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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아시나요>의 명계남
 <은하수를 아시나요>의 명계남
ⓒ 극단 완자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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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무대에서 명계남은 달랐다. 1인 5역을 소화해야 한다. 어느 때에는 비열한 공무원을, 어느 때에는 웃음을 팍팍 제공하는 성적 소수자로, 인신매매범마냥 서커스단으로 팔아치우는 비열한 술집 주인 등을 연기한다. 그런데 한 배우가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배우 명계남이 다양한 캐릭터를 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노력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무대 위에서만 다양한 명계남이 있는 건 아니다. 무대 위에서 외롭고 치열한 연기를 펼치는 명계남이 있다면 다른 한 편으로는 명계남의 연기를 바라보는 관객을 탐색하는 명계남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무대 위에서만큼은 그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연기하고자 하는 명계남을 지난 15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다.

"하루 한 끼 먹고 새벽에 운동하며 오로지 이 연극만" 

<은하수를 아시나요>의 명계남
 <은하수를 아시나요>의 명계남
ⓒ 극단 완자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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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작품을 선택했다. <김종욱 찾기>에서 멀티맨이 1인 22역을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은하수를 아시나요>에서는 의상을 바꿔 입어가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
"한 캐릭터를 15~30분 동안 연기한다. 제가 연기하는 인물들이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인 샘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데 한 몫하는 인물들을 파노라마 식으로 연기한다. 한 사람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연습을 많이 했다.

공무원과 동회 서기 같은 인물들은 샘처럼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도 죽은 사람으로 호적을 처리하고는 재산을 빼앗는다. 보험 회사 지점장은 샘의 신분을 바꿔치기해서 자신의 이득을 챙긴다. 샘은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희생당한다. 극중극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가고자 연출가가 애를 많이 썼다."

- 성적 소수자처럼 보이는 캐릭터, 혹은 마초처럼 터프한 캐릭터 등 다양하게 소화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순수함을 잃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샘에게 술집 주인 살바토레는 '나도 너처럼 험한 세상 살아봤어, 산다는 거 별 거 아냐. 적당히 눈치 보고 힘 있는 쪽에 줄 서며 그렇게 세상 사는 거지, 이름 찾고 정체성을 찾으려고 따지며 산다는 건 인생 사는 걸 통 모르는 거야' 하고 훈수한다.

살바토레는 날개 꺾인 천사 같은 샘을 끝내는 서커스단으로 팔아버리는 데 크게 일조한다. '세상 그렇게 사는 거 아냐'하고 주인공을 훈계하고 조롱하는 악마의 대변자 같은 캐릭터다. 살바토레에게 정감이 간다."

- 요즘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고 들었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일부러 예민한 상태를 만드는 건가.
"40년 동안 연기를 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집중해야 하는 연기는 처음이다. 연출가 선생님(장제훈)이 40년 전에 제게 처음으로 연기를 가르쳐 준 분이다. 그런 연출 선생님과 함께 작업하니 40년 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2시간 동안 운동을 한다. 힘들다. 운동하면서 먹는 걸 조절해야 한다.

서커스장에서 상반신을 적당히 드러내야 한다. 제 나이는 배가 나오는 나이다. 연기를 위해 배가 나오지 않도록 몸을 만들어야 한다. 몸이 가벼워야 오랜 시간을 연기하기 위한 체력 유지에 좋다. 무조건 굶는 건 아니다. 닭가슴살과 야채, 고구마 같은 보충식을 중간에 먹는다. 몇 개월만 더 운동하면 화보를 찍을 만큼 식스팩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웃음)"

<은하수를 아시나요>의 명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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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완자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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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함에 기반을 두어야 하루 한 끼 식사도 가능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닌가.
"예전에는 새벽에 잠을 잤다. <은하수를 아시나요>를 위해 하루 종일 연습했다. 밤 11시까지 연습하면 굉장히 힘들다. 자정이나 새벽 1시에는 꼭 잠을 자아 한다. 덕분에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 대학로 연극들이 날이 가면 갈수록 힘들다.
"연극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힘들다. <은하수를 아시나요>는 단 두 명의 배우만 등장하지만, 보이지 않게 무대 뒤에서 수고하는 스태프가 열 명이다. 스태프는 거의 젊은 배우들이 한다. 하루에도 150여 개의 작품이 대학로에 오른다. 제가 이름이 알려진 것 때문에 선입견으로 바라보고 <은하수를 아시나요>를 오해의 시선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대학로는 마케팅과 홍보 수단이 저열한 연극과 쉬운 코미디가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연극다운 연극을 찾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다. 매체에서도 연극을 소개하는 지면이나 방송 시간대가 예전보다 확실히 줄었다. 연극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홍보하기 위해 포스터를 붙이는 거 자체가 불법이다. 벌금을 물어가면서 포스터를 붙여야 한다. 홍보 수단으로 인터넷과 SNS가 있다고는 하지만, 연극을 찾는 관객에게 얼마나 파급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은하수를 아시나요>는 저와 박윤희 배우처럼 그나마 경력이 있는 배우가 출연해서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젊고 실험성 있는 연극은 수십 편이 올라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다. 좋은 연극을 알릴 방법이 많지 않다. 젊은 배우들을 매체에서 많이 소개해야 한다. 젊은 배우들이 많이 고생한다. 관객이 이들을 예쁘게 보아주셨으면 좋겠다."

- 젊은 배우들이 고생한 것처럼 예전에는 명계남씨도 많은 고생을 했다.
"간혹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젊은 배우들에게 '너희들은 우리처럼 고생해 보지 않았어'라는 말을 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젊은 배우들이 나름대로 '이 막막한 일을 계속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는 게 제 눈에 보인다. 그럼에도 끝까지 버티면 연극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연기를 '업'으로 삼게 된다. 저처럼 영화로 갔다가 다시 연극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연출을 한 김태수님은 삼십 년을 한 눈 팔지 않고 대학로에서 연극으로 버텼다. 그런 분들이 대학로에는 하나 둘이 아니다. 이들이 겪은 시간과 삶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박수갈채를 받고 많은 돈을 버는 일은 아니지만, 연극이라는 소중한 의미를 인생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 왜 연극을 놓지 못하는가.
"TV나 영화는 카메라를 보고 연기한다. 제 연기를 보아야 할 시청자를 보지 못한 채 연기한다. 하지만 연극은 제 연기를 볼 관객을 눈앞에 놓고 연기한다. 이 차이가 크다. 배우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산다. 그런 점에서는 탤런트나 영화배우, 연극배우가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배역의 인물로 산다는 건 흥분을 자아내는 일이다. 하지만 연극은 무대에서 직접 관객을 만나면서 하는 작업이라 굉장한 '떨림'이 있다.

이런 점은 가수도 마찬가지다. 콘서트하면서 관객과 직접 만나는 가수가, 가수의 눈빛과 목소리를 관객이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는 건 음반 작업만 하는 가수라면 경험하지 못할 새로운 경험이다. 이를 기사를 작성하는 일로 풀이해 보자. 기사를 작성할 때에는 이야기를 최대한 진실되게 취재하고 인터뷰이가 취재한 삶이 최대한 지면에 전달되게끔 기사를 작성한다.

하지만 기사를 읽는 독자가 어떤 상태에서 읽을지를 모르고 기사를 만든다. 기사를 읽는 독자의 울림을 인터뷰이는 직접 보지 못한다. 하지만 배우는 연기라는 시추에이션이 관객이라는 수용자를 앞에 놓고 연기한다. 연기 자체가 관객과 만나는 현장에서 이뤄진다."

"제가 정치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발언..."

<은하수를 아시나요>의 명계남
 <은하수를 아시나요>의 명계남
ⓒ 극단 완자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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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일부는 배우 명계남을 보려는 게 아니라 폴리테이너 명계남을 보려고 한다.
"제가 폴리테이너로 비춰져서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암만 애를 써봐야 소용없다. 그럼에도 배우로서의 삶을 다시금 시작했다. 연극을 열심히 보여드리는 수밖에는 없다. 배역을 무대에서 잘 전달한다면 폴리테이너라는 제 이미지를 잊어버리시지 않을까. 폴리테이너로 박혀진 이미지 때문에 개인적으로 당하는 애로점이 있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제가 안고 가야 한다.

제가 정치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발언하고, 좋아하는 정치인에게 박수치고 응원한 게 유명하게 알려졌을 뿐인데... 이는 누구나 술자리에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업인으로서의 저는 배우다. 우리나라에서는 저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옳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유명한 배우가 자신의 정치적인 생각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대통령 선거가 있으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공공연하게 고백하고 지지를 호소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대중 앞에서 좋아하는 정치인을 공개하면 잘못된 일인 것마냥 호도한다. 배우마다 정치적인 견해가 있지만, 많은 이들은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정치적인 견해를 표현하는 배우를 이상하게 보는 게 문제다."


태그:#명계남, #은하수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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