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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식탁> 표지.
 <위험한 식탁> 표지.
ⓒ 율리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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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콩나물국밥이 생각날 때가 있다. 저녁을 아주 부실하게 먹었거나, 그 전날 과음을 했을 때다. 가끔은 콩나물국밥 대신 선지 해장국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 주변에 이 둘을 주 메뉴로 파는 국밥집이 있다. 나는 너무나도 경쾌한 발걸음으로 그 집을 찾는다.

한밤중에 먹는 국밥이라니 경악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한밤중이 아니라 새벽이라도 무언가가 먹고 싶으면 먹어야 한다는 게 내 신조(?)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엄청난 식탐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유별스러운 음식·식사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대체로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다. 배가 고파 먹고 싶을 때 무엇이든 맛있게 먹고, 그렇지 않을 때는 먹을 것에 손을 대지 않는다. 건강을 위해 일부러 골라 먹거나 피하는 음식 같은 것도 없다. 편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잘 먹으니, 죄송한 말씀이지만, 하루를 황금색 쾌변으로 시작한다.

이런 내게 독일 저널리스트 한스 울리히 그림이 쓴 <위험한 식탁>은 불필요한 책인지 모르겠다. 글머리에서 고백한 내 '묻지 마'식 취향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나는 건강 식품이니 무슨 '보약'이니 하는 걸 따로 챙겨 먹지도 않는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이들을 위해 '건강식품의 기만, 그 위험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을 기꺼이 손에 쥐었다.

그렇다. 이 책은 부제 그대로 건강식품의 속임수를 일깨운다. 건강식품이 건강이 아니라 위험한 질병,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가져올 수 있음을 수많은 생생한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경고한다. 건강식품 관련한 오랜 상식과 굳은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실감하게 된다.

4장('영양전문가들의 이상한 조언')에 나오는 흥미 있는 사례 몇 가지를 보자. '구스타브 3세의 커피 실험'이 있다.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3세(1746~1792)는 커피의 해로움을 확신했다. 그는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 두 명을 실험하기로 했다. 한 사람에게는 커피를 다른 사람에게는 차를 마시게 했다. 그들을 감독하는 의사도 두 명이나 두었다.

"감옥에서 한 죄수는 커피를, 다른 죄수는 차를 계속 마셨다. 그들은 마시고 또 마셨다. 그러다가 의사들이 먼저 죽었다. 죄수들은 계속 마셨다. 그 다음에는 왕이 죽었다. 죄수들은 계속 마셨다. 마침내 차를 마시던 죄수가 83세로 죽었고, 그 다음으로 커피를 마시던 죄수가 죽었다." (101~102쪽)

'영양 이데올로기'에 빠진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권하는 음식이 있다. 샐러드다. 저자는 비판적인 영양학자 우도 폴머의 말을 빌려, 샐러드가 젖은 휴지 한 장만큼만 건강하다고 말한다. 양상추 샐러드 100그램(결코 적지 않은 양이다!)은 95퍼센트가 수분으로 이루어졌고, 13.1칼로리에 비타민과 무기질은 거의 없다. 섬유질은 1.8그램에 불과하다.

"'조리하지 않고 먹었을 때 아무데도 쓸모없는 샐러드의 즙은 인간의 뇌를 텅 비게 하고, 위와 장을 병원 물질로 채운다.' 오늘날에도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선택하는 문제에서는 여전히 일종의 마력이 작용하는 듯하다. 올바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106~107쪽)

엽산이라는 게 있다. 고등학교 시절 생물 교과서에서나 봤을 법한 이 생경한 말이, 아이가 셋 있는 내겐 아주 친숙하다. 거의 모든 산부인과 의사와 관련 전문가들이 임산부에게 예외 없이 처방하는 게 엽산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비타민의 일종인 엽산이 오랫동안 태아의 신경관 손상을 예방하고 조산 위험을 줄이는 것으로 여겨졌다. 과연 그럴까.

"흥미롭게도 모유에는 엽산이 별로 없다. 그 사실에서 아이에게 실제로 필요한 양은 그다지 많지 않으리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자연이, 또는 신의 사랑이 아기에게 영양소를 너무 적게 공급했다면 인류는 벌써 멸망했을 테니 말이다. ··· (엽산 처방 결과-기자 주) 실제로 엽산 결핍의 주요 증세로 여겨졌던 신경관 결손 비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신경관 결손 감소는 엽산을 충분히 공급하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엽산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엽산은 신경관 결손의 위험을 줄이는 것과는 상관이 없었다." (247~248쪽)

거의 의무적으로 엽산을 공급받는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피해를 입은 경우가 있었다. 저자는 스웨덴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엽산 복용이 어린이들의 천식 위험성 증가와 폐암·장암·유방암·전립선암 발생 위험 증가 등의 혐의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비타민제를 포함해 건강식품 하나쯤 챙겨 먹는 게 거의 필수적인 일처럼 보인다.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의 본능적인 욕망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저자는 건강식품 관련 기업들의 엄청난 홍보 공세나 사업 확장을 통한 이윤 추구 등에서도 그 이유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책을 보면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현대인들을 건강과 질병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막대한 광고비를 쏟아 붓는지, 최고 변호사들에게 거액의 수임료를 제공해가며 벌이는 법적 소송에 얼마나 사활을 걸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저자가 예로 든 다국적 식품 기업 다논을 통해 알아보자. 다논은 '액티멜'이라는 건강·기능성 요구르트로 전 세계적으로 연간 10억 유로를 벌어들인다. 다논은 지난 10년간 오스트리아에서만 5100만 유로의 광고비를 썼다. "액티멜은 저항력을 활성화시킵니다"라는 다논의 광고에 일반 요구르트 회사가 "모든 요구르트는 당신의 저항력을 강화시킵니다"로 맞불을 놓자 시간당 400유로가 넘는 고액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 그룹을 통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국적 식품·건강 관련 기업들의 사업 확장은 끝 간 데를 모르고 이뤄지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화학 기업 바스프는 한 뉴질랜드 기업과 공동으로 개인 맞춤형 영양을 위한 하드웨어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개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자동판매기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스프의 목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유전정보 분석 회사 '23앤드미'는 침 샘플을 통해 113가지나 되는 질병의 발병 위험도를 체크해 보내준다. 99달러(처음에는 999달러)나 되는 비용이 드는 서비스다. 이런 투자 비용에 걸맞는 '이득'이 뭘까.

"암이나 심근경색, 치매, 그밖에 다른 질병에 대한 운명적인 진단과 위험 가능성의 퍼센트가 기록된 목록을 손에 쥔 사람들은 전보다 더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해한다. 인류유전학자 헨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진단을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한단 말입니까? 병을 막을 수도 없으면서 남은 인생을 완전히 망치는 것입니다. 불안해질 가능성만 백 퍼센트입니다.' ··· 그래서 어쩌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의학적으로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가 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289~291쪽)

건강을 챙겨 장수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소망이다. 사람들이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도 건강식품이나 음식에 끊임 없이 관심을 쏟는 이유다. 다국적 식품 회사들이 번성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식품이나 첨가물들은 분명 한계가 있다.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기 힘들어 위험 가능성도 높다. 저자가 소개하는 사례들을 몇 개 보자.

바스프의 자회사 코그니스가 특허를 갖고 있는, 비타민 E와 심장보호 첨가물인 피토스테롤은 유채씨 기름이나 콩기름 등 정제유 생산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로 만들어진다. 회사 외에 그것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곳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의 생명공학회사 세노믹스가 만든 한 화학적 첨가물은 제품 성분 표시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극소량을 넣으면 성분표에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관련법 덕분이다. 네슬레, 코카콜라, 캠벨수프, 그리고 세계 최대 글루탐산나트륨 제조사 아지노모토가 세노믹스와 계약했다고 한다.

다논의 심장보호 요구르트 '다나콜'의 사례는 더 '극적'이다. 슈퍼마켓에서도 팔리는 이 제품은 독일 연방위해평가원이 위험을 경고한 식물성 스테롤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다논은 이 제품을 개발한 뒤 홍보 차원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독일 전역에서 비타민·식품첨가물에 찬성하는 저명한 학자들 50여 명을 초대되었다.

"명망 있는 노의학자 하이너그레텐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레텐 교수가 좌중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식물성 스테롤을 직접 섭취하거나 추천하실 분 계십니까?' 그러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43쪽)

저자는 인간의 몸이 7년마다 재생되는, 서로 다른 200만 개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음식은 그 핵심적인 보급품이다. 학문적으로 연구된 슈퍼 과일을 먹는다거나, 특히 집중적으로 상품화한 비타민, 오메가-3, 미네랄 등만 섭취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저자는 단호하게 오직 진짜 음식만이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사람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자라는 재료를 제철에 구입해 전통적인 음식 문화의 규칙에 따라 조리해 먹는 것이 가장 좋다." (333쪽)

'건강한 섭생이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1장의 제목이다. 건강에 관심이 많아 각종 비타민제를 챙겨 먹고, 영양소를 따져 가며 음식을 가려 먹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늦은 밤에 국밥집을 찾는 내가 스스로 조그맣게 위안을 삼은 구절이기도 하다. 물론 한밤중의 국밥집 순례가 결코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위험한 식탁> (한스 울리히 그림 지음, 이수영 옮김 | 율리시즈 | 2013. 12. 20 | 349쪽 | 15,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위험한 식탁

한스 울리히 그림 지음, 이수영 옮김, 율리시즈(2013)


태그:#<위험한 식탁>, #한스 울리히 그림 지음, #이수영 옮김, #율리시즈, #건강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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