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9개월 동안 남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 안의 승려들. 보드가야는 전 세계 불교 신자들 사이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다. 6년간 고행을 수행하던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 이곳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이다.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 안의 승려들. 보드가야는 전 세계 불교 신자들 사이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다. 6년간 고행을 수행하던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 이곳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이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가이드북이 추천한 숙소는 보드가야의 주요 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각국에서 지어놓은 깨끗하고 웅장한 불교 사원이 자리한 도시 뒤편으로, 씻기지 않은 마을의 얼굴이 가려져 있었다. 판잣집과 구정물, 밭두렁 사이로 어린 염소들이 어지러이 나다니는 좁은 길. 이런 곳에 숙소가 있을까. 얼마간 걸어 마주한 허름한 건물. 간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곳에 찾던 숙소와 같은 '모하메드'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어두컴컴한 호텔 내부에는 14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우리를 한 번 흘끔 쳐다본 아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하던 빗자루질을 계속했다.

"여기 호텔 맞나요?"
"네."
"방 있어요?"


아이는 귀찮다는 듯 잠시 구겨진 눈썹으로 우리를 쳐다보다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대답은 생략하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열쇠를 챙겨왔다.

아이는 1층에 있는 방문 하나를 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벽의 얼룩이 방의 칙칙한 내부를 장식하고 있었다. 아이는 이 방이 묵기에 괜찮은지 어떤지, 우리의 의사 따위는 묻지도 않은 채 열쇠를 주고 나가버렸다. 할 수 없지. 방 한쪽 구석에 짐을 풀었다. 벽에 붙은 모기 30마리가 내 피로 나눌 잔치를 기대하며 환호하는 듯했다.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젯밤 가야의 호텔과 비교하면 이 정도는 천국이다. 밤 12시, 위험하다는 가야의 거리를 걸으며 호텔 여기 저기 문을 두드려 겨우 잘 곳을 찾지 않았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물 냄새 속에서, 바닥인지 침대인지 구별이 안 되는 얼룩과 먼지가 가득한 곳에 내 귀중한 침낭을 더럽히지 않았나. 샤워를 할 수 있는 게 어딘가. 나는 기쁜 마음을 쥐어짜 긍정의 가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보드가야의 숙소가 있던 마을. 판잣집과 구정물, 밭두렁 사이로 어린 염소들이 어지러이 나다니는 좁은 길. 각국에서 지어놓은 깨끗하고 웅장한 불교 사원이 자리한 도시 뒤편으로, 씻기지 않은 마을의 얼굴이 가려져 있는 곳이다.
 보드가야의 숙소가 있던 마을. 판잣집과 구정물, 밭두렁 사이로 어린 염소들이 어지러이 나다니는 좁은 길. 각국에서 지어놓은 깨끗하고 웅장한 불교 사원이 자리한 도시 뒤편으로, 씻기지 않은 마을의 얼굴이 가려져 있는 곳이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도저히 안 돼! 이게 숙소야 뭐야! 당장 짐 싸!"

온수 같은 거야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찔끔찔끔 나오는 물로 겨우 하는 샤워라지만, 샤워실에 잔뜩 들러붙은 모기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모기떼는 내가 물을 뿌리지 않는 매 순간 벽에서 내 몸으로, 철새가 이동하듯 단체로 달려들었다. 10분간의 샤워에 모기 50마리에게 피를 내줘야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밑지는 장사다.

"워워. 진정해 진정. 이제 와서 또 어딜 가겠다는 거야. 3일 내 기차만 타다 여기까지 왔는데, 숙소를 또 어디로 옮겨. 오늘은 대충 쉬자. 오늘만 지내보고 정 못 있겠으면 내일 옮기든가."

열이 뻗쳐 눈에 불을 켜고 소리를 질러대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아챈 더스틴이 나를 진정시켰다.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 벽에 그려진 얼룩을 노려봤다. 그래. 하루만 지내보자.

수줍음을 모르는 작은 아이들이 내 손을 잡고 나를 밭길로 이끈다. 언니에게 내 손을 잠시 맡긴 어린 동생이 노란 꽃을 따서 내 손에 쥐여준다. 고맙다는 말에 아이의 눈이 더 반짝인다.
 수줍음을 모르는 작은 아이들이 내 손을 잡고 나를 밭길로 이끈다. 언니에게 내 손을 잠시 맡긴 어린 동생이 노란 꽃을 따서 내 손에 쥐여준다. 고맙다는 말에 아이의 눈이 더 반짝인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숙소가 있는 마을의 모습. 판잣집 사이로 게으른 개 두 마리가 늘어져 있다. 보드가야는 각국의 불교 순례객들이 몰려드는 인도의 유명 관광지이지만, 관광지 말고는 경제 산업이랄게 없는 외진 시골 마을이다.
 숙소가 있는 마을의 모습. 판잣집 사이로 게으른 개 두 마리가 늘어져 있다. 보드가야는 각국의 불교 순례객들이 몰려드는 인도의 유명 관광지이지만, 관광지 말고는 경제 산업이랄게 없는 외진 시골 마을이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빨래를 하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보드가야는 각국의 불교 순례객들이 몰려드는 인도의 유명 관광지이지만, 관광지 말고는 경제 산업이랄 게 없는 외진 시골 마을이다. 옥상 앞에는 노란 꽃으로 점쳐진 정돈되지 않은 초록색 들판이 펼쳐져 있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 염소들과 여럿이 모여 놀이에 열중인 더러운 옷을 입은 마을 아이들이 들판 위를 장식했다.

숙소 밖으로 나가니, 수줍음을 모르는 작은 아이들이 내 손을 잡고 나를 밭길로 이끈다. 언니에게 내 손을 잠시 맡긴 어린 동생이 노란 꽃을 따서 내 손에 쥐여준다. 고맙다는 말에 아이의 눈이 더 반짝인다. 사원이 몰려있는 도시의 중심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가이드북이 왜 이 숙소를 추천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보드가야, 깨달음의 성지

보드가야는 전 세계 불교 신자들 사이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다. 6년간 고행을 수행하던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 이곳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다. 그 보리수나무는 지금 없지만, 스리랑카 왕국의 도움으로 손자뻘이 되는 보리수나무가 같은 자리를 장식하고 있다.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 폭력적인 군주로 악명이 높다, 불교로 전향해 아시아 곳곳에 불교를 전파한 아소카 왕이 세운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이 보드가야 순례의 중심이다.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 폭력적인 군주로 악명이 높다, 불교로 전향해 아시아 곳곳에 불교를 전파한 아소카 왕이 세운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이 보드가야 순례의 중심이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의 보리수나무. 보드가야는 전 세계 불교 신자들 사이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다. 6년간 고행을 수행하던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 이곳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이다. 그 보리수나무는 지금 없지만, 스리랑카 왕국의 도움으로 손자뻘이 되는 보리수나무가 같은 자리를 장식하고 있다.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의 보리수나무. 보드가야는 전 세계 불교 신자들 사이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다. 6년간 고행을 수행하던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 이곳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이다. 그 보리수나무는 지금 없지만, 스리랑카 왕국의 도움으로 손자뻘이 되는 보리수나무가 같은 자리를 장식하고 있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폭력적인 군주로 악명이 높았지만 불교로 전향해 아시아 곳곳에 불교를 전파한 아소카 왕이 세운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이 보드가야 순례의 중심이다. 마하보디 사원을 중심으로, 태국, 일본, 중국, 티베트, 스리랑카, 한국 등 불교를 국교로 하거나 불교 신자가 많은 나라의 사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순례객과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라, 사원 주위에는 기념품이나 길거리 음식, 과일, 음료수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줄을 잇는다. 승려를 태우고 흙길을 가로지르는 릭샤들도 눈에 띈다. 왠지 모르게 릭샤꾼을 낮춰 보는 것 같은 승려의 태도가 거슬린다. 새로 산 듯한 나이키 신발을 신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승려도 보인다. 승려라고 반드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집착과 소유가 번뇌의 근원이라던 부처의 가르침과 릭샤꾼을 얕보는 승려의 태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티베트 승려들이 신체의 다섯 부분, 즉 양 무릎과 팔꿈치 그리고 이마를 순서대로 땅에 닿게 하여 자신을 무한히 낮추는, 그리하여 부처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오체투지'에 몰두해 있다.
 티베트 승려들이 신체의 다섯 부분, 즉 양 무릎과 팔꿈치 그리고 이마를 순서대로 땅에 닿게 하여 자신을 무한히 낮추는, 그리하여 부처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오체투지'에 몰두해 있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 하얀 승복을 입은 신자들이 한쪽에 모여 경전을 외고 있다.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 하얀 승복을 입은 신자들이 한쪽에 모여 경전을 외고 있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마하보디 사원에 모여든 승려들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자주색의 승려복을 둘러 입은 티베트 승려들이 신체의 다섯 부분, 즉 양 무릎과 팔꿈치 그리고 이마를 순서대로 땅에 닿게 하여 자신을 무한히 낮추는, 그리하여 부처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오체투지'에 몰두해 있다. 하얀 승복을 입은 신자들이 한쪽에 모여 경전을 외고 있다.

불탑 앞에 앉아 정성껏 기도를 올리는 노란색 승복을 입은 승려도 있다. 부처를 힌두교 신의 하나로 여기는, 누구보다 화려한 사리를 걸친 힌두교도들도 모여들어 카메라로 불상을 담아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늘진 명당에 자리 잡고 누워 세상 모르게 낮잠을 청하는 동네 개도 있다.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 한 가운데에서, 그늘진 명당에 자리 잡고 누워 세상 모르게 낮잠을 청하는 동네 개.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 한 가운데에서, 그늘진 명당에 자리 잡고 누워 세상 모르게 낮잠을 청하는 동네 개.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절을 하든, 염불을 외우든, 성스러운 불상을 카메라로 담아내든, 여기 모인 사람들의 목적은 하나다. 부처가 얻었다는 깨달음의 맛을 보고자 함이다. 구경꾼인 동네 개와 나, 더스틴은 제외다.

종교가 없는 더스틴과 나는 모를 일이다. 종교가 있다는 것. 종교를 삶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세상을 더 잘 안다는 뜻일까. 물질 이외의 보이지 않는 세상을 추구한다는 것일까.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것일까. 좀 더 명료한 정신세계를 갖는다는 뜻일까.

내 의지로는 내 삶과 세상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그것을 전담해 줄 더 큰 힘을 믿는다는 뜻일까. 혹은 세속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또 하나의 방식일 뿐일까. 종교가 자본인지, 자본이 종교인지. 종교와 자본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함께 쥐고 흐르는 세상이다. 같은 기독교인이라 해도, 같은 불교 신자라고 해도, 저마다 다른 종교에 대한 그림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에 모여든 승려들. 종교가 있다는 것. 종교를 삶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세상을 더 잘 안다는 뜻일까. 물질 이외의 보이지 않는 세상을 추구한다는 것일까.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것일까. 좀 더 명료한 정신세계를 갖는다는 뜻일까.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에 모여든 승려들. 종교가 있다는 것. 종교를 삶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세상을 더 잘 안다는 뜻일까. 물질 이외의 보이지 않는 세상을 추구한다는 것일까.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것일까. 좀 더 명료한 정신세계를 갖는다는 뜻일까.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채식 식당에서 놀랍도록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육식에 익숙한 육신의 배고픈 밤이 두려워 바나나를 조금 사기로 했다.

"10루피? 하우 매니? (10루피에 몇 개예요?)"

작은 꼬마가 주인장인 노점상에 잠시 멈췄다. 6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꼬마가 나를 올려다보더니 작은 손가락 세 개를 내밀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쓰리 바나나! (바나나 세 개요!)"

작은 손이 건네준 든든한 바나나 한 봉지를 들고, 어둠이 내리깐 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염소와 함께 뛰어놀던 아이들도 가족 품으로 돌아갔는지, 판잣집 이곳저곳에 붉은 전구가 켜져 있다. 소박한 저녁 식사를 하는 판잣집 안의 가족들의 저녁이 평화로워 보인다.

더러운 옷을 입은 아이들. 더러운지도 모르고 목이 말라 길가의 구정물을 손으로 떠서 먹는 아이들. 염소와 닭과 오리에 섞여 사는 가난하고 소박한 마을 사람들. 바나나를 파는 6살짜리 꼬마. 지금 이들을 보는 나의 마음에 이는 것은 동정심이 아니다. 갖지 못한 자들을 동정하는 건, 너무 많은 것을 가졌기에 번뇌하는 나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불행해지는 건,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갖지 못했다고, 더 가져야 한다고 욕망을 부추기는 타인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드가야 스리랑카 사원 내부. 갖지 못한 자들을 동정하는 건, 너무 많은 것을 가졌기에 번뇌하는 나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불행해지는 건,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갖지 못했다고, 더 가져야 한다고 욕망을 부추기는 타인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드가야 스리랑카 사원 내부. 갖지 못한 자들을 동정하는 건, 너무 많은 것을 가졌기에 번뇌하는 나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불행해지는 건,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갖지 못했다고, 더 가져야 한다고 욕망을 부추기는 타인 때문일지도 모른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한밤중의 모기 대학살

온몸을 들었다 놨다 들썩이는 밤 버스에서도, 귀를 쫑긋 세운 쥐 세 마리가 나를 내려다보는 기차역 대기실에서도 잘만 자는 나지만, 모기가 있는 곳에서만큼은 절대로 잠을 청할 수 없다.

침대 위, 의자 위로 올라서서 두 시간여 동안 모기 예순다섯 마리 정도를 대학살 했지만, 아직 눈에 보이는 것만 40여 마리 정도 되는 것 같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곳에서, 살육만큼은 자제하고 싶으나 그냥 있다간 피를 두 컵 가득 빨아 먹히고 흡혈귀가 될 판이다.

"도저히 더는 못하겠어. 침낭 안에 몸을 숨기고 자봐."

모기 50여 마리를 학살한 더스틴은 진이 빠졌는지 침낭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피곤으로 축 처진 몸의 느낌을 보아 하니, 나 역시 모기 따위가 물든 말든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 침낭의 지퍼를 목 위에까지 올렸다. 단숨에 실패. 침낭 밖으로 찔끔 내민 얼굴이라도 뜯어 먹기 위해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모기 덕분에,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모기를 쫓으며 밤을 지새웠다.

보드가야 불교사원 내부. 부처를 힌두교 신의 하나로 여기는, 누구보다 화려한 사리를 걸친 힌두교도들도 모여들어 카메라로 불상을 담아둔다.
 보드가야 불교사원 내부. 부처를 힌두교 신의 하나로 여기는, 누구보다 화려한 사리를 걸친 힌두교도들도 모여들어 카메라로 불상을 담아둔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더스틴은 잘만 잔다. 기차간에서도, 버스에서도 한숨도 자지 못하던 민감한 인간이 모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잘만 잔다. 얄미운 놈. 버스가 내 몸을 흔들어대든 말든, 쥐가 우리를 공격하든 말든 세상만사를 더스틴에게 맡기고 쿨쿨 잘만 자던 나를 바라보던 더스틴의 속내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더스틴이 누운 침대 위로 창문 밖에서 들어온 도마뱀 한 마리가 벽을 장식한다. 도마뱀이 자기 머리맡에 있는지도 모르고 잘도 잔다. 나쁜 인간. 얄미운 인간. 나도 자고 싶다 이 저주받을 모기들아!

"한숨도 못 잔 거야?"

아침 7시. 더스틴이 상쾌하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나는 퀭한 눈으로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니 어제 우리를 맞은 남자아이는 보이지 않고 한 여자아이가 서 있다. 

"여기 매니저예요?"

여자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남자아이를 부르러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이 덜 깬 남자아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머리를 긁적이며 밖으로 나왔다. 생각해 보니 아직 이른 시간이다. 한숨도 못 잔 탓에 화가 잔뜩 나서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아이의 잠을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해요. 제가 잠을 깨웠나요?"

잠을 깨운 걸 뻔히 알면서 미안함을 조금 무마해보고자 한 소리였지만, 뾰로통한 아이의 성질만 더 돋울 뿐이다.

"예스!"

아이는 뭐 그런 질문이 다 있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화났다 이거지. 그렇다 한들 모기와의 사투 덕에 한숨도 자지 못한 나의 짜증과 비할 수 있어? 나는 질세라 얼굴을 구기고 불평을 늘어놨다.

"모기가 너무 많아서 단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50마리는 넘게 죽였지만, 화수분처럼 계속 나온단 말이에요. 무슨 방법이 없나요? 모기가 있는 방에서 며칠을 묵을 순 없어요."
"모기가 없는 방은 다 차고 없어요."

그럼 우리에게 준 방이 모기방이었단 말이냐!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지만 아이의 잠을 깨운 죄가 있으니 진정하기로 했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아이는 무엇이든 다 있는 비밀의 작은 방으로 다시 들어가더니, 모기향을 두 개 건네주었다. 모기향이 있었단 말인가. 모기가 많은 방인 줄 알면서 모기향을 이제 주는 거란 말인가. 모기에게 빼앗기고 겨우 남은 피가 끓어 올랐지만, 꾹 누르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 내부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 내부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근 보름 중에 제일 잘 잔 거 같아."

모기와의 사투로 한숨 두숨 자다 깨기를 반복한 나와 달리, 더스틴은 간만에 깊고 상쾌한 잠을 청했나 보다.

"모기에 안 물렸단 말이야? 왜 나만 무는 거지?"
"응, 나는 별로 안 물린 거 같은데…."

…. 라고 말하는 더스틴의 얼굴과 팔이 울긋불긋하다. 더스틴의 몸에 난 모기 자국을 세어 보니 무려 90방이 넘는다. 모기에 잘 물리지 않는 게 아니라, 모기에 물린 곳이 많이 간지럽지 않을 뿐이다.

보드가야 사원 앞의 동승
 보드가야 사원 앞의 동승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 기도하는 승려들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 기도하는 승려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5일간 한적한 보드가야에 머물다, 다시 기차를 타기 위해 가야로 향했다. 2명 정원의 오토 릭샤는 우리를 포함한 10명의 승객을 덕지덕지 붙이고 길을 가로질렀다. 앞에 탄 사람들 틈새로 보이는 거리에는 느린 소들과 빠른 오토 릭샤들이 되지도 않는 경쟁을 하며 바삐 지나간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도 지나간다.

시멘트 바닥. 먼지 냄새. 안내 방송. 조악한 간식거리. 부처의 마을을 떠나 익숙한 기차역 풍경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새벽 1시. 한 인도 청년이 기타를 꺼내 연주한다. 음악이 있으니 가야역도 꽤 낭만적이다. 텁텁한 공기와 차가운 시멘트벽에 색이 칠해졌다.

새벽 3시.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도착한 파트나역에는 짐을 이고 진 깡마른 사람들의 물결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어두운 기차 안에는 좌석은 물론이고 서 있는 자리까지 꽉 차있다.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들. 이 많은 짐을 이고,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마하보디 사원만큼이나 성스러운 모습들. 소박하고 솔직한 사람들. 가난한 마을의 풍경과 혼란스러운 길바닥.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세상의 온갖 고통이 숨 쉬는 마을. 기차역 대기실의 가식 없는 음악, 불결한 기차역과 노동자로 가득 찬 기차 안. 종교가 없는 나에겐, 이 모든 여행길이 순례길이다.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의 밤 풍경. 얼룩처럼 보이는 점들은 모기떼이다.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의 밤 풍경. 얼룩처럼 보이는 점들은 모기떼이다.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태그:#보드가야 , #싯다르타, #부다, #보리수나무, #인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