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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을 지나던 시민들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전시하는 친일 예술인의 행적들에 관한 내용을 보고 있다.
 청계광장을 지나던 시민들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전시하는 친일 예술인의 행적들에 관한 내용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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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95주년 기념 대학생 친일청산 페스티벌이 지난 1일 서울 청계광장 일대에서 열렸다. 대안대학 <청춘의 지성>이 주관하고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민족문제연구소·역사정의실천연대 등이 후원한 이날 행사는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이어졌다.

청계광장에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러 부스가 들어섰다. 행사 진행자들은 시민들에게 친일청산 문제 및 일본의 군국주의 야욕을 규탄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광장 가운데에 친일 문인·예술인들의 행적이 담긴 홍보물을 전시했다.

<마쓰이 오장 송가(松井伍長 送歌)>란 시를 지어 카미가제 특공대로 끌려가는 조선인을 찬미한 서정주, 조선의 동포들에게 "우리 모든 물건을 바치자, 우리 모든 땀을 바치자, 우리 모든 피를 바치자"며 생명까지 "우리 임금님(일본 천황)께"(이광수, <모든 것을 바치리>) 바치자고 했던 이광수, 여성도 일본 제국을 위해 "생명을 폭탄으로 바꿔 전쟁 마당에 쓸모있게 던집시다"라고 했던 모윤숙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예술인들의 친일 행적이 생생히 전시되고 있었다.

어린이가 그린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림

한 어린이가 그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주제의 그림
 한 어린이가 그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주제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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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부스를 마주보는 부스에서는 이들과 정반대의 삶을 산 인물들에 대한 전시가 이뤄졌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쳤음에도 잊힌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적힌 판넬이 부스 안쪽에 걸렸다. 해방 이후 중도파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으로 신민족주의를 주창한 민세 안재홍(1891~1965), 1919년 3월의 투쟁에 천도교 지도자로서 참가했다가 옥중 순국한 양한묵(1862~1919), 해외 잠입한 독립군에게 독립자금을 제공하면서 국내에서는 아동복지사업에 헌신한 어윤희(1881~1961) 등의 행적이 눈길을 끌었다.

위안부 피해자 여성이 스스로 약을 먹고 목숨을 끊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어린이가 그린 그림이다.
▲ 스스로 목숨을 끊는 위안부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여성이 스스로 약을 먹고 목숨을 끊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어린이가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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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 부스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잊지 말자는 주제로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책이 전시됐다. 고사리손으로 할머니들이 당시 겪었던 고난에 대해 잘 표현한 그림들이 많았다. 여러 그림 중 충격적인 그림이 있었다. 한 여성이 어두침침한 방에서 약을 먹는 것을 표현한 그림이었다. 일본군에 괴롭힘당하고 수모를 못 견뎌 자결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림들을 찬찬히 보던 여학생들은 이 그림을 보고 매우 놀랐다. 어린이임에도 당시 그녀들의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아는 듯했다. 

대학생 민족문제연구모임 부스에서는 'OX 퀴즈'와 함께 친일문제 전문가 정운현씨의<친일, 청산되지 못한 역사> 할인 판매가 이뤄졌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OX 퀴즈에 참여했다. 한 어린이는 '친일 청산이란 친일파들을 모두 죽이자는 것이다'란 문제에 주저없이 O를 택해 오답처리됐다. 어린이의 친일파에 대한 분노가 커 보였다. 몇몇 어린이들은 '애국가는 친일파가 만들었다'는 문제에 정답인 O를 택해 주변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는 일제 말기 <만주 환상곡> 등의 음악을 작곡하면서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

애국가를 친일파가 만들었단 걸 아는 아이들

친일청산 1000인 퍼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이 개그 프로그램의 대사를 패러디한 '일본 사죄하고 가실께요. 느낌 아니까~'란 글귀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 중이다.
▲ 일본 사죄하고 가실께요. 느낌 아니까~ 친일청산 1000인 퍼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이 개그 프로그램의 대사를 패러디한 '일본 사죄하고 가실께요. 느낌 아니까~'란 글귀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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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친일청산 1000인 퍼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온 수백 명의 학생들이 청계광장에 진입했다. 행진은 청계광장을 출발해 일본 대사관, 인사동, 탑골공원, 보신각을 거쳐 다시 청계광장으로 돌아왔다. 학생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공식사죄, 법적배상하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반대합니다!' '한미일 군사동맹 대신 동북아 평화협력을!'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삼삼오오 광장에 들어섰다. 오후 5시 20분경부터는 친일청산에 관한 내용의 마당극이 청계광장 소라탑 앞에서 열렸다.

오후 6시부터 있었던 '자주평화 국민촛불' 집회에서는 지난 2월 초 '도쿄원정대' 소속으로 일본 도쿄에 다녀온 여학생 두 명의 발언이 있었다. 첫 발언자는 이번에 갓 대학 입학한 새내기였다. 우리 역사에 애착이 많아서 친일청산 페스티벌 기획단에도 참가 의사를 밝혔다는 그녀는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봤을 때는 괜히 울컥했고, 서대문형무소에 갔을 때는 독립운동가들이 당시 겪었을 고난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생이 많은 힘을 가진 건 아니다. 돈도 없고 정치인처럼 직접적 영향력을 끼칠 수도 없다, 그러나 작게나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면 조금씩이나마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고 언급해 참가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우경화된 일본'의 단면을 보고 왔다"

친일청산 1000인 퍼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이 친일 문제에 관한 주제의 마당극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친일청산 1000인 퍼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이 친일 문제에 관한 주제의 마당극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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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발언자는 '도쿄원정대' 대장이었던 강혜진씨였다. 그녀는 과거사에 대해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로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갈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당했던 일들에 대해 언급했다.

"다녀와서 생각해 보니, 야스쿠니 신사의 지붕도 못 보게 한 일본 경찰들과, 우리들에게 달려든 우익들을 막아주기는커녕 우리 대학생들의 사지를 끌고 나가는 일본 경찰들을 보며, 우경화돼 있는 나라,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단면적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략) '우리는 아시아의 평화를 원합니다'란 내용의 플래카드 펼치는 것도 막고, <바위처럼>이나 <레 미제라블> 노래로 이뤄진 플래시몹을 신주쿠 거리에서 하려는 것도 모두 막는 모습을 보며, 우경화가 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란 것을 느꼈다."

강씨는 마지막으로 "언제까지고 3월 1일에 같은 구호(일본의 사죄 촉구 구호)를 외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라도 새내기도, 졸업생도, 우리 모두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친일 청산'을 목청껏 외치는 사람들. 이역만리 일본 땅 한복판에서 수모를 겪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수많은 학생들. 그들이 있기에 희망이 보인다. 3월 1일의 친일청산 페스티벌 행사는 그러한 모든 이들의 의지, 그리고 결코 작지 않은 힘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태그:#친일청산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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