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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결의대회가 열렸다
▲ 국민들께 '엿' 먹이는 대통령 풍자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결의대회가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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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달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통일은 대박" 발언이 화제다. 남북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어쨌든 통일 문제의 중요성을 언급한 건 다행이다. 그러나 2월 12일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고 한다. 이산가족 상봉 역시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일진대, 박근혜 정부는 정작 통일 문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진보진영에 대해서는 '종북'으로 치부해버리고 있다. 그리고 '종북몰이'의 도구로 쓰이는 건 언제나 그랬듯 국가보안법이다.

지난해 12월 1일은 국가보안법 제정 65년이 되는 날이었다. 바로 그 전날인 11월 30일 오후 3시, 서울역 광장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결의대회'가 열렸다. 사회자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수많은 단체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탄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탄압을 당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지금도 가장 많은 인사가 구속되거나 법정에 선 단체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이 질문에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범민련이요!"

1990년 결성된 이래 24년이 흐른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공세에 시달려온 단체. 존재 자체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적을 이롭게 한다'며 부정당하는 단체. 바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아래 범민련)다.

범민련은 1990년 11월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남·북·해외 각지의 동포들이 모여 결성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가속화된 통일운동을 본격적으로 주도할 단체를 만드는 데 진보진영이 뜻을 모은 결과였다. 진보진영 뿐만 아니라 평화민주당 같은 제도권 정당 관계자들도 범민련 결성에 동참했다. 범민련 결성은 남이나 북, 어느 한쪽의 입장에 유리한 통일이 아닌, 남과 북, 해외동포가 모두 참여하는 범민족적인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의 발로였다.

범민련은 결성 직후부터 1999년까지 범민족대회라는 이름의 대규모 행사를 통해 '3자연대'(남과 북, 해외동포 간의 통일을 위한 연대) 강화를 시도했다. 범민족대회는 대회 때마다 10만에서 20만 가까운 사람들이 모일 정도의 대규모 행사였다. 그만큼 당시 통일문제에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는 의미다. 이러한 노력들은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고,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서도 자양분이 됐다.

그러나 범민련이 내세운 '3자연대'는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국가보안법 제8조 회합·통신 등에 대한 조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남북 간에 이뤄지는 민간 교류도 '적과의 소통'으로 여기는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범민련에 대한 정권의 탄압은 사실상 필연이었다.

앞에선 남북기본합의서, 뒤에선 범민련 탄압

1990년 결성 직후부터 노태우 정권은 행동을 개시했다. 범민련을 결성했단 이유로 1990년 11월 30일 범민련 남측대표 조용술, 이해학, 조성우 등을 구속했다. 1991년 1월 24일엔 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원회 결성 건으로 간부 23명 전원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임신 8개월의 임신부도 구속되는 등, 정권의 공격은 인정사정 없었다. 3월엔 당시 준비위원장 문익환 목사도 구속됐다.

이러면서 노태우 정권은 1991년 12월에 북측과의 회담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노태우 정권이 내세운 것은 '창구 단일화', 즉 북한과의 대화는 오직 정부만이 알아서 하겠단 것이었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선 남북 간의 교류·협력 문제에 관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정작 남과 북, 해외 동포 간의 교류·협력을 시도한 범민련에 대해선 엄청난 탄압을 가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였다.

'문민정부'였던 김영삼 정부나, 민주개혁정권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범민련 문제에 있어선 다를 바 없었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 건으로 11월 29일 남측본부 의장단 및 간부 29명을 전격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93년 8월에 이어 또 다시 남측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런 상황은 매년 반복됐다. 거의 해마다 범민족대회 개최 준비 건으로 구속자가 다수 발생했다.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부산본부와 부산민중연대는 지난해 12월 9일 오전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하성원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의 구속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부산본부와 부산민중연대는 지난해 12월 9일 오전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하성원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의 구속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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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1997년 범민련은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분류됐다. 강령에 연방제 통일,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이 들어 있다는 이유였다. 김대중 정부 또한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다음해인 2001년, 8·15 민족통일대축전 관련 건으로 6명의 인사를 구속했다. 이 같은 구속사태는 2003년 노무현 정부 초반까지 이어졌다. 그나마 그 이후로는 구속이나 압수수색 등 직접적인 압력행사는 없었다. 남북 관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운동 단체에 대한 직접적 탄압도 잦아들었다.

다시금 범민련 탄압이 본격화된 건 이명박 정부 들어서였다. 이명박 정부는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 남북 간의 합의를 사실상 폐기처분한 데 이어, 범민련을 비롯한 여러 통일운동 세력에 대해 본격적인 공격을 가했다. 2009년 전국 24곳의 범민련 사무실이 압수수색당했다. 이규재 의장, 이경원 사무처장 등이 전격 구속당했고, 2012년엔 방북 혐의로 노수희 부의장 또한 구속당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에도 아홉 곳의 범민련 사무실이 압수수색당했고, 김을수 의장대행을 비롯한 6명의 인사가 구속당했다. 구속 명분은 '범민련 활동'이었다. 예전처럼 범민족대회 준비 건 같은 직접적인 구실도 아니고, 그저 범민련이라는 '이적단체'에서 활동한다는 이유로 구속 및 압수수색을 마구잡이로 일삼은 것이다.

의장과 사무처장 전원 구속 경험... 간부 구속기간 총 180년

이처럼 범민련 24년의 역사는 그야말로 '시련의 역사'였다. 24년 동안 범민련 역대 의장은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당하고 징역형을 살아야 했다. 사무처장 6명 또한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어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살아야 했다. 역대 구속자는 모두 60여 명. 범민련 간부들의 구속 기간을 합치면 180여 년에 이른다.

이제 정권과 새누리당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범민련 자체를 없애려고 하는 듯하다. 위에서 언급한 지난해 11월 30일 집회에서, 발언자로 나선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2013년 5월 7일,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이른바 '범죄단체 해산법'을 내놨다. 이것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이적단체와 함께 일반형법에 저촉되는 범죄단체들은 판결과 동시에 안전행정부에 의한 강제해산이 가능하게끔 하는 법안"이라 했다.

또한 강제해산 집행 이후엔 해당 단체의 재산은 모두 국가에 귀속된다고 한다. 권 명예회장은 "이것은 반국가단체, 이적단체로 규정된 단체를 일반 범죄단체에 물타기 해서 같이 없애려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처럼 '범죄단체 해산법'은 사실상 범민련 등의 통일운동 단체들을 표적으로 삼은 법이란 논란이 있다.

범민련의 시련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8명의 인사가 구속 중이다. 단일 조직으로는 가장 많은 숫자다. 올 초까지만 해도 10명이었는데 1월 말과 2월 초에 각각 정봉곤 대외협력국장과 김을수 의장대행이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하지만 각각 3년과 4년의 보호관찰을 선고받았다. 지속적인 감시·통제가 이뤄지는 것이다.

법에서 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방통위에 의해 삭제조치 당한 범민련 누리집 '민족의 진로' 게시판
 방통위에 의해 삭제조치 당한 범민련 누리집 '민족의 진로' 게시판
ⓒ 범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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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민련 누리집에 들어가보면 '원문자료실(범민련 남측, 북측, 해외측 자료 원문을 올리던 자료실)'과 '민족의 진로(범민련에서 발간하는 잡지)' 게시판의 자료들이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에 의해 삭제조치를 당했다는 글이 뜬다. 방통위는 해당 자료들이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에 관한 규정'에 저촉된다는 입장이다.

범민련 측은 이에 대해 "'국가보안법이 금지하는 행위'를 판단하는 것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아니라 법원이며, 해당 게시물 중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표현물 또는 행위' 성격이라고 법원이 지적한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범민련 측은 "특정 게시물이 아닌 게시판 전체의 삭제는 법률이 정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란 입장이다. 이처럼 온갖 유·무형의 압력이 범민련을 향해 가해진다.

국가보안법에서 언급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름대로 생각해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것을 반대 측 입장의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질서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표현의 자유를 '찬양·고무죄'란 명목으로 억압하고, 통일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민간 차원의 논의를 규제하는 국가보안법의 존재 자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국가보안법에 의해 가장 큰 탄압을 당해온 범민련 또한 '이적단체'의 멍에에서 벗어나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공론장에서 함께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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