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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7일,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던 누피(19)라고 합니다. 경찰이 주민과 연대자들을 폭행하고, 강제로 연행해갔던 그날은 끔찍했습니다(관련기사 : 경찰, 밀양 송전탑 반대 10대 활동가까지 구속영장 신청). 하지만 이번 사건이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밀양에 다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것 같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전쟁터와 같은 밀양의 모습들을 많이 접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를 차리던 날도, 저와 친구들이 연행 당했던 날도 모두 전쟁이었습니다. 팔다리를 붙잡아 질질 끌고 가고, 발로 차고, 벽에 밀치고, 목을 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끈을 잡아당기는 이런 일들을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제가 기억하는 밀양은 동네마다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먹이를 구하러 온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는 곳입니다. 또 빨려들어 갈 것 같은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고, 영남루를 옆에 끼고 밀양 강변을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밀양을 과격한 싸움의 장소로만 기억하시는 분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저의 밀양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매일 매일 한 시간 거리를 달려 밀양을 찾는 친구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일부 시민이 차 밑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목을 묶은 밧줄을 다시 차량에 묶었다. 경찰과 송전탑 반대 대책위 관계자들이 안전 등을 위해 이들을 설득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일부 시민이 차 밑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목을 묶은 밧줄을 다시 차량에 묶었다. 경찰과 송전탑 반대 대책위 관계자들이 안전 등을 위해 이들을 설득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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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친구들이 SNS에 올리는 글과 사진으로만 밀양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금곡 헬기장에서 사람들이 줄줄이 연행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차마 믿기지 않아 직접 가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수확을 못해 일 년 내내 지은 농사를 망치게 생겼다는, 농성장을 지키느라 며칠째 집에 한 번도 못 갔다는 할매 할배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같이 콩과 깨도 추수하고, 밤에는 할매 대신 농성장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밀양으로 향했고 며칠을, 몇 주를, 밀양에서 지내다보니 어느새 그곳에 정이 들어버렸습니다. 별이 예쁜 그곳이, 마을에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친구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나이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르지만 '밀양'에서 만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되었습니다.

한 친구는 저와 사는 곳도, 웃음코드도, 성격도, 심지어 키까지도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항상 조잘조잘 이야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멍멍이와 놀아주는 방법을 천 가지는 알고 있다는 친구는 동물도, 식물도, 사람도 사랑하는 친구입니다. 그가 환경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는 이유도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이 땅을 지키고 싶기 때문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동차로 달려도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서, 쉬는 날도 없이 매일매일 밀양에 오는 친구도 있습니다. 언제나 만나면 서로 달려가서 껴안는 것으로 인사하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꼭 안아주면 너무 편하고 포근해서 계속계속 안겨있고 싶을 정도입니다.

밀양 할매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친구도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하더니, 그래서인지 농활을 참 즐겁게 하는 친구입니다. 싹싹하고 일도 잘 한다고 할매들이 참 좋아하십니다. 가끔 심심한 저녁이면 이 친구가 연주하는 기타 반주에 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와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친구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가수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과 2NE1. 이 친구는 유쾌한 친구입니다. 여럿이 모이면 항상 재치 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이런 친구를 유치장에 두고 나와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는 이 밀양의 친구들과 가지도 따고 당근도 캤고, 밀양의 자랑인 표충사와 영남루를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또 여러 마을의 할매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밀양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전 행복합니다

맛있는 음식들을 나누는 동화전 마을 농성장에는 그 음식들을 준비해 주시는 록키엄마, 깻잎 따는 시인 손총각 아저씨,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미소를 보여주시는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용회마을에는 그림같이 예쁜 교장선생님 댁도, 뜨끈하게 몸을 지질 수 있는 옥희 아주머니네 구들장도 있습니다.

여수마을에선 여수 삼총사 엄마들이, 도곡 저수지에선 매일같이 해 뜨기 전부터 마을을 지키러 나오시는 고정, 고답, 상동, 도곡 네 개 마을의 할머니들이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또 최근에는 멍멍이 친구 고다비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부북으로 가면 농성장을 지켜주는 진돗개 친구 동동이와 '야전사령관' 할매와 덕촌할매같은 든든한 할매들이 계시고요, 신나는 장작패기 체험도 할 수 있는 127번 농성장도 부북면에 있습니다.

어떤 마을을 가도 저희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주민들 덕분에 밀양은 저에게 낯선 곳이 아니라 편하고 익숙한 곳이 되었습니다. 동화전의 맛있는 밥을 먹고 싶어서, 뜨끈한 온돌방에서 할매들과 수다 떠는 것이 좋아서 저는 밀양을 자꾸자꾸 찾습니다. 그래서인지 할매들은 제가 집에 간다고 인사해도 서운해 하지 않으십니다. 당연히 다시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밀양에서 이렇게 좋은 인연들을 만나서 행복합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우리 밀양의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밀양을 고립시키고 얼른 철탑을 세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때문에 우리는 한 친구를 빼앗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친구들을 더 데려 올 것입니다. 다시 친구를 찾으러 갈 것입니다. 행복한 순간들을 내 손으로 지켜 낼 것입니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이 '멀리서 볼 때는 희극이지만 가까이 볼 때는 비극'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멀리서 바라본 밀양은 비극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속에도 웃음이 있고 노래가 있으며 일상의 소소함이 있습니다. 저는 할매들과, 멍멍이들과, 친구들과 지내는 그곳의 생활이 좋아 밀양에 갑니다.

25일 밀양으로 향하는 두 번째 희망버스가 출발합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지난해 11월 30일 희망버스가 도착한 밀양역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지난해 11월 30일 희망버스가 도착한 밀양역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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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러분이 고답마을의 별들이 얼마나 예쁜지 알게 된다면, 동화전 마을의 고양이가 어떤 애교와 재롱을 피우는지 보게 된다면 밀양을 아픔으로만 기억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밀양에 오셔서 밀양의 행복한 순간들도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주앉아 뜨신 밥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할매들이 까 주시는 군고구마와 군밤을 같이 먹고 싶습니다.

1월 25일, 밀양으로 향하는 두 번째 희망버스가 출발합니다. 많은 분들이 버스를 타고 오셔서 밀양의 행복들을 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동화전 쉐프님의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덕촌 할매와 나누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좋은지요.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밀양의 친구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밀양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밀양이고 밀양의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손에 손을 잡고, 친구의 친구도 모두 데려와 밀양에서 모입시다. 밀양의 아름다운 별을, 할매들과 구들에서 등 지지며 수다 떠는 순간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마음껏 느낍시다. 그리고 이 행복이 계속될 수 있게 유치장에 갇힌 친구를, 할매들을 위해 모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덧붙이는 글 | 누피는 청소년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태그:#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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