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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5일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강제 성노예, 이른바 위안부(enforced sexual slavery, so called comfort women)'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해 일본 정부에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과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 장관이 유엔에서 일본을 특정해 거론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직접 제기한 것은 1945년 유엔 창설 이후 처음이다.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2007년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사건이다. 종전 후 반세기 동안 음지에 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양지로 이끌어낸 일등공신 셋을 꼽는다면, 용기 있는 증언을 한 위안부 피해자들과 그 증언을 정리하고 사료를 발굴한 한·일의 시민·연구 단체, 그리고 아베 신조로 대표되는 일본의 극우성향 정치인들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쟁점화한 3대 일등공신

적게는 5만, 많게는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사건이 공론화된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외국인 피해자들에 이어 1991년 8월 14일에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고백한 첫 기자회견을 했다. 그 이후 정부에 등록한 위안부 피해자는 237명, 그중 182명이 사망해 현재 생존자는 55명이다. 북한에서도 218명의 피해자가 조사되었으나 생존자는 한국보다 더 소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은 아베 1차 내각(2006. 9~2007. 9) 시절인 2007년 7월 31일이다. 아베는 그해 3월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 군이나 관헌(官憲)의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기술은 없었다"는 공식 견해를 발표해 주변국의 반발을 초래했다.

아베는 이후 미국을 방문해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결의안을 막는 데 실패했다. 아베 2차 내각 출범 후인 지난 1월 미국 상·하원은 2007년에 채택한 '위안부 결의안'의 준수를 촉구하는 세출법안을 사상 처음으로 통과시켰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 세계화'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존재 자체로 일본군의 '범죄 증거'인 피해자들이 고령과 질병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이 문제를 인류 양심의 문제로 쟁점화한 데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채록-정리하고 관련 사료를 발굴해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 같은 한-일 시민-연구 단체의 힘이 컸다. 특히 '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는 일본의 각종 도서관에 소장된 자료를 발굴-조사해 '관련 증거가 없다'는 논리로 책임을 회피해온 일본 정부를 20년 넘게 압박해 왔다.

'위안부' 연구의 선구자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주오(中央)대 교수 등 연구자들과 시민들이 '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이하 자료센터)를 설립한 것은 1993년 4월이다. '자료센터' 산하의 '종군위안부' 연구분회는 그해 6월 1개월 동안 연구자와 자원봉사자를 투입해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 소장된 자료를 조사했다. 그 조사결과를 정리한 것이 그해 7월 26일에 발표한 '자료조사 제1차 발표'이다. 이 발표 등을 근거로 일본 정부는 그해 8월 일본군 위안소 설치 및 위안부 강제징집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자료센터'는 "민간차원에서 진상규명을 중심으로 전쟁책임 문제, 전후보상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연구수행을 목적"(창간사)으로 1993년 가을에 계간 <戰爭責任硏究>를 창간해 2013년말 현재 81호를 발간했다. <전쟁책임연구>가 창간된 시기는 '위안부' 문제를 껄끄러워하는 새로운 일본 우파가 점차 조직화되던 때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자료센터'는 계간지를 통해 '위안부'에대한 가해자 증언과 공문서 발굴 등을 통해 일본 사회가 껄끄러워하는 전쟁책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왔다.

20년에 걸친 '위안부' 연구성과와 계간 <전쟁책임연구>

사실 '위안부' 문제는 그 제도를 만든 주체가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었던 만큼, 관련 자료는 일본에 가장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외에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 중국 등 연합국과 범죄 발생 지역의 국가가 소장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 식민지라는 특성상 '위안부'가 가장 많았고 사회적 관심도 가장 뜨거웠지만, 피해자 증언 채록을 제외한 자료 발굴 같은 연구 성과는 미비했다. 일본 정부나 우파가 내세우는 반박논리도 '정부나 군이 강제연행을 직접 지시한 증거(공문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위안부' 등 전쟁책임 문제를 다루는 연구자들이 포진된 '자료센터'가 관련 자료(증거) 발굴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이를테면, <전쟁책임연구> 창간호에 실린 요시미 교수(현 '자료센터' 공동대표)의 '육군 중앙과 종군위안부 정책'은 일본 정부가 1993년에 공개한 자료 중 하나인 긴바라 세츠조의 '육군성 업무일지 적록(摘錄)'을 분석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일본 육군성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군위안소를 계획하고 기도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적록'(요점을 추린 기록)에 따르면, 당시 중국 광둥에 주류하던 제21군은 성병 예방을 위해 병사 100명당 1명의 비율로 위안대를 '수입'했고, 그 수는 총 1천 명이었다. 이에 따른 요시미 교수의 계산법에 따르면, 전시에 일본군이 동원한 위안부 수는 최대 20만 명이다.

이 '적록'의 해제로 현지 주둔군과 육군 중앙까지도 군위안소의 설치에 직접 나섰고, 육군성의 지도와 통제 하에 군위안소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군위안소 설치 및 운영의 3대 동기·목적인 일본군의 강간 방지, 성병 예방, 성적 위안 제공에 있었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네덜란드령 인도(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여성을 강제징집하려는 육군성의 계획도 확인되었다. 이밖에 가사하라 도쿠시의 '중국 전선의 일본군 성범죄'(13호), 가와다 후미코의 '중국 전범 공술서에 나타난 일본군의 성폭력'(23호), '도쿄재판에서 심판받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56호) 등을 통해서도 일본군 범죄와 '위안부' 제도 운영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군 '위안부' 연구>(동북아역사재단, 2011)는 계간 <전쟁책임연구>에 실린 이런 20년에 걸친 발굴-연구 성과 중에서 '위안부' 관련 논문을 주제별로 선별해 번역한 것이다. 주제는 크게 1)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연구성과·배경·관점 등 포괄적 연구 2)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수립·운영과 여성들의 피해 내용 3)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법적 운동과 국제사회의 동향으로 분류돼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범죄'에 대한 국제적 프로파일러의 보고인 셈이다.

그런데도 아베 정권이 들어선 뒤 일본 사회에서는 "강제연행은 없었다" "위안부의 증언은 날조" "고노담화는 철회해야 한다" 등 사실과 전혀 다른 담론과 언동이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에 일본의 시민단체인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는 지난해 10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도쿄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된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가 되는 문서 530쪽을 공개해 이를 반박했다. 한국 언론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일본군 장교 5명을 강간죄 등으로 유죄판결한 재판기록 등이 담긴 문서가 처음 공개된 것이라며 크게 보도했다.

이 책은 '양치기 중년' 아베에게 바치는 '빅엿'

<일본의 군 '위안부' 연구>(동북아역사재단, 2011)는 계간 <전쟁책임연구>에 실린 이런 20년에 걸친 발굴-연구 성과 중에서 ‘위안부’ 관련 논문을 주제별로 선별해 번역한 것이다.
 <일본의 군 '위안부' 연구>(동북아역사재단, 2011)는 계간 <전쟁책임연구>에 실린 이런 20년에 걸친 발굴-연구 성과 중에서 ‘위안부’ 관련 논문을 주제별로 선별해 번역한 것이다.
ⓒ 동북아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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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해 10월 추가로 공개된 증거는 이미 <일본의 군 '위안부' 연구>에서 해제되어 기록된 것이다. 다만 1차 사료가 지난해 추가로 공개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서 전범으로 심판받은 위안소 경영자의 사례는 이 책에 이른바 '사쿠라 클럽' 사건 판결문 사본(498쪽)과 함께 정리돼 있다. 그밖에도 이 책에는 네덜란드가 제출한 인도네시아 4곳의 사례, 프랑스 검찰이 제출한 베트남 랑손 사례, 중국 검찰이 제출한 중국 구이린(桂林)의 사례 등을 담은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 속기록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네덜란드령 보르네오섬에서 벌어진 잔학행위와 관련된 전범재판 기록을 보면, 오카지마 도시키 해군대위 등 3명이 민간인 1천여 명에 대한 불법체포 및 처형죄와 강제매춘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또 다른 8명은 징역 10~20년형을 선고받은 판결속기록이 있다. 이 증거 서류는 검찰 측이 제출해 법정에서 수리된 것이며 도쿄대학 사회과학연구소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것에서 수록한 것이다. 일본의 전범을 심판한 도쿄재판에서 검찰진을 구성한 각국 정부기관이 작성한 '공문서'들이다.

1960년대에 '무즙 파동'이란 게 있다. 당시 중학교 입시에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출제되어 '무즙'을 선택한 학생들이 오답 처리되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열성 부모들은 아예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학교 앞에서 "엿 먹어라" 시위를 벌였다. <일본의 군 '위안부' 연구>는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외치는 '양치기 중년' 아베에게 바치는 '빅엿'이다.


아베의 거짓말 입증 자료는 널려있다
'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의 '정의를 위한 투쟁'
'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http://space.geocities.jp/japanwarres/)는 지난해 8월 일본 정치인과 우익들의 왜곡과 망언에 맞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정의를 위한 투쟁(Fight for Justice), 일본군 위안부―망각에 대한 저항, 미래의 책임'이라는 긴 이름을 붙인 새로운 웹사이트(http://fightforjustice.info/)를 개설했다.
 '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http://space.geocities.jp/japanwarres/)는 지난해 8월 일본 정치인과 우익들의 왜곡과 망언에 맞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정의를 위한 투쟁(Fight for Justice), 일본군 위안부―망각에 대한 저항, 미래의 책임'이라는 긴 이름을 붙인 새로운 웹사이트(http://fightforjustice.info/)를 개설했다.
ⓒ Fight for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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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의 홈페이지(http://space.geocities.jp/japanwarres/). 자료센터는 지난해 8월 일본 정치인과 우익들의 왜곡과 망언에 맞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는 새로운 웹사이트(http://fightforjustice.info/)를 개설했다.
 '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의 홈페이지(http://space.geocities.jp/japanwarres/). 자료센터는 지난해 8월 일본 정치인과 우익들의 왜곡과 망언에 맞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는 새로운 웹사이트(http://fightforjustice.info/)를 개설했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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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http://space.geocities.jp/japanwarres/)는 지난해 8월 일본 정치인과 우익들의 왜곡과 망언에 맞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는 새로운 웹사이트(http://fightforjustice.info/)를 개설했다. '위안부' 문제의 사실관계를 특화한 이 웹사이트에는 '정의를 위한 투쟁(Fight for Justice), 일본군 위안부―망각에 대한 저항, 미래의 책임'이라는 긴 제목이 붙어있다. 

지난 20년 동안 계간 <전쟁책임연구>를 통해 '위안부' 문제의 진상 규명과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자료센터'가 시대 변화에 맞추어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리서치 액션 센터'와 함께 이 웹사이트를 만든 목적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관한 역사적 사실 관계와 책임 소재를 자료와 증언 등 명확한 출처․근거를 가지고 제공하는 것"에 있다. 이런 긴 제목을 붙인 것도 "'위안부'문제의 사실을 왜곡하고 망각을 강요하는 세력에게 저항하고, 동시에 사실을 미래에 전달하는 책임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현재 '자료센터'의 홈페이지에는 '고노 담화의 훼손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긴급 원내집회 공지문이 걸려 있다. 7일 오후 2~4시 일본 중의원 제1의원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리는 원내집회는 ▲일본 NHK 회장 발언의 문제점과 고노 담화(요시미 요시아키) ▲'위안부' 강제를 드러낸 새 자료와 고노 담화(하야시 히로시) ▲전 '위안부' 16명의 증언 '검증'을 검증한다(니시노 루미코) 순으로 진행된다.

'행동하는 양심 지식인들의 결사체'인 '자료센터'가 존재하는 한 아베의 거짓말 입증 자료는 널려 있는 셈이다.



태그:#위안부, #아베 신조, #전쟁책임 자료센터, #고노 담화, #도쿄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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