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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호주 브리즈번에서 한인 세 명이 잇따라 사망했다. 사망자 셋 모두 한국인 '워홀러'였다. '워홀러'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등 외국에 와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망 사유는 모두 달랐지만, 사망 사건이 잇따르면서 호주 워킹홀리데이 실태가 이슈화됐다. 영어권 나라 중 캐나다·뉴질랜드·아일랜드 등도 우리나라와 청년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고 있지만, 호주는 비자 발급 절차가 간단해 한국청년들이 특히 많이 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멜버른(Melbourne)에 와 있지만 소위 '워홀러'라고 불리는 한국인을 만난 적이 없었다. 회사 동료, 프로젝트를 통해 만났던 한국 출신들은 국적이 호주나 뉴질랜드여서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었다. 살던 동네에도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시티'(City)라고 부르는 시내 중심가에 나갔을 때, 그곳을 동네 주민처럼 다니면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20대 초반 사람들을 보면 '워홀러인가 보다' 하고 추측하는 게 전부였다. 진짜배기 한국인 워홀러가 호주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기자말

농장 셰어하우스의 앞마당이다. 이 광경을 본 인터넷 설치 기사는 "빠질 것 같아, 어떻게 이렇게 하고 살아?"(It's about to sink. How can you live like this?)라고 말했다.
 농장 셰어하우스의 앞마당이다. 이 광경을 본 인터넷 설치 기사는 "빠질 것 같아, 어떻게 이렇게 하고 살아?"(It's about to sink. How can you live like this?)라고 말했다.
ⓒ 이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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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6일 호주 공휴일인 박싱데이(Boxing day) 저녁,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을 안은 채 나와 내 친언니가 일하기로 한 딸기농장의 셰어하우스(Share house)로 향했다(관련기사 : 알바 월급 450만원? '복권'에 당첨됐다). 그곳에 도착하자 우리는 새로운 의문이 생겨났다.

셰어하우스의 앞마당과 뒷마당은 풀이 무릎까지 올라올 만큼 무성했다. 보통 호주의 가정집은 집에 잔디 깎는 기계를 두고 직접 손보거나, 주기적으로 가드너(Gardener)를 불러 마당을 관리한다. 하지만 이 셰어하우스는 그런 관리 따위는 없었다. 이 집에서 지내기 시작한 지 2주일 가량 됐을 때, 호주인 인터넷 설치 기사가 셰어하우스에 방문했다. 그는 "왜 잔디를 안 깎아요? 보아하니 세입자 같은데, 집주인이 보면 화내겠어요, 이상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방 세 칸 있는 집에 식구는 12명

12명이 살고 있는 집 현관이다. 신발장에는 수납 공간이 부족했다.
 12명이 살고 있는 집 현관이다. 신발장에는 수납 공간이 부족했다.
ⓒ 이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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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야 하는 셰어하우스는 오래된 주택 건물이었다. 집에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구식 전화선에 변환기를 연결해야만 했다. 숙소 입구에는 서른 켤레 정도의 신발들이 널려 있었다.

이 작은 집에 한국인 10명, 대만인 2명이 살고 있었다. 우리와 통화한 슈퍼바이저는 거실, 주방, 화장실 하나, 샤워실 하나 그리고 방 세 개인 집을 "15명이 살 집"으로 소개했다. 우리는 이런 집에 도착해 슈퍼바이저로부터 단촐한 간이영수증을 받았다. 계약서 같은 것은 없었다.

싱글 침대 하나와 장롱 하나를 넣으면 꽉 찰 것 같은 크기의 방은 3~4인실로 활용되고 있었다. 세 방에는 각각 남자 3명, 여자 3명, 여자 4명이 살았다. 나머지 2명은? 거실에서 지냈다. 거실 중간에 책장을 놓고 이를 칸막이 삼아 방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칸막이 반대쪽에 "3명을 더 받을 예정"이란다. 25평형 아파트 정도 되는 곳에 12명이 있으니 집은 늘 복작복작했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여행객이다 보니 한 사람당 짐은 캐리어 두 개에 배낭 하나가 기본이었다. 이 집에 산 지 2주 정도 됐다는 최지민(18)씨는 "매일 수련회에 와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침대 사용'은 특별한 혜택?

남자 3인실의 모습이다. 방바닥에 침낭 세 개를 깔면 가득 차는 크기다.
 남자 3인실의 모습이다. 방바닥에 침낭 세 개를 깔면 가득 차는 크기다.
ⓒ 이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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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는 매트리스 같은 필수품은 없었다. 하지만, 셰어하우스 거실에는 새 식구를 더 받기 위한 매트리스가 준비돼 있었다. "왜 다른 방에는 매트리스를 주지 않느냐"는 질문에 슈퍼바이저는 이렇게 답했다.

"거실은 공용 공간이잖아요. 그러니 이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다른 혜택을 줘야지요."

물론 이 집에 딸린 세 방은 싱글용 매트리스 서너 개를 넣고 지낼 크기도 되지 않았다. 방은 카펫으로 된 방바닥 위에 행거 하나와 4단짜리 옷 수납장만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우리가 지낼 방에 들어갔다. 4인실로 분류된 방이었다. 먼저 들어와 있던 두 여성 워커(노동자)의 커다란 이민 가방 두 개를 비롯한 짐들이 한쪽 벽면 전체에 널려 있었다. 우리 짐까지 두고 잘 생각을 하니…, 옆으로 '나란히' 자야겠다는 견적이 나왔다. 입실 생활을 하는 호주 집에 보일러가 있을 리는 만무했고, 방에는 냉난방 시설이 따로 없었다. 작동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거실에 있는 난로가 이 집 난방 시설의 전부였다.

입식으로 지어진 집에서 우리는 좌식 또는 와식 생활을 했다. 침대·책상·의자 등 가구가 없기에 자연스럽게 바닥에 붙어 지냈다. 컴퓨터를 할 때도 우리는 나란히 바닥에 누웠다. 셰어하우스에 온 지 3일째라는 정희영(21)씨도 "호주에서 침대 없는 집에 처음 살아 본다"면서 "카펫 위에 이불을 깔고 자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새벽에 일을 나가는 여성 워커들이 "너무 추워서 자다가 몇 번이나 깼다"고 하면, 슈퍼바이저는 "뭐가 춥냐"며 핀잔을 줬다.

"친구는 한국인만 데려오세요"

농장 셰어하우스 뒷마당이다. 창고 문짝은 떨어져 있고, 풀은 무성하게 자라있다.
 농장 셰어하우스 뒷마당이다. 창고 문짝은 떨어져 있고, 풀은 무성하게 자라있다.
ⓒ 이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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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지(Aussie, 오스트레일리아인)나 다른 나라 친구들을 데려오시면 안 돼요. 한국인은 괜찮아요."

슈퍼바이저는 친구 초대 허용 기준을 위와 같이 제시했다. 보통 다른 셰어하우스도 게스트(손님) 관련 규정이 계약에 포함된다. 대개 '저녁 O시 이후에는 손님이 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고 갈 수는 없다' 정도로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 셰어하우스에는 인종·국적 제약이 있었다. 슈퍼바이저는 그 이유를 "인스펙션(Inspection, 집주인이 집을 세준 뒤, 세입자가 집을 계약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이 아닌 다른 국적의 친구를 초청했을 때, 셰어하우스 규정보다 많은 인원이 거주하는 것이 신고될 수 있음을 염려한 것이었다.

슈퍼바이저는 "인스펙션 나와서 걸리면 한 사람당 벌금이 1000 호주달러가 넘는다"면서 "예전에 브리즈번에서 어떤 집이 그렇게 되는 걸 봤다, 현지인은 절대 초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원래 12명이 살면 안 되는 집인지 물어봤다. 슈퍼바이저는 "네, 뭐 그런 거죠. 근데 농장 셰어하우스들은 다 그래요"라고 답했다. 슈퍼바이저는 수용 기준을 초과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일의 상황을 염려에 처음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운동화는 차고에 두세요"... 왜?

사람이 적어보이기 위해, 작업할 때 신은 신발은 차고에 보관해야 했다.
 사람이 적어보이기 위해, 작업할 때 신은 신발은 차고에 보관해야 했다.
ⓒ 이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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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마치고 오면 으레 가라지(Garage, 차고) 문을 열어야 했다. 주차 때문이 아니었다. 신발 보관을 위해서였다. 이 셰어하우스에 사는 이들은 일할 때 신은 운동화를 차고에 벗어뒀다. 사는 이가 열두 명이니, 운동화를 비롯해 장화 등 작업용 신발만 열두 켤레. 슈퍼바이저는 "신발이 많으면 사람 많은 집 같아 보인다"며 차고에 신발을 보관할 것을 알렸다. 그에게 '사람이 많다'는 건 숨겨야 할 사실이었다.

세컨드 비자를 따기 위해 농장에 찾아 들어온 워커들은 불법 셰어하우스에서 계약서도 없이 살았다. 농장 셰어하우스라고는 하지만 최소한 인간답게 살 만한 곳이어야 했다.

12명이 좁은 방 세 칸이 있는 집에 살기란 무리였다. 이 집에 사는 사람 중에는 셰어하우스에 대한 정보도 없이 몇백 불을 들여 시드니에서 멜버른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18세 고등학생도 있었다.

이 셰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불법행위에 동참하고 있었다. 이들은 수련회보다도 못한 환경에서 88일을 살아야 했다.


태그:#호주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호주, #워킹홀리데이,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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