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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별종이 아니라 새소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남에게 전하고 싶은 모든 시민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시민기자' 또는 '뉴스게릴라'라고 부릅니다. 지난 1월 초부터 7주간 <오마이뉴스>기자들과 함께 땀 흘렸던 19기 인턴기자들이 다시 '뉴스게릴라'가 되어 각자 묵직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인턴기자가 뛰어든 세상' 시리즈를 통해 조심스레 세상을 향해 노크해봅니다. [편집자말]
게스트하우스 내 서울 지도에 관광지 설명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게스트하우스 내 서울 지도에 관광지 설명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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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명륜2가 성균관대학교 정문 근방의 한 건물. 이른 아침부터 카메라를 목에 걸거나 손에 지도를 쥐고 있는 외국인이 들락날락한다. 그들을 따라 실내로 들어가면 접수대가 보인다. 그 뒤 벽면에는 여러 나라 지폐가 걸려 있다. 지폐에는 각 나라의 언어로 간단한 인사가 쓰여 있다. 고개를 돌리자 큰 식탁 주변으로 외국인들이 옹기종기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고소한 토스트와 구수한 커피 향이 식욕을 자극한다.

"Hi, good morning.(안녕! 좋은 아침)" 

파란 눈의 외국인 남성이 인사를 건넨다. 중·고등·대학 영어 시간에 배운 대로 착실하게 "Hi"라고 인사한다. '혹시 더 말을 걸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다행히 그는 내 옆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주변에서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여러 나라 언어가 들린다. 언어뿐만 아니라 행동도 다양하다. 부스스한 머리로 인사하는 사람부터 씻고 나오는 사람, 식사하는 사람, TV를 보는 사람 등 각자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아침부터 분주한 이곳은 외국인 전용 게스트 하우스다.

외국인이 한국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는 진짜 이유는? 

쭈뼛 쭈뼛거리며 앉아 있던 중 한국말이 들렸다. 게스트 하우스 사장 유민용(33)씨가 웃으며 나타났다. 21일부터 3일 동안의 고용주이기도 하다. 시설 소개 및 기자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객실은 9개 정도이고 평균 10명 정도의 외국인이 머물고 있다. 객실료는 1만 6000원~4만 원 사이다. 6명이 한 방에서 묵는 도미토리 형식은 1인당 1만 6000원이고, 1인용 침대가 있는 방은 2만 7000원, 2인용 침대가 있는 방은 4만 원이다.

외국인 전용 도심민박(아래 외국인 게스트 하우스)은 2011년 외국인 관광 활성을 위해 허용됐다. 도심에서 민박업을 할 수 없지만, 전체면적 230㎡미만 주택시설에 한해 영업이 가능하다. 현재 서울에는 400여 개의 외국인 게스트 하우스가 영업 중이다.

외국인 게스트 하우스는 외국인만 묵을 수 있고 내국인은 숙박 불가다. 가끔 TV 프로그램을 보고 찾아오거나 외국인 게스트 하우스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내국인이 숙박예약을 하지만, 정중하게 설명하고 돌려보낸다.

"외국인에게 한국은 메이저 관광지는 아니었어요. 일본이나 중국을 들렀다가 잠시 거쳐 가는 곳이었죠. 2011년부터 엔고현상이 일고, 일본에서 방사능 오염 사건 이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죠. 케이 팝(K-pop)의 인기 영향도 크죠." 

유 사장은 "게스트 하우스에 묶는 여행객의 국적만큼 한국을 찾는 이유도 다양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한국을 체험하러 온 사람, 한국친구가 있어 만나러 온 사람, 교환학생으로 와서 학기 시작 전 여행을 하는 사람,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눈을 보러 온 사람 등 다양하다.

이들의 방문 유형도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처음 한국에 방문하는 사람, 첫 방문 이후 다시 와서 1~3개월 정도 머무르는 사람, 아예 한국에 눌러앉은 사람이다. 유 사장은 "다양한 부류와 방문 이유가 있지만,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며 "게스트 하우스의 자유분방하고 서로 쉽게 어울릴 수 있는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국적과 목적의 사람이 모인 곳 

오전 11시, 손님들이 체크아웃하면 청소가 시작된다. 손님이 묵은 방의 베개 덮개와 침대 시트, 이불을 수거해 빨래하고 방을 청소한다. 복도와 주방을 쓸고 닦으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청소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옆에서 한 동양인이 딸기를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중국에서 온 켄(Ken·24)씨가 기자에게 딸기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켄은 한국에 10일 동안 머물 예정이다. 그런데 다른 외국인처럼 관광하지 않는다. 오전 11시가 되면 매일 조계사에 들러 기도를 한다. 그가 조계사를 찾는 이유는 자아를 찾기 위해서다. 청소년기에 방황하던 중 불교를 접하고 삶이 변한 그는 달라이라마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그에게 한국 불교와 중국 불교의 차이점을 묻자 "다른 건 없다"라며 "누구나 가슴속에 부처가 있다. 끊임없이 노력하면 당신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화 도중 TV에서 탤런트 김우빈씨가 나오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빠져든다. 그녀는 한국 아이돌 가수에 대한 정보를 기자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 심오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한류를 사랑하는 또래의 여성 한 명이 앉아 있었다.

후식으로 나온 생강 향 진한 수정과를 "맛있다"라며 잘 마시는 외국인들.
 후식으로 나온 생강 향 진한 수정과를 "맛있다"라며 잘 마시는 외국인들.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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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끝나자 유 사장이 점심을 초대했다. 이날은 유 사장 생일이어서 친분이 있는 손님들이 모였다. 식사는 유 사장 부부와 브릿(Britt·35·미국), 보디(Bodey·31·호주), 스가와라 유키코(Sugawara Ukiko·28)씨와 함께 했다.

게스트 하우스 식당에 정갈하게 한식이 차려졌다. 잡채, 생선조림, 무 쌈과 김치, 샐러드 등 반찬과 잡곡밥, 미역국이 먹음직스럽게 놓였다. 외국인들이지만 모두 잘 먹는다. 심지어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도 자연스럽게 마신다.

모두 한국에서 생활 한 지 2년 이상 됐다. 이들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한국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말은 잘 못하지만, 식습관은 한국인과 다를 바 없다.

보디는 한국에 온 지 2년 됐다.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세계여행 중이다. "삶의 변화가 필요했는데 대학 재학 중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며 세계여행을 떠난 친구가 생각나 여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는 2012년 7월부터 히치하이크와 배를 타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거쳐 5개월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보디(Bodey.31.호주)씨가 세계여행 중 자신이 타고 다닌 요트 사진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보디(Bodey.31.호주)씨가 세계여행 중 자신이 타고 다닌 요트 사진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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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에서 유치원 영어교사로 일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면서 호주로 돌아가기 전까지 게스트 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치찌개와 고추장 불고기도 척척 잘 먹는 그는 "한국 사람이 친절하고 역사가 흥미롭다"고 말한다. 그는 "여행할 때 매일 관광지나 명소를 가는 것은 좋지 않다, 그 나라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함께 사는 게 제일 좋은 여행"이라며 배낭여행의 소소한 팁을 알려줬다.

"아사다 마오 싫어하는 한국인, 스포츠는 있는 그대로 봤으면..." 

거실에 모여 TV를 보는데 소치 동계올림픽 방송이 한창이었다. '피겨여왕'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재방송하고 있었다. 그때 일본에서 온 유키코가 "한국 사람들은 왜 아사다 마오(일본 피겨 선수)를 싫어해요?"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유키코는 2004년에 관광차 한국에 왔다가 잠깐 한국을 경험하고 2011년에 다시 왔다. 한국 대학에서 한국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다. 그가 어렸을 땐, 매년 8월 15일에 과거 일본의 전쟁종료 선언과 원폭 피해, 일본이 주변 나라에 끼친 피해 등을 TV로 시청했다.

"일본 사람들은 역사를 잘 몰라요. 가끔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면 일본사람이 나쁜 행동을 한 것이 나왔는데, 충격이었어요. 슬프고 미안했어요. 그때부터 역사에 관심 두게 됐어요. 그래서 한국의 역사가 궁금해 공부하게 됐어요. 양쪽 역사를 균형 있게 배워야 하잖아요." 

아사다 마오에 대한 이야기가 한·일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그가 가장 속상한 건 양국의 스포츠 경기에 꼭 역사 문제가 엮이는 것이다. 그는 "야구나 축구, 올림픽을 하면 한·일 전에서 항상 역사문제를 다룬 양국의 응원 문구가 보인다"며 "스포츠는 있는 그대로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양국의 언론이 너무 경쟁구도를 만들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하면 한국이 따뜻하게 받아줬으면 좋겠다"며 훈훈하게 대화를 마칠 무렵, TV 뉴스에선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와 한국의 '독도는 우리 땅' 행사 모습이 차례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매일 새로운 이곳, 외국인 게스트 하우스 

유민용 사장의 부인인 오명선(33, 제일 오른쪽)씨는 "정든 사람을 보내는 건 아직도 힘들다"라고 말한다.
 유민용 사장의 부인인 오명선(33, 제일 오른쪽)씨는 "정든 사람을 보내는 건 아직도 힘들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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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피부색, 언어는 달라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금세 친해진다. 저마다 여행의 목적은 달라도 게스트 하우스 안에서 밥과 술을 마시며 정을 나눈다. 복잡한 국가 문제 대신 인간 대 인간으로의 만남이다.

헤어짐도 깔끔하다. 서로 악수하고 껴안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방명록과 함께 찍은 사진에는 추억이 기록돼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객이 머물고 떠난 자리에는 또 누군가가 들어온다. 조용할 날 없는 이곳은 외국인 게스트 하우스다.

덧붙이는 글 | 안형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19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외국인, #게스트하우스, #배낭여행, #김연아, #아사다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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