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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입니다. 등록금 때문에, 결혼자금 때문에, 내 집 마련 때문에, 사업자금 때문에…. 빚을 지게 되는 까닭도 각양각색이겠죠. 빚이 많은 사람만 힘든 건 아닙니다. '빚 권하는 사회'에서 빚 없이 살려는 사람도 참 힘듭니다. 이래저래 빚 때문에 달라지는 우리 삶의 모습, 20대·30대·40대·50대 시민기자의 이야기로 직접 한번 들여다봅니다. [편집자말]
"피자 배달?"
"응, 내가 대학교 다닐 때 해 봐서 알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니까? 스트레스도 별로 없고, 돈 버는 시간 말고는 내 맘대로 살 수 있고. 그렇게 자유롭게 사는 방법도 있다는 얘기야."


"… 만약 진짜로 그렇게 살면, 몇 살까지?"
"몇 살? 뭐, 마음 내키는 대로?"


이 남자 뭐지. 젊어서는 그렇다 치고. 나이가 들면 직장도 잡고, 성공도 하고, 집도 사고, 집에 물건도 들이고, 아이도 갖고. 뭐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었나? 나도 프리터 족으로 자유롭게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고, 오랫동안 여행을 가고 싶은 꿈도 있지만. 정말로 그렇게 살자고?

5년 전 남자친구와 나눴던 대화다. 남자친구가 이런 '철없는' 소리를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의 부모님 때문이었다. 부모님의 직장 탓에 남자친구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 태어난 그는 자라오면서 워싱턴 주,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캘리포니아 주, 사우스 다코타 주, 미네소타 주 등 8개가 넘는 주(州)를 거쳤다. 도시 수를 따지자면 셀 수도 없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홉 번 전학하고 스물두 번 이사했다. 그래서일까. 남자친구는 정착에 대한 욕구나 의지가 없었다. 모빌홈(Mobile home)에서 지낸 가난한 어린 시절 때문인지, 가난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3년이 채 안 되는 결혼 생활 동안, 이사만 네 번

계약직으로 세 번의 직장을 거치고, 3년이 채 안 되는 결혼 생활 동안 집을 네 번 옮겼다.
 계약직으로 세 번의 직장을 거치고, 3년이 채 안 되는 결혼 생활 동안 집을 네 번 옮겼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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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배달을 하며 살자니. 가슴이 답답했다. 이 남자랑 헤어지기는 싫은데. 이 남자랑 계속 같이 있으려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오래 여행도 다니며 '정말로'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충동적이고 이상주의적인 나는 주위 친구들에 비한다면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 남자는 좀 심했다. 나는 헛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안정인가 자유인가.

아무리 헛갈려도, 삶은 계속된다. 나는 이 남자와 헤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결혼까지 했다. 계약직으로 세 번의 직장을 거치고, 3년이 채 안 되는 결혼 생활 동안 집을 네 번 옮겼다. 안정되지 못한 삶에 남편을 원망한 적은 없다. 남편 탓은 아니었다. 선택은 내 의지였다. 이런 삶이 싫었다면, 애초에 이 남자와 결혼도 안 했을 것이다. 견디지 못했다면, 결혼 생활도 삐걱대다 진작에 끝장이 났을 것이다. 어느샌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떠돌며 살아온 남편의 생활 방식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워낙 변덕이 심하고 즉흥적인 성격이라, 한 가지 길을 정해서 오랜 시간을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것도 나에겐 답답한 인생일 것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정착하지 않은 삶이기에 먼 미래를 계획할 수 없었다. 무턱대고 가구를 사들일 수도 없었다. 고양이도 키울 수 없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불안감이 엄습해올 때면 나는 인터넷을 뒤졌다. 공부해 보고 싶었던 전공의 학교 정보도 찾아보고,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이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 뒤져봤다. 구인 구직 사이트에 접속해 이제와 새삼 나의 적성을 고민하며 직업 카테고리를 뒤져보기도 하고, 대학 졸업반 때는 시큰둥했던 대기업의 정규직 구인 공고를 유심히 읽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변덕이 심하고 이상주의적인 나는, 나의 이상에 부합하는 직업을 찾지 않는 이상 한 직장에서, 한 곳에서 정착해 살지는 못할 것이다. 많은 시간과 돈과 다른 기회를 투자했기에 쉽게 버릴 수 없는, 그 안정된 삶을 벗어나지 못해 불행해 할 것이다.

하지만 철이 없는 난, 그런 삶이 조금 두렵다
내가 이렇게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 주위의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안정을 찾았다. 결혼한 친구들은 대출을 받거나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 전세를 구했다. 친구의 아파트는 환하고 깨끗했다. 새 가구 냄새가 신혼 분위기를 한층 돋우는 듯했다. 가구는 오랫동안 정착해 사는 데 필요한 짐들로 가득 채워졌다. 먼 미래를 계획해 놓은 신혼부부의 집은, 손님인 내가 가서 느끼기에도 아늑하고 편안했다.  

그 사이 우리 부부는 긴 여행에서 돌아왔다. 한국과 내 삶은 더 혼란스러워져 있었다. 다시 계약직으로 직장을 구했다. 통장의 잔액은 두 번째 직장을 나왔을 때와 비슷했다. 전세는커녕 웬만한 월셋집의 보증금을 내기에도 빠듯한 돈이었다. 뉴스는 실업률이 치솟고, 집값은 오르지 않는다며, 10년 전부터 해왔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가계 빚이 곧 1000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했다.

가계 빚 1000조 원. 그게 얼마라는 건지. 얼마인지 짐작도 안 가는 숫자를 보며, 나는 그 숫자 뒤에 얽매인 삶을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의 삶과 비슷한 것일 테다. 전세를 얻기 위해 대출을 받고, 자영업을 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 운영이 잘 안 되는 자영업의 손실을 메꾸느라 또 대출을 받고, 자라나는 자식들의 학비를 대느라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우리 부모님은 아마,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안정이냐 자유냐' 같은 배부른 소리 같은 건 생각해 보지도, 들어 보지도 못했을 거다.

그렇게 살아오신 부모님 덕분에, 나에겐 선택의 자유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주위 사람들처럼 대출을 받아 전세를 얻어 정착된 삶을 살 수도 있다.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으로 원금과 이자를 조금씩 갚아 나가며, 그 사이 차도 사고, 아이 학교도 보내고, 사교육 욕심도 부려보고, 가끔 명품이라는 것도 사보고, 그냥 다리미 대신 스팀다리미 사는 사치도 부려보고, 그렇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철이 없는 난, 그런 삶이 조금 두렵다. 안정의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빚의 굴레가 두렵다. 빚이 있다는 건, 어떻게 해서든 그걸 갚아야 끝이 난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돈을 벌고 빚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지옥 같은 직장이라도 그만둘 수 없고, 그 빚을 털어버리기 전에는 새롭게 시작할 수 없다. 즉, 자유가 없다.

당분간 우리의 선택은 안정이 아닌 자유다

가끔 남편은, TV와 소파가 있는 '정상적'이고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농담 식으로 던진다.
 가끔 남편은, TV와 소파가 있는 '정상적'이고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농담 식으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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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제 수준 이상의 것을 소유하기 위해 지어야 하는 빚. 그 빚은 갚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신용을 담보로 누린 더 비싸고 멋진 것들, 그것들에 익숙해진 나는 그보다 더 좋고 아름다운 것을 욕망할 것이다. 점점 커지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빚의 굴레를 쉽게 벗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물론 성실히 빚을 갚은 후 손을 깨끗이 털어 버릴 수도 있다. 커진 욕망도 꾹 참고 그냥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아직, 내가 그렇게 강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빚 지지 않고 산다. 낮은 보증금에 적당한 월세를 내는 오래된 집을 구했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그만큼 덜 얽매이는, 더 쉽게 떠날 수 있는 직장에 다닌다. 둘의 월급을 합쳐봐야 얼마 안 되지만 생활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돈을 아끼기 위해 너무 궁하게 살지도 않는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에 많이 투자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지금도 가끔 닥쳐온다. 그래도, 언제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은 언제라도 놓아버릴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자유의 매력에 우리는 이렇게 산다.

우리 부부의 생각도 바뀔 수 있다. 지금의 자유를 포기할 가치가 있는, 자유보다 더 빛나고 값진 무언가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몹쓸 병에 걸리거나 사기에 당해, 빚을 지고 싶지 않아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분간은 상황이 허락하는 한, 우리의 선택은 안정이 아닌 자유다. 빚을 지는 것이 아닌 덜 소유하는 것이다. 안정되고 계획된 삶을 사는 이들도 이해한다. 성실한 그들의 삶도 존경한다. 나는 다만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선택의 문제다.

"TV와 소파가 있는 삶을 살고 싶다!"

프리터 족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라던 남편도 가끔은 이런 삶이 피곤한가 보다. 가끔 남편은, TV와 소파가 있는 '정상적'이고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농담 식으로 던진다. 그러다가 다시금, 나와 마주앉아 묻는다.

"그래서 올해 여행계획은 뭐지?"

올해는 백두대간을 종단해볼까 한다.


태그:#빚, #가계 빚 1,000조 원, #대출, #전세 대출, #프리터 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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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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