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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악법 때문에 한 푼의 지원금도 못 받고 한평생 산 독립후손들이 수천”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정계로 선생의 손주 정종국 정씨는 “악법 때문에 한 푼의 지원금도 못 받고 한평생 산 독립후손들이 수천”이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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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와 광복회는 왜 멀쩡한 광복회관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다고 발표했을까, 그것도 친일파 환수재산 450억 원으로 말이다, 웃기는 거다, 지금도 노구의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은 수십 년째 가난과 함께 살고 있다, 말도 안 된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정계로 선생의 손주 정종국(57)씨의 말이다. 그와의 만남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맞은편 광복회관 인근 카페에서 진행됐다. 정씨는 "악법 때문에 한 푼의 지원금도 못 받고 한평생 산 독립후손들이 수천"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2005년 12월 노무현 정권 때 제정된 '친일파 재산환수법'을 언급했다. "온 국민의 열망으로 어떻게 환수한 돈인데 멀쩡한 광복회관을 부수고 다시 지으려 하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보훈처는 귀속재산 450억 원으로 13층짜리 광복회 건물을 새로 짓는다는 입장이다. 이곳은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위한 공간, 독립 전시관 등이 설치될 계획이다.

"보훈처와 광복회, '광복회보' 보낸 것 말고 뭘 했나?"

정씨의 할아버님과 그 형제들 세분 모두 독립운동하다 옥살이를 했다. 그 후 중국으로 망명, 할아버님만 살아남아 고향에 돌아왔다. 정씨 자신만이 유일하게 남은 손주다. 그는 이어 국가보훈처장에게 발급받은 '독립유공자유족증'을 보여주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다. 정종국씨는 "긴 설명이 필요하다"며 답하기를 꺼려했다. 다시 한 번 물었다.

"국민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 보훈제도는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채웠다, 1962년 4월 '국가유공자 및 월남귀순자 특별 원호법(이하 원호법)'이 제정될 때, 하부 조항으로 '독립유공자 처우'를 삽입한 거다, 말 그대로 '덤'으로 끼워 넣었다, 그전까진 1945년 해방 후부터 17년 동안 독립유공자 관련 법도 없었다, 말 그대로 독립유공자와 후손을 위한 국가적 조치가 아무것도 없었던 거다."

그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1973년 박정희 유신시절, 유공자의 '손자녀' 1인까지 지급하도록 돼 있던 연금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망한 독립유공자의 '자녀'까지로 지급대상을 축소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김구나 신익희 선생의 자녀들, 일제시대와 6·25동란을 거치며 사망한 유공자의 손자녀들은 제외된 거다.

실제 해방 후 17년 동안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1963년 발표된 원호법도 유신시대인 1973년 개정 이후 대상이 대폭 축소됐다. 정씨처럼 독립유공자의 증손인 경우, 유족증이 있어도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현재 1300여 명 유족들이 이에 해당된다.

정씨는 "이래서 광복회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친일파 환수자금으로 광복회관을 신축하고 여기서 나온 임대료로 독립유공자 유족들을 돕겠다고 하는데, 지난 반세기 유족들에게 한 달에 한 번 '광복회보' 보낸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것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광복회가 유족들을 위해 더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36억 들여 개보수한 건물을 왜 부수나?"

"978년 세워진 10층 건물이지만 이미 2005년 36억원 이상 들어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 “36억 들여 개보수한 멀쩡한 건물을 왜 부수나?” "978년 세워진 10층 건물이지만 이미 2005년 36억원 이상 들어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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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지어진 광복회관은 광복회와 보훈처가 공동으로 사용해왔다. 문제는 지난달 보훈처가 세종시로 옮기면서 발생했다. 보훈처가 광복회에 지급하던 연간 10억 이상의 임차료가 갑자기 끊겨버렸다. 정씨는 "광복회가 친일파 환수재산 450억을 꺼내들어 멀쩡한 건물 부수고 국민들 상대로 임대장사하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부분을 조목조목 강조하며 말했다. "2006년부터 조성한 친일파 환수재산을 7년 넘게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광복회관을 신축한다는 명목으로 450억 원을 사용하는 것"이라며 "이는 2005년 제정된 <친일파재산 국가 환수 특별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단호히 말했다.

정씨는 이어 "광복회가 신축 광복회관으로 자긍심을 고취할 것이라 했는데, 대부분 80세가 넘는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이 과연 서울 여의도까지 올 일이 얼마나 되겠냐"며 반문했다.

특히 정씨는 광복회관 건물을 가리키며 "저 건물을 봐라. 이게 부숴야 하는 건물이냐. 1978년 세워진 10층 건물이지만 이미 2005년 36억 원 이상 들어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도대체 새 건물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룬 친일파 재산 환수인데… 역사적 상징이 뚜렷한 이 금액을 이렇게 허무하게 사용하면 절대 안 된다"고 일갈했다.

"70년을 소외받았다, 이제라도 제대로 청산해야 한다"

그는 다시 한 번 1973년 박정희 유신시절 개악된 '원호법'을 언급했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 모습 그대로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어 "독립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일어난 것은 1910년대다, 그때 독립운동한 사람들 나이를 생각해봐라, 6·25 동란과 친일파 잔당이 집권한 자유당 시대를 거치면서 독립유공자와 1세대 후손들이 대부분 돌아가셨다, 나 역시 할아버지를 만나 뵙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냐'는 기자의 질문에 "해방 후 친일파가 다시 정권을 잡았다. 독립운동가와 그의 후손들은 얼굴도 제대로 못 들고 살았다. 문제는 1963년 원호법에 덤으로 끼워 넣어 만든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도 1973년 박정희 유신 시절 축소 개악됐다"며 긴 한숨을 토해내듯 말했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 모습 그대로다”
▲ “70년을 소외받았다. 이제라도 제대로 청산해야 한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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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늦었지만 유족들의 노력으로 2013년 10월 헌법재판소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현행 법률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것은 다행"이라며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친일파환수금에 대해 정씨는 "'친일파환수에 관한 특별법'은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의 예우 및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금의 지급' 등으로 사용하도록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 금액은 어려운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친일파 환수재산, 대국민 토론회로 용처 만들자

정씨는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다 모여서 대국민 토론회를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국회가 나서 독립유공자, 유족회, 시민·사회단체, 광복회, 보훈처를 위한 토론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친일파 환수 재산을 어떻게 사용할지 논의와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2006년부터 조성한 친일파 환수금을 7년 넘게 사용하지 않다가 갑자기 멀쩡한 건물 헐고 광복회관 짓는다는 점이다, 그것도 450억 원이나 들여서 말이다, 이는 '친일파 재산을 환수'한 최초의 목적과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정종국씨는 89세 독립유공자 이준호 옹이 쓴 A4 6장짜리 '탄원서'를 보여줬다. 정씨는 "누군가는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회도, 언론도, 숨죽여 살아야만 했던 유족들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구의 이준호 옹이 직접 나선 것"이라고 했다. 더욱 친일파 환수금 450억 원이 불필요한 13층짜리 광복회관을 짓게 할 수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김종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19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친일환수재산, #광복회, #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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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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