라"는 소리를 열 번 넘게 해도 아이들은 "끄겠다!"하고는 "10분만요…" "이 판만 끝내고요…"라며 게임 시간을 늘렸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제자리였다. 알고 보니 이미 우리집 두 아들도 '롤'에 중독돼 있었던 것이다.

두 아들에게 '롤'은 단순히 '하는 게임' 수준을 넘어 '보는 게임'이기도 하다. 일상형·참여형 중독 증세를 유발하게 하는 게임이랄까. 이제 두 아들은 실제 게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케이블TV에 나오는 프로 선수들의 게임 중계까지 놓치지 않고 챙겨본다. 대기업 마크가 크게 박힌 제복을 입은 프로선수들의 플레이에 두 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게 끝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리라. 또 하나의 일정(?)이 두 아들을 기다린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기 직전, 스마트폰으로 아O리카TV의 게임방송까지 놓치지 않는다. '롤'이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빼앗아 간 듯하다. 아이들은 '롤'과 혼연일체가 됐다. 어떠한 문명의 이기도 감히 이 수준의 완벽한 '일심동체'를 꿈꾸지 못했으리라.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려 있는 '롤' 관련 아이콘을 모조리 삭제하고 싶고, 컴퓨터 랜 선을 가위로 잘라버리고 싶고, 스마트폰을 박살 내버리고 싶은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온종일 방에서 '롤'을 하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 방송을 챙겨보는 두 아들을 혼내보지만 딱 그때뿐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피해 몰래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아…, 이를 어쩐다. '롤'이 무슨 게임인지도 모르니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나. 게임 진행법과 규칙을 알아보기로 했다. 어느 정도 알아야 아들과 대화가 될 것이고, 또 주도권까지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곧바로 전문적인 게임 용어들을 인터넷으로 뒤져 보고, '롤' 공식 누리집에도 부지런히 들락날락 거려봤다. 하지만 실제 게임을 해보지 않았으니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결국 나는 주위에 알고 지내는 고등학생 페이스북 친구들의 게임 지식을 빌려보기로 했다. 게임을 즐기는 고등학생 2~3학년 페이스북 친구들의 순수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이 지면에 공개하고자 한다.

"새벽까지 '롤' 하는 친구들, 눈가엔 다크서클이..."

'롤'게임을 즐겨하는 고등학생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그들의 순수한 경험담을 대화로 들어 봤다.
 '롤'게임을 즐겨하는 고등학생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그들의 순수한 경험담을 대화로 들어 봤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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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의 기본적인 룰은 5대5 팀플레이다. 페이스북 친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게이머가 원하는 역할 군(탑, 미드, 정글, 원딜, 서포트)을 선택한 뒤 조건에 맞는 팀원들을 찾아 함께 플레이를 하는 방식이란다.

게임 속 세 갈래 길 가운데 '탑'은 위쪽, '미드'는 중간, '원딜' '서포트'는 아래쪽, '정글'은 맵에 있는 몬스터를 잡는단다. 그리고 상대편 '넥서스'를 먼저 부수면 이기는 것이란다. '롤'은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라 팀원의 협동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게임과 달리 유저는 더욱 집중하게 된다. 페이스북 친구들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방식의 게임 형식이라 더 중독성이 강하다'고 했다.

남자 중·고생의 경우 50% 이상이 이 게임을 한다고 전해진다. 남학생들 사이에서 '롤'을 하지 않으면 은근히 따돌림을 받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학생들 사이에서 '롤'을 하지 않으면 일상적인 대화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단다. 하지만 한번 우연히 맛을 들이고 나면,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또, '롤'에는 랭크제도(브론즈-실버-골드-플래티넘-다이아-챌린저 순)가 있기에 랭크를 올리고 싶다면 무조건 게임을 많이 해야 한다. 심한 경우 학교까지 빠지면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페이스북 친구 강철이(가명)의 말이다.

"음…. 저희 반이 34명인데 절반 이상이 '롤'을 해요. '롤' 하는 친구들 몇 명은 새벽까지 롤을 해서 눈가에 다크서클이 가득해요."

유저 레벨은 30까지인데, 승률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유저들은 점수 관리를 잘해야 한다. '롤' 한 판은 최소 20분, 기본이 40분이라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1시간이 넘을 때도 있다고 한다.

중간에 끊을 수 없는 '롤'... 그래서 애들이 꿈쩍 안 했구나

'롤'은 중간에 게임을 끊을 수 없다고 한다. 혹시라도 일찍 게임을 끝내려면 항복을 해야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항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게임 시작 20분부터 항복이 가능하고, 항복하려는 팀 과반수가 항복해야 게임이 끝난다.

"브론즈(랭크)의 경우 5티어부터 1까지 레벨이 있는데 1티어에서 승급 전을 치러 세 번 중 두 번 이상 이겨야 실버(랭크)로 올라가요. 그러니까 브론즈 1티어 정도 레벨을 빼고는 모두 무시당한다고 봐야겠죠? 그러니 랭크를 올리려면 매일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죠. '롤'에 중독된 아이들은 헤어나올 수 없어요. 연속으로 게임을 져봐야 손을 떼지, 아마 갑자기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걸요?"

혹시라도 전원을 끄거나 강제종료를 하게 돼 나가기라도 한다면 욕먹는 것은 둘째 치고 함께 참여한 팀원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을 각오까지 해야 한단다. 어디 그뿐인가. 무단 강제 종료 시에는 벌점을 받고 레벨 하락은 물론, 신고를 당할 경우 계정 정지까지 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컴퓨터 좀 꺼라"라는 내 말에 두 아들이 눈도 끔쩍 안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롤' 때문에 잔뜩 화가 나 있던 내가 컴퓨터 전원을 끄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중간에 컴퓨터를 꺼버렸다면 이후 상황은 불 보듯 뻔하지 않았을까.

"부모들이 끄라고 해도 자꾸 '5분만…' '5분만…' 하는 이유는 끝날 것 같은 상황인데 안 끝나서 그래요. 저도 끝날 것 같은 게임이 늘어져서 한 시간 넘게 해본 적이 많아요. 일단 무조건 아이들 컴퓨터를 꺼버리거나 컴퓨터 사용 시간을 확 줄이면 안 돼요.

조금씩 줄일 수 없는 게임이라서 '무조건 금지'라고 하면 반발심만 더 생기니까요. 대화와 타협으로 푸세요. 힘들겠지만 강제적으로 끊게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아들이 날뛸 수도 있어요. '롤'은 결코 시간을 제한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에요. 한 판에 40~50분 잡아먹고, 그 판에서 지면 이기고 싶고, 그 판을 이기면 또 이기고 싶은 게…. 정말 그만 하기가 힘들어요. 그러다 보면 하루 다 지나죠. 자연히 공부랑 멀어지고…. 답이 없죠."

'롤'에 중독되면 밥도 컴퓨터 앞에서 먹고, 케이블TV나 스마트폰으로 게임 중계 영상을 하나하나 챙겨보게 된다. 이런 풍경은 이제 흔한 일이 돼버렸다. 그런데 아이들은 게임을 하는 것도 부족해 왜 게임 영상을 보는 것에도 열광하는 걸까.

"부족한 걸 더 배우기 위해 중계방송 봐요"

한 고등학생 페이스북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당구를 배우는 이치와 비슷하단다. 계속 보면 공이 다니는 길이 보이고 당구대 각 계산이 느는 것처럼, 고수들의 게임 장면을 보면서 콘트롤이나 스킬을 연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양민이(가명)의 말이다.

"공부하는 학생이 인터넷 강의를 왜 들을까요? 부족한 것을 더 배우기 위해서죠. '롤'도 마찬가지예요."

그렇다. 두 아들이 롤을 하지 말아야 할 당연한(?) 이유는 없다. 또 사실상 유명무실한 '셧다운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차피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든 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그리고 학교생활에 피해를 끼칠 정도라면 지양해야 하는 게 옳다.

'롤 중독 문제'가 발생하게 된 빌미를 제공한 어른들의 책임도 크다. 기업에서 프로게임을 후원하는 것도 모자라 게임방송을 내보내기 때문이다. 현재 '롤' 프로구단을 운영하는 국내 기업은 대기업을 포함해 10개사에 이른다. 이 기업들은 청소년들이 병들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기업논리 때문에 '롤 중독'을 방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롤' 공부까지 했는데, 아이들 반응이... 슬프다

아이들은 '롤'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용돈을 모두 투자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롤'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용돈을 모두 투자하기도 한다.
ⓒ 이메일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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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5000원만 있으면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 하나 먹고 PC방에서 '롤' 한 판 하면 딱 맞는다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온라인 게임에 성인 인증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강구하는 건 어떨까.

그나저나 '롤' 게임 플레이 방법과 중독 원인 등을 공부하고 두 아들과 대화를 하려던 내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어쭙잖은 게임 용어를 들먹이며 아는 척하는 내게 돌아온 아들의 대답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어? 어디서 그런 쓸데없는 것을 듣고 왔어요? 왜요? 더욱 계획적으로 감시하려고요?"

아, 중학생 아들의 '롤과의 전쟁'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언제까지 이 전쟁을 치러야 하나. 걱정이다.


태그:#리그오브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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