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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한테 우리 식구들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얘기를 하나 털어놓고 싶네요."
"그럼 나한테도 하지마. 그런 얘기를 듣고, 담아 두는 게 부담스러우니까."

나 홀로 북미대륙을 떠돌기 시작한지 5개월 째인가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여행을 위해 사표를 냈던 회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잠깐이라도 여행에 합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남북으로 왕복했던 두 사람만의 약 5000km 여정은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후배가 꽁꽁 감싸두었던 속마음을 털어 놓은 건, 재즈의 고향이라는 뉴올리언스의 루이 암스트롱 국제공항에 도착한 그를 태운 뒤 이틀쯤 뒤였다. 아마 미주리 주의 어떤 도시를 지나칠 즈음이었던 것 같다.

후배의 얘기는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고 흥미로운 것이기도 했다. 흔치 않은 집안 내력에 관한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후배의 '비밀'을 듣고 나서, 나 또한 친한 친구들에게마저 공개하지 않았던 우리 집안 얘기를 들려줬다. 그때 내가 후배한테 해준 얘기는 가까운 일가친척들을 제외하고는, 지금도 열 사람만 미만만이 알고 있을 내용이다.

후배는 나처럼 '바람기'가 만만치 않은 부류다. 학교를 마치고 20대 중반에 일찍이 호주에 나가 워킹 홀리데이로 한동안 일한 경험이 있었다. 서울에서 미국 LA의 한국계 신문사로 직장을 옮겨 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사람이 한 번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면, 그 '버릇'을 고치기 여간 쉽지 않다. 이 후배는 작년 즈음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스탄으로 거처를 옮겼다.

여행도, 해외 생활 경험도 많은 후배지만, 비좁은 차 속에서 남자 둘이 잠자며 하는 여정은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승합차 뒤쪽에 내가 급조한 우리들의 '합판 침대'는 폭이 1.5m나 됐을까. 결혼한 뒤 아이 엄마와도 이 정도로 붙어서 자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인간관계에 물리적인 거리를 무시할 수는 없다. 후배와 온종일 딱 붙어서 이동하고, 잠까지 밀착해서 자다 보니, 단박에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가 돼버렸다.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우면 친해질 수 있다는 것, 군대 내무반 생활을 해보거나 학교 기숙사에서 누군가와 같은 방을 써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이 친해졌을 때 작동하는 묘한 심리다. 그렇게도 입밖에 내놓기 싫은 비밀이건만, 마음 한쪽에는 그걸 풀어 놓고 싶은 심정이 한(恨)처럼 동시에 웅크리고 있다. 나도 후배도 예외는 아니었다.

후배와 여행을 시작한 것은 한 해가 저물 무렵이었다. 그래서 밤이면 수은주는 영하로 곤두박질치곤 했다. 이런 까닭에 후배와 나는 비좁은 차안에서 서로에게 섭씨 37도짜리 인간 난로가 될 수 있었다.   

차창 밖의 미시시피는 유장했다. 미시시피를 곁에 끼고 하는 여행은 셀 수 없이 많은 다리를 지나게 돼 있다. 한강보다 다섯 배 안팎 긴 강물을 따라, 그것도 왕복을 해야 하는 여정을 상상해 보라.

강물과 다리는 우리네 삶에서 참 상징적인 존재이다. '파란의 강물 위로 걸쳐진 다리'(Bridge over troubled water)라는 제목의 노랫말에 이런 구절이 있다.

'파란의 강물 위로 걸쳐진 다리처럼, 당신이 나를 밟고 가도록 하겠다(I will lay me down).'

후배와 미시시피 강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며, 강을 끼고 또 다리를 수없이 건너는 여행. 나는 신비한 치유력을 경험했다. 뉴올리스언스에서 시작해 미네아폴리스를 찍고 돌아오는 약 2주간 여정이 끝난 뒤, 그리고 아들과 역시 강을 끼고 때로는 건너는 수십 일간의 여행을 하면서도 똑같은 체험을 했다.

아들에게 나는 한때 '죽어서 없었으면 좋은 아빠'였을 정도로 불편한 존재였다. 그런데 아들과 북미 대륙을 여행하면서, 특히 컬럼비아 강을 둘이서 따라 내려오면서 기적적으로 관계를 회복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3~4학년 때 나는 세상에서 아들과 둘도 없는 친구였다. 강물과 함께한 둘만의 여행은 그 시절로 돌아가는 단초가 됐다. 당시 여행에서 아들과 나는 마음을 터놓고 셀 수 없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올해 25살인 아들은, 아이 엄마 표현에 따르면, 나와 '닭살 돋는 친구'가 됐다. 강물은 사람의 마음에 쌓인 찌꺼기들을 씻어내고, 그럼으로써 사람을 맑게 하는 힘이 있는지도 모른다. 부부든, 부자지간이든, 형제자매지간이든 갈등이 있는 이들이여. '강 따라 여행'을 한 번 떠나보시라. 불화는 강물 속으로 떠내려 보내고, 서로에게 다리가 돼주는 마음이 저절로 생길 수 있으니.

후배
 후배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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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강을 따라 남북으로 왕복 여행을 함께 한 후배. 한 휴게소 화장실의 전원을 빌려 랩탑을 켜고 전자우편 등을 확인하고 있다(왼쪽 사진). 후배가 마크 트웨인의 동상이 서 있는 미시시피 강가에서 포즈를 취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톰 소여의 모험>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가 내놓은 문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명 마크 트웨인은 '두 길 깊이의 수심'을 뜻하는 운항용어이기도 한데, 그는 실제로 한때 미시시피 강을 운항했던 증기선의 선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다리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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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강을 가로 질러 놓여진 다리들. 미시시피 강은 다리의 전시장이라 해도 좋을 만큼 다채로운 다리들을 품고 있다.

멤피스
 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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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강을 끼고 있는 테네시 주의 대도시 멤피스의 피라미드 조형물. 미시시피 강을 이집트의 나일 강으로 치환한 발상이 눈길을 끈다. 멤피스라는 이름 또한 이집트에서 따왔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평원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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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강 옆으로 발달한 평야지대. 겨울 일출(왼쪽 사진)과 일몰 풍경이 뭔가 아득한 감상을 불러 일으킨다.

이정표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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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강을 따라 난 아이오와 주의 한 도로에 서 있는 표지판이다. 그레이트 리버 로드(great river road)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그레이트 리버는 바로 미시시피를 뜻한다. 미시시피라는 단어는 북미 원주민 말에서 유래했는데, 그 자체로 '위대한 강' 또 '큰 강'이라는 뜻이다.

세인트 루이스
 세인트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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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 세인트 루이스의 '더 게이트웨이 아치'(왼쪽 사진). 높이 약 192m로 아치형 조형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세인트 루이스의 식민시절 서부 공략의 거점과 같은 곳이었다. 루이지애나의 배튼루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쌍둥이 철교. 미시시피강은 하류의 물 흐름도 거칠지 않은 편이다.

컬럼비아
 컬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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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라는 평을 듣는 컬럼비아 강의 중류(왼쪽 사진). 상류에는 건조지역이, 하류에는 숲이 울창한 지역이 많다. 강가에서 포즈를 취한 아들. 강 따라 여행하며 나는 10여 년간의 극심한 불화를 씻어내고 아들과 다시 세상에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가 됐다.

덧붙이는 글 | 세종시 닷넷(sejongsee.net)에도 실렸습니다. 세종시 닷넷은 세종시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담은 커뮤니티 포털입니다.



태그:#미시시피 , #강물, #여행,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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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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