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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명절이나 쇄고 가렴,
이렇게 날도 춥고 한데.
야 새아가,
그 왜 찹쌀 있지 왜,
잇찹쌀 가루로 새알심이나 빚어라.
동지가 낼인데 죽이나 쑤렴.
달구지 바퀴는 눈길을 굴러간다. 
달가당, 쌀강, 빼각,
눈길을 굴러간다. 

땅버들 냉기엔 까치가 짖는데
새색시 또아리엔 얼음이 얼린다. 
벼 낱가리 높고 우물 깊은 동네
눈 덮인 초가집 굴뚝에서는
동지죽 쑤는 연기가 쿠울쿨
자꾸 올라간다.
     
이는 양명문 시인의 <동지>라는 시 전문이다.

2013년 입춘을 맞은 지 엊그제 같은데 이 시처럼 어느덧 동지를 맞아 2014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예부터 동지가 되면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동지죽을 쑤어 액운을 씻고 밝아오는 해를 환하게 맞이한다는 뜻에서인지 흔히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였다.

실제로 동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시기로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였다. 이 관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처럼 동지첨치(冬至添齒)의 풍속으로 전하고 있다.

또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 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다분히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로 팥죽의 축귀(逐鬼) 기능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국내산 팥을 써야 맛있다. 알이 굵고 반지르하며 색이 옅은 주홍색
▲ 팥 국내산 팥을 써야 맛있다. 알이 굵고 반지르하며 색이 옅은 주홍색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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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드는 시기에 따라 달리 부르는데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이런 동짓날이면 귀신이 붉은 색을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팥죽을 쑤어 사당에 먼저 올리고 각 방, 장독, 헛간 등에 뿌리거나 두었다가 식은 다음 먹는다. 또 동지팥죽 뿌리기는 해당 년도 동짓날 절입 시간에 맞춰 팥죽뿌리기를 하는데 2013년 동지 절입 시간은 양력 12월 22일(음력 11월 20일) 오전 1시 56분이라고 한다.

물에 타 체에 걸려 껍질을 제거해야 속이 쓰리지 않다
▲ 삶은 팥을 믹서에 간 것 물에 타 체에 걸려 껍질을 제거해야 속이 쓰리지 않다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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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에는 절입 시간을 맞추기 위해 21일 오후 무렵, 찹쌀을 담그고 팥을 삶는다. 3시간 담궈 둔 찹쌀을 건져 물기를 뺀 후 방앗간에 가서 빻아 온다. 삶아 놓은 팥을 믹서에 간 후 물을 적당히 탄 뒤 체로 팥 껍질을 걸러낸다. 왜냐하면 팥껍질 채 죽을 쑤면 속을 깎는다며 늘 껍질을 걸려 하시던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다.

믹서에 간 팥을 물과 섞어 체에 거르면 껕 껍질이 제거되어 속이 쓰리지 않다
▲ 팥물 믹서에 간 팥을 물과 섞어 체에 거르면 껕 껍질이 제거되어 속이 쓰리지 않다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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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물을 솥에 넣고 소금 간을 약하게 한 뒤 끓이는 동안 빻아온 찹쌀을 익반죽 한다.익반죽은 너무 무르지도 않고 되지도 않아야 새알을 만들 때 손에 붙지도 않고 새알이 갈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익반죽을 할 때 물 양이 굉장히 중요하다. 먼저 뜨거운 물을 너무 많이 붓지 말고 조금씩 부어 반죽을 해 가야 실패율이 없다. 먼저 찹쌀가루에 물을 조금 부은 뒤 주걱이나 수저로 몽글몽글하게 만든 뒤 손으로 치대면 손에 묻지 않아 좋다. 이때 혹 반죽이 무를 수 있으므로 약간의 쌀가루를 남겨 조금씩 더해가며 치대면 알맞게 반죽이 된다.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새알로 빚어 놓은 것
▲ 반죽하여 빚은 새알들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새알로 빚어 놓은 것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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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반죽을 물새알 크기로 동글동글 빚어 놓은 뒤 팥물이 팔팔 끓으면 위에 생기는 하얀 거품을 걷어내고 새알을 넣어 살살 한 방향으로 젓는다. 왜냐하면 이리저리 저으면 새알이 뭉그러지기 때문이다. 새알이 익으면 동동 떠오르는데 이때 불을 끈 뒤 잠시 식혀 두면 새알이 그대로 가라앉는다.

팥물이 끓으면 새알을 넣고 한쪽으로 젓는다. 새알이 떠오르면 다 뇐것임
▲ 둥둥 떠오른 새알 팥물이 끓으면 새알을 넣고 한쪽으로 젓는다. 새알이 떠오르면 다 뇐것임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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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동짓죽으로 식으면 좀더 걸죽해진다. 찹쌀만 해 조금 늘어진 새알이다. 하지만 좀 굳으면 동그래진다.
▲ 완성된 동짓죽 완성된 동짓죽으로 식으면 좀더 걸죽해진다. 찹쌀만 해 조금 늘어진 새알이다. 하지만 좀 굳으면 동그래진다.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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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동지죽을 두 그릇 떠서 별세하신 시부모님 사진 앞에 동김치와 함께 차려 드린 뒤 1시 56분이 되어 팥물만 떠 하수구, 대문, 화장실, 베란다 등 구석진 곳을 다니며 조금씩 뿌리는 흉내를 낸다. 정말 액운이 물러간다는 믿음보다 오랜 동안 우리의 어머니 어머니가 그래 왔듯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을 답습하는 의미로 하는 행위지만 웬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처럼 팥이 들어가는 동짓죽은 악귀를 물리치고 밝아오는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도 있지만 팥이 지닌 여러 가지 효능으로 보아 건강식품임에는 틀림없다. 팥은 피부가 붉게 붓고 열이 나고 쑤시고 아픈 단독에 특효가 있으며, 젖을 잘 나오게 하고 설사, 해열, 유종, 각기, 종기, 임질, 산전산후통, 수종, 진통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은 동지죽을 직접 쑤지 않고 죽집에 가면 언제든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편한 세상이지만 이번 동지엔 손수 동짓죽을 쑤어 지난 액운의 기운도 씻고 2014년의 새 기운까지 한껏 받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순천투데이도 송고



태그:#동짓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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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두 자녀를 둔 주부로 지방 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다 남편 퇴임 후 땅끝 해남으로 귀촌해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교육, 의료, 맛집 탐방' 여행기사를 쓰고 있었는데월간 '시' 로 등단이후 첫 시집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를 내고 대밭 바람 소리와 그 속에 둥지를 둔 새 소리를 들으며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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