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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려운 희귀 사례입니다. 아무리 가족애가 깊고, 모성이 강해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얼마 전 동생 부상과 관련해, TV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한 유명 의사 분이 해준 얘기다.

딱 보름 전 일이다. 여동생이 자기네 식구들과 함께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동생 표현에 따르면 "죽게 아팠지만" 절뚝거리면서 계속해 스키를 탔다. 이후 두 차례 더 넘어졌다고 한다. "애들과 남편이 같이 안 타면 재미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며 참고 탔다는 것이다.

동생은 2박3일의 스키 휴가를 마치고 서울의 집으로 돌아와, 거의 하루 종일 집안의 잡일을 했다. 오른 다리를 좌우로 돌리거나 틀기 힘든데도 그랬다. 그리고 이튿날 '여유 있게' 병원에 가, MRI 사진을 찍었다. MRI 영상은 오른 무릎 안쪽 인대가 뚝 끊어졌음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다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식구들 가운데 '무식한' 몇 사람, 그 중에 나도 포함되기에 하는 말이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를 포함한 형제 넷, 우리 직계 가족은 6명이다. 이중 과반이 넘는 네 명이 상당히 '험한' 축에 드는 사람들이다. 어머니와 스키 부상을 당한 여동생, 막내인 남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이 '몸 무식'이라면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현재도 암 투병 중인 어머니는 불량 환자의 표본이다. 자식이 이런 말을 하면 호되게 욕 먹겠지만, 어머니의 투병 자세는 '죽으나 사나 마찬가지'라는 식이다. 평소 일하는 걸 보면 환자인지, 막노동 하는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다. 지켜보는 가족들로서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평소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내 얘기로 따로 하지 않겠다. 그냥 짐작만 하시라. 참고로 내 경우 오른쪽 팔뚝 50바늘을 포함해, 그간 얼굴 등 수 차례에 걸쳐 전신에 80수 정도는 바느질을 한 거 같다.

우리 집 '몸 무식'의 원조는 두말 할 필요 없이 어머니다. 어머니 몸 무식의 적통을 이어받은 건 바로 나다. 장자라서가 아니라, '밥 무식'까지도 그대로 닮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몸 무식과 밥 무식은 기질상 같은 계통이다. 스키 부상을 당한 여동생이 오빠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지만, 밥 무식이 아니라는 점이 오빠를 넘볼 수 없는 결정적인 결격 사유다.

'밥 무식'이라는 말, 처음 듣는 분도 있겠지만, 어려운 얘기 아니다. 일면 폭식과 비슷한데, 식사를 참 무식하게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여행할 때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 한 자리에서 '좀' 배부르게 먹고 다음날 하루 정도는 안 먹고 일정을 강행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북미대륙 여행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밥 무식은 편식과도 일맥상통하는데, 반찬이 여러 가지가 필요 없다. 한두 가지면 족하다. 예를 들면, 밥 한 그릇에 고추장이면 성찬이다.

한달 가까이 햄버거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밥 무식이 10년 남짓 미국에 살면서, 또 북미대륙을 여행하면서 어떻게 끼니를 때웠을까는 상상에 맡기겠다.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 좋아하지는 않지만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 배고프면 맛 없는 음식 없다. 거의 한달 가까이 햄버거만 먹은 적도 있다. 혼자 10개월 여행할 때도, 아들과 아들 친구 셋 등 넷이서 55일 가량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끼니의 절반 이상은 쓰레기 음식이라는 정크 푸드로 해결했다. 누군들 비싼 음식을 마다 하겠는가. 하지만 뻔한 주머니 사정에 때문에 정크 푸드 외에는 처음부터 아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도 아들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심정이다.

최근 뉴욕의 맥도널드 식당 문제가 미국 사회에 큰 화제가 되는 모양새다. 커피 하나를 시켜 놓고, 수 시간씩 머무르는 한국 교포 노인 분들을 경찰을 불러 쫓아낸 게 화근이었던 거 같다. 여기서 누가 잘했는지, 못 했는지를 내가 말할 입장은 아니다. 어머니나 나같은, 밥 무식에 몸 무식인 사람도 있다는 것, 맥도널드 측이나 교포 노인분들이나 참고 한다면 화를 진정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듯도 하다.

맥도널드 식당
 맥도널드 식당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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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푸드
 패스트 푸드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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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킹과 칼스쥬니어라는 맥도널드 경쟁업체에서 인심이 좋은 점원을 만나면, 소스를 한 주먹씩 얻을 수 있다. 여행할 때 값이 싼 달걀을 사서 찐 뒤, 이 소스에 찍어 먹곤 했다(왼쪽). 시리얼도 식비를 줄이는 데 안성맞춤인 식품이다. 통째로 갖고 다니면서, 아침은 물론 운전할 때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환상의 식사
 환상의 식사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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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로 가는 길에서 차를 세워 두고 밥을 해먹었다. 고추장 하나면 밥 한 공기쯤은 거뜬하다. 하루 종일 차를 몰아도 다른 차를 보기 어려운 오지에서 해 먹는 밥은 남다르게 맛있다. 다만 바람이 좀 불었던 탓에 뜸을 들이는데 애를 먹기는 했다.

맨해튼
 맨해튼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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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퀘어 근처의 한 정크푸드 가게 앞에 선 아들의 친구들. 젊은 친구들이라 정크 푸드를 잘 먹긴 했지만, 여행 내내 싸구려 음식밖에 사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쇼걸
 쇼걸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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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퀘어에서 거리의 쇼걸과 함께 한 아들 친구들. (왼쪽) 위장이 아니라 눈으로 요기를 했으리라. 정크 푸드면 어떠랴. 인종의 전시장이라는 맨해튼에서 경찰관과도 함께 했으니 눈도 즐겁고, 마음 또한 든든했을 것이다.

친구의 음식
 친구의 음식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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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에 사는 친구가 싸준 건강식. 10년 넘게 채식을 고집해 온 내 친구는 잠도 재워주고, 고속도로를 타다가 점심 때가 되면 먹으라고 손수 음식을 만들어 정성스럽게 포장도 해줬다. 미국과 캐나다 곳곳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 덕분에 입이 뜻밖에 가끔씩 이런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야영 음식
 야영 음식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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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야영장에서 아들과 아들 친구들은 나와 여행하는 바람에 매 끼니, 반찬 없는 밥상을 받아야 했다. 텐트 안쪽으로 라면 봉지가, 식탁 위로 탄산음료가 보인다. 아들과 아들 친구들은 무식하게 끼니를 때우는 나를 이따금씩 속으로 원망했으리라.

덧붙이는 글 | 세종시 닷넷(sejongsee.net)에도 실렸습니다. 세종시 닷넷의 조여사 촌철살인 코너도 일독을 권합니다.



태그:#정크 푸드, #쇼걸, #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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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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